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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눈물은 기성세대의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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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의 눈물은 기성세대의 원죄

[데스크 칼럼] 한 여대생의 '절망의 눈물'을 보고

"일자리를 잡지 못해 초조해하며 입사원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제자들 보기가 정말 안쓰럽다."(서강대 교수)
"서울대 우리과 졸업생이 37명인데 지금까지 직장을 잡은 학생은 4명에 불과해요. 그러니 모두 고시공부 한다 하고 대학원 간다 하고, 휴학도 하고 군대 가고 그런 식이죠..."(서울대 졸업반 취업직장인)
"여대생들의 경우는 남자들보다 더 힘들어요. 4학년 한 한기 남겨놓고 휴학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어요. 공무원 고시이나 편입합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고..."(한 여대생)
"뭐니뭐니 해도 공무원이 최고 아니에요? 짤리지도 않고 게다가 정부에서 정년까지 늘려준다 하고..."(또다른 대학생)
"애 잡고 돈 써 대학에 집어넣어봤자 뭐 하나? 졸업해봤자 취직도 안되는 걸. 그럴 바에야 그 돈으로 일찌감치 라면집이라도 차려 주는 게 차라리 낫지..."(고교생을 둔 학부모)

설 연휴를 전후해 접한, 심각한 청년실업을 둘러싼 민심이다.

***6천5백50원 여대생 절도의 충격**

설 연휴에 가슴 시린 뉴스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하루종일 굶은, 지방대의 한 휴학 여대생이 '순간적 충동' 때문에 편의점에서 6천5백50원어치의 우유 등 먹거리를 훔치다가 잡혀 경찰에 넘겨졌다는 소식이다.

하루내내 식사를 못한 이 학생은 원래 1천원짜리 뻥튀기로 요기를 해결하려 했다고 한다. 주머니에 있는 돈이 1만1천원이 모두였기 때문이다. 또 하두 생활이 힘겨워 설에 고향에 내려갔더니 사업하다 부도난 부모는 빚쟁이 독촉에 도피중이었고, 집에는 동생들만 있어 그냥 서울로 올라왔다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끊겨 고시방에서 주린 배를 안고 시험책만 들여다 보았다 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여대생 장발장" 운운하며 활자화했다. 다분히 구경꾼 시각의 호사가적 표현으로, 분노를 일으키기까지 하는 경망한 접근법이다.

어른들 자주 하시는 말씀에 "어디 사흘만 굶어봐라. 눈에 뵈는 게 있나"라는 말이 있다. 해방후 절대빈곤시대에나 통용됐어야 마땅한 이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눈앞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그러진 한국경제의 적나라한 현주소이다.

***내용상 세계 최악의 청년실업**

엄격히 말해 통계는 허구다. 특히 실업관련 통계는 그러하다.

지난해말 우리나라 실업률은 3.4%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이며, 경제학상 사실상 완전고용을 의미한다는 3%에 근접한 수치다.

그러나 피부로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그렇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사회의 미래를 젊어진 청년층(20~29살)이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절망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말 현재 청년실업률은 7.7%이다. 대학졸업생들의 실업률은 8.6%로 더 높다. 청년층의 절대적 일자리도 1년새에 19만3천개가 줄어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같은 통계를 믿는 청년층은 거의 없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실업률은 열명에 한명이 취업을 못한 게 아니라, 조금 과장한다면 그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펴낸 <경제지표 해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한달에 1시간이상 일한 사람은 모두 취업자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매월 15일이 속한 1주일동안 직장에 원서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비로소 실업자로 분류된다. 또한 1년이상 일자리를 구하다가 일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구직단념자'라는 이름으로 실업자 통계에서 제외된다. 여기에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보험제도와 취업알선기관의 미발달로 사회보장이 발달한 나라들보다 실업률이 낮게 잡히고 있다.

