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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 조국 대전이 드러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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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 조국 대전이 드러낸 것

[김윤태 칼럼] 불평등과 세습의 시대에 관한 성찰

한국의 법무부는 영어로 표현하면 정의부이다. 법과 정의는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같은 의미는 아니다. 법은 힘의 표현이지만, 정의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 법은 입법자가 만드는 것이지만, 정의는 사회의 합의에 달려있다. 그래서 법과 정의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대 군주정과 귀족정의 법은 왕과 과두제의 손아귀에 있었다. 시민혁명 이후에 법이 의회에서 만들어졌지만, 의회가 온전히 국민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경우 법은 금권정치에 휩쓸렸고, 최악의 상황에는 독재자에 의해 유린되었다. 이 경우 법은 반드시 정의의 심판에 직면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논쟁은 오랜 과제이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정의는 힘의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자연법의 관점에서 정의의 실현으로 보기도 하지만, 오랜 관습의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실제로 자세히 보면 정의가 오랜 관습의 결과라는 말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관습이 형성되는 과정 역시 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법과 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법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사회 규범이다. 법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법에 정의가 없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법이 정의롭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군사정부 시절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경우 법을 따르는 대신 바꾸거나 저항해야 한다고 믿는다. 로크가 말한 대로 "입법기관이 민중으로부터 위탁받은 신탁에 반하여 행동하는 일이 있을 때는 입법기관을 해임 또는 경질하는 최고의 권력은 여전히 민중에게 남아 있다." 로크가 제창한 저항권은 이제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된 필수적인 민주적 권리가 되었다.

그러나 법에 정의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특목고, 자사고, 학생종합생활기록부의 인턴 경력을 통한 수시 전형을 정한 법과 제도는 정의로운가? 그래서 현행 법률과 제도를 따랐다면 정의로운 것인가? 우리는 법이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역설적으로 법으로서 힘을 갖지 못하면 정의는 정의로울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강제할 힘이 없으면 정의는, 정의가 아니고, 실현되지 못한다. 무기력한 정의는 법이라는 의미에서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률가, 검사, 판사, 또는 어쩌면 법대 교수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적법성이다. 그러나 입법자인 정치인, 국회의원, 그리고 대다수 시민들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우리의 법이 정의로운가? 이것만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정치의 역할

정의 대신 적법성만 강조하는 한 법과 관행을 말할 수는 있어도, 법이 사실상 정의를 지연하거나 왜곡하는 일에는 눈을 감게 된다. 이런 경우 언젠가 법과 관행에 문제가 제기되고, 의심이 커지고, 폭력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한 달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법무장관 임명 사건을 돌아보면, 국회와 정치권이 과연 많은 사람들의 실망과 염려를 진지하게 생각했는지 의심이 든다. 국민이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적법과 불법, 또는 개혁과 반개혁,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은 박근혜, 최순실, 삼성의 권력형 부패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지만,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이었다.

지금은 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순간이다. 국민들은 지난 30년간 특목고, 자사고, 그리고 명문대학의 수시전형을 통해 공고화된 엘리트주의, 학벌주의, 세습주의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만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공고화시키는 불평등의 메커니즘이 법의 이름으로 포장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넘어 부모가 자녀에게 부와 지위를 세습하는 기득권의 독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정치권이 응답해야 한다. 입법을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정치권은, 법과 관행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되고, 마치 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의의 기준에서 법을 새로 제정하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17세기 재기발랄한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불평등과 세습의 시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결국 강한 것이 정당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정치 양극화에 편승해 개인의 도덕성만 지적하거나, 전쟁 중에 내부에 총질을 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느냐는 질문은 결국 무엇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포기하거나 희미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의 제목처럼 '법이냐, 정의냐'라는 선택에 빠지는 대신 '법과 정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정의 없는 힘은 독재가 되고, 힘이 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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