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김영삼 대통령만들기의 1등공신이었던 김윤환 전 의원이 15일 오전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한 시대가 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 전 의원은 유신말기인 지난 79년 10대 유정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시절 11,13,14,15대 의원을 역임했다.
5공말에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실장을 거쳐 노태우, 김영삼 정부 출범시 정권창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 `킹 메이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여당 사무총장 2번, 원내총무 2번, 정무장관 3번, 여당 대표 2번 등을 지냈다. 특유의 어눌한 화법을 앞세운 친화력과 조정력으로 정치권과 언론계에 두터운 '허주(虛舟: 김 전의원의 호) 인맥'을 구축해, 정권교체기마다 두드러운 역할을 했다.
특히 5공말 대통령 비서실장 때는 경북고 동창인 노태우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 `여소야대'였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막후에서 3당통합을 이끌어냈으며 92년 대선에선 민정계이자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박철언-박태준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TK배제론'을 주창, PK(부산.경남) 출신의 `YS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서서 `YS 대세론'을 선도하기도 했다.
그후 지난 97년 대선 때는 신한국당 `9룡'중 한 명으로 대권도전에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영남후보 배제론'을 펴며 이회창 후보 지지에 나서 '세번째 킹메이커'에 도전했으나 이후보가 대선에 패배, 정권 창출에 실패하면서 급속히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불법정치자금 수뢰 혐의로 당시 이회창 총재로부터 공천을 못받자 민주국민당 창당을 통해 '반창(反昌)연대'를 외치며 재기에 나섰으나 낙선해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난해 12월 하순께 신장암 판정을 받고 절제수술을 받은 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세가 악화돼 귀국했다가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절자 여사와 1남 3녀가 있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빈소인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서 한 뒤 장지 구미시 장천면 선영에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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