이런 식의 통계 집계방식에 따르다 보니, 당연히 우리나라 실업률은 '세계최저' 수준으로 잡히고 있고 숫자만 보면 외국으로부터 "웬 배부른 실업타령이냐"는 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한국의 실업,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실업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선 대다수가 청년으로 구성되고 있는 70만 군이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어 실업률을 크게 낮추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세계를 통털어 기형적으로 많은 대학원생이나, 대학 휴학생들도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아울러 졸업후 취업이 안되자 고시공부나 의대로의 편입학 시험을 준비한다고 고시텔에서 생활하는 십수만명의 사실상 실업자도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요인을 모두 합한다면 단언컨대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청년실업 문제는 세계최악의 상태에 직면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다가 26일 통계청이 밝힌 "청년 취업자중 50.2%가 일용직이나 임시직에서 일하고 있다"는 통계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이 직면한 청년실업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쏟아지는 청년실업 공약, 내용은 도리어 실업악화 대책**

이처럼 실업,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야가 앞다퉈 실업대책을 쏟아내놓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일자리 창출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특히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표 경제부청리는 이를 받아 다음날인 15일 "정부 예산과 각종 기금을 총동원해 올해 공공부문 일자리를 작년보다 8만2천개 늘리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채용규모를 전년보다 1만명 더 늘려 청년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예절강사나 지역문화재 소개요원으로 고령자 2만명을 새로 뽑겠다는 식이다.

진대제 정통부장관도 19일 "단기적으로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DB구축사업에 4백70억원을 투입해 2천명에게 일자리를 주고, 장기적으로는 오는 2007년까지 IT분야에서 30만개의 일자리를 더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야당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설 연휴기간동안 신촌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파악한 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고, 민주당도 '경제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대목은 정부나 여야가 한결같이 청년실업을 도리어 심화시킬 공약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정부는 실업 및 노령화사회 대책차원에서 정년을 강제적으로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 등 야당들도 이에 뒤질세라 직종 불문하고 정년을 60세로 늘리겠다는 선거공약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정년 강제연장'이라는 발상 자체가 정부가 민간에 강요한다고 될 성질의 것도 아닌 '공무원-공기업 직장인' 겨냥의 공약인 데다가, 단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존 직장인의 정년을 늘리면 그만큼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단 총선을 앞두고 청년층의 표를 겨냥해 경쟁적으로 정년연장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청년실업을 바라보는 정부나 정치권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참여정부의 핵심 여성공약이었던 '여성일자리 50만개 창출 계획'도 여성부가 1차 시안을 만들었으나 "종합계획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부처 안팎의 지적으로 자체 폐기하고 이를 국무조정실로 넘기는 등 실업과 관련한 설익은 공약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여성부가 여성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추진중인 프로그램은 책정된 예산이 불과 3억원인 '여대생 취업 맞춤식 교육'이 전부다.

***"곧 좋아질 것"이라는 미봉책부터 버려야**

청년실업은 하루아침에 해법이 나올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 결코 아니다. 특히 '고성장-저고용'으로 특징지어지는 IT산업이 주력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현상에서는 그러하다.

청년실업의 진정한 해법은 한국경제의 고부가치화-전문화, 세계적 신성장산업의 발굴, 이를 통한 전문직종의 확대 및 일자리 증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나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그러기까지에는 최소한 몇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장면은 유감스럽게도 "곧 좋아질 것"이라는 '장미빛 공약'과 '미봉책'뿐이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같은 경제전문가는 "이런 식으로 미봉책으로 하루하루 대응하다가는 한국경제가 또한차례 바닥까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 전수석은 "지금 한국경제가 직면한 것은 경제사이클상의 일시적 불황이 아닌 구조적 위기"라며 "눈앞의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진정으로 한국경제가 직면한 위기요인을 정확히 생체해부한 뒤 구조적 해법과 비전을 찾는 지난한 노력을 해야 비로소 해법이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기성세대는 우리 아버지세대가 만들어준 일자리에서 일하며 월급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부나 정치권, 재계 등 지금 기성세대의 최대책임은 미래의 주역인 젊은 세대에게 비전과 일거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청년층이 극단적 좌절감 속에서 방황토록 한 대목은 기성세대의 더없는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더 위기가 심화되기 전에, 더많은 여대생 등 젊은층의 절망적 눈물을 뽑아내기 전에 작금의 경제위기 상황을 정면돌파할 수 있는 최강의 '비상경제팀' 구성과 '경제위기 돌파'에 대통령이하 모든 정치인,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기성세대 모두의 에너지를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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