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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라는 달콤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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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라는 달콤한 괴물

[삶은경제] 개인정보는 금융기업이 아닌 시민의 것

가끔씩 모 정당의 지역위원회에서 문자가 온다. 차량 대시보드 위에 명함 한 장을 남겨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누군가 수첩을 들고 아파트 주차장을 한 바퀴 돌며 적었을 것이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 차량의 종류와 휴대폰 번호, 그리고 어디서 일하고 있는 지 스스로 밝힌 셈이다. 내 개인정보가 해당 지역구 유권자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이다. 내 명함과 함께 만약 1장의 명함이 추가로 놓여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름을 보며 성별을 유추하고, 옆지기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옆지기에게 불순한 마음을 품고 전화를 했다면? 명함을 치우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휴대폰 번호만 남겨 놓았지만, 영 기분이 찜찜했다.

어느 날, 아이디를 도용당한 가상의 내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주변 지인들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있었다. 누군가 피해를 당할 것 같은 생각에 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그리고 디지털 장의사에게 내 개인정보를 삭제해달라고 맡겨볼까 하다가 누군가의 PC에 저장되어 있는 내 정보까지 삭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개인정보는 어떻게 수집되는가?

지금도 내 개인정보가 어떻게 흘러 다니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구글은 내가 간 장소에 대해 다섯 개의 별점을 들이대며 어떠냐고 묻는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위성항법장치(GPS) 위치정보를 동의했다는 사실이.

은행에 들러 예금 하나 개설하려 해도 수많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화면에 말문이 박힌다. 일일이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동의절차를 클릭하지 않으면 넘어가지도 않으니까 습관적으로 동의를 누를 뿐이다. 자신이 남긴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왜 모든 사이트들은 서비스 제공에 필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개인정보를 요구할까?

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상점이 있다. 단순히 둘러볼 요량이라면 내 개인정보를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그들도 요구하지 않는다. 단, 카드회사는 다르다. 카드사는 내 결제 내역을 통해 내가 구매한 물건의 정보를 알게 된다.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에 걸린 것일까? 온라인 화면에는 아예 내가 관심 있게 봐두었던 물건들이 알아서 떠 있다. 내가 들어간 사이트들을 분석해 구미에 당길 만한 상품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라는 미명 아래, 고정된 패턴으로 나의 취향을 고정시킨다.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빈발하는 원인

지난 2005년,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아웃소싱과 관련된 제도를 변경했다. '업무위수탁 운영기준'을 개별 금융회사에 내어준 것이 바로 개인정보 유출사건의 화근이 되었다. 금융회사에서 전산 아웃소싱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2014년에 카드사에서 대량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다. 국민은 카드사에만 개인정보를 맡겼다. 하지만, 카드사가 외부업체에 아웃소싱을 맡기다 보니 고객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유출됐다. 대다수의 국민이 이로 인해 한 마디로 멘붕을 겪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신용등급이 포함된 1억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이렇게 발표했다.

"정보가 유출되었을 뿐, 피해는 없을 것."

금융위원회의 발표 이후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이제 흔하다 못해 일상화되고 있다. 국민은 개인정보의 보호를 금융회사에 맡겼는데, 정작 금융회사가 바뀐 규정을 이유로 개인정보를 외부 아웃소싱 업체에 다시 맡겼기 때문이다. '위임의 함정'에 전 국민이 빠져 들었고, 개인정보 규제는 이를 통해 오랜 족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개인정보를 모두 모으면 어떻게 되는가?

위임의 함정에서 벗어난 개인정보는 이제 집적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개인정보를 내어주며 사는 우리는 직장인급여통장을 통해 소득이 드러나고, 가족관계를 묻는 체크박스에 기혼과 미혼 여부를 판별 받으며, 대출 등으로 인한 신용등급부터 연체 등의 기록까지 무수히 많은 개인 정보를 상시 상납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흩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빅데이터는 이러한 정보를 집중시키고, 분류하고, 가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집적할 기관, 한국신용정보원도 탄생했다.

최근, 한국신용정보원은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금융회사, 핀테크기업 등 80여개 기관이 회원가입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 4일 오픈한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은 전(全) 금융권 정보를 금융업권, 핀테크, 스타트업, 연구소 등 각계의 연구자들이 직접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만약, 금융 빅데이터 개방시스템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유를 하자면, 작은 바구니에 나누어서 담았으면 그 바구니에 담긴 물만 새어나가지만, 큰 바구니 하나에 금이 가면 모든 물이 새어나가는 것과 같은 위험이 발생한다.

사무금융노조가 과거부터 금융회사 전산아웃소싱을 반대한 이유는 위임의 함정 때문이었다. 그래야 개인 정보가 1개의 금융회사 내부, 작은 바구니에서 지켜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작은 바구니는 깨졌고, 큰 바구니만 남았다. 위임의 범위가 이제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내가 나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작년 3월 19일 금융위원회는 '금융분야 데이터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인정보를 유포하고는 거꾸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억지궤변에 불과하다. 이미 흘러넘친 물은 다시 담기 어렵다.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개인정보 관할 법령은 행정안전부가 관할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방송통신위원회가 관할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금융위원회가 관할하는 신용정보보호법 등으로 나뉜다. 대통령직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있으나 예산과 인사의 독립성과 직권조사권의 권한이 제한적이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2016년 10월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기관의 독립성과 권한 미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독립성과 권한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전체적으로 강화해야 할 시점에, 금융위원회는 핀테크산업 발전이라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무참히 짓밟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가명정보를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의 목적으로 정보주체 동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낸 바 있다. 가명정보란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함으로써 원상태로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를 말한다.

지난 7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법 개정에 대해 국회의장을 상대로 "가명정보를 활용할 경우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보호를 위해 그 활용범위와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하고, 안전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표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주민등록번호 제도로 인하여 전 국민의 식별이 매우 용이한 점 △성명․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이미 대량으로 유출, 음성적으로 거래․활용되고 있는 점 △가명정보 재식별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여타 선진국에 비해 가명정보의 활용 목적 확대에 정보 주체의 보호 및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보다 강화하고, 그런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가명정보 활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내가 나인지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활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정보라는 불가침의 기본권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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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20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조직과 의정기획을, 진보신당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했다. 10년 전부터 증권노조에서 정책을 맡다가 대산별노조로 조직이 전환된 현재까지 사무금융노조 정책기획국장을 하고 있다. 10년은 정당에서 10년은 노동조합에서 일하다보니 인생은 반지름이라 믿고 있다. 절반은 자신이 만들고, 나머지 반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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