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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늙은 정당'의 비비크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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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늙은 정당'의 비비크림인가

[정치혐오의 천국, 대한민국] 청년정치가 필요한 이유

청년들이 정치를 외면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

‘20대 개새끼론’(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도 이젠 옛말이다. 최근 세 번의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을 보면 46.6%(07년, 17대 대선), 68.5%(12년, 18대 대선), 76.1%(17년, 19대 대선)로 급격히 증가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28.5%(08년, 18대 총선), 41.7%(12년, 19대 총선), 52.3%(16년, 20대 총선)로 증가했다는 걸 볼 때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한때는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만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청년들의 삶이 힘든 이유는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존 정당들은 자신들에게 표를 많이 주는 기성세대를 위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공유됐다. 하지만 막상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도 많이 하는데도 정치와 삶은 변한 게 없었다.

청년들이 뒷전인 이유는 투표만 하고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대학시절 토론 수업에서 '취업'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이야기가 돌고 돌다 한 친구가 나에게 "정치는 대기업의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 한 청년들과 중소기업을 위한 나라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 전체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대기업의 논리가 아닌 주장을 펼치는 청년정치인이 누군지 아는 분 계십니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게 정치가 대기업의 논리로 돌아가는 이유입니다" 이후 갑론을박의 토론이 이어졌지만 강의실 안에 청년정치인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청년들은 왜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까?

한국 교육시스템에는 시민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정당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선거를 치르는 법을 가르치는 독일 교육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우리 청년들은 어린 나이부터 정치를 부정적인 것 혹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정치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퍼져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교육에 그대로 적용됐다.

필자의 경우엔 단 한 번도 투표 이외의 정치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 했다. "정치는 선거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게 정치다. 그러니 정당에 가입하고 네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라는 식의 교육은 없었다. 그저 "정치는 가까이 하지 말아라. 투표로 말해라" 정도의 교육이 일상이었다. 때문에 이런 교육을 받아온 청년들은 성인이 되어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정당가입, 정당활동, 청년정치인 등의 존재와 필요성을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긴 하지만 많이 피로한 상태다. 청년들은 정치에서 항상 소비되기만 했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제도(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평가받는 제도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1등만 당선되도록 설계됐기에 작은 정당이 큰 정당을 이길 수 없다. 때문에 청년들은 정치에 대한 꿈을 가지고 큰 정당에 들어간다. 하지만 정당 안에서의 권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계적이기에 청년들이 내부 경선에서 기성 정치인을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략공천이 아니면 당의 후보로 지명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정당들은 청년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싶으면 청년을 부른다. 청년을 위한 정책 발표회, 청년들과의 대화 등으로 말이다. 때문에 청년은 '늙은 정당의 비비크림'이라 비판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청년들이 사진모델 이상의 역할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월 17일 세종에서 "청년일자리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5월 22일 남양주에서 열린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대화에서 내뱉은 망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대화에서 청년 인력 유치를 위해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며 그 예로 '멋진 사내 카페 만들기'를 언급했다. 청년들은 이 망언에 분노해 카페주도성장이냐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청년들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삶에 절망한다. 현 청년세대의 핵심키워드는 절망이다. '노오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수저론과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한국에서 돈 많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시험을 치를 기회가 균등하니 노력만 하면 된다"는 말을 믿기엔 집안의 '소득'과 개인의 '성공'이 비례하는 지표들이 너무 많다. 오찬호 작가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펴냄)]라는 책에서 "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돈이 있어야지만 가슴도 뜨거워질 수 있다"고 말하며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은 꿈조차 꿀 수 없다고 개탄했다.

미래는 어두운데 대안이 없기에 어둠은 더 짙어진다. 청년들은 본인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과도하게 자신에게 지우는 경향이 있다. 실제 문제의 본질은 사회에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을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를 앗아간 건 다른 세대 혹은 다른 계급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원인이 뭔지, 해결책이 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답은 정치에 있지만 청년들은 자신을 자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들이 심상정보다 잘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청년정치'라는 말을 싫어했다. 싫어했다기보다는 편견을 가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청년정치라는 개념은 1) 청년이 직접 정치를 하거나, 2)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나이 기준에 맞는 청년이 정치를 하면 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 정치인이 청년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년정치라는 말을 처음 썼던 사람도 나이만 가지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청년을 위한 정치는 나이와 세대에 대한 소속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청년정치에 대한 말이 많지만 청년들이 청년정치를 심상정보다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때문에 나는 '청년정치는 굳이 청년이 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데 그게 청년이면 더 좋다'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 또한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SNS에 비판만 늘어놓고 정치영역에선 항상 한 발 물러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청년들이 정치영역에서 노력하고 있었고 내심 존경하는 선후배도 많이 있었다. 정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는 순간의 행동이 필요하다 느껴 참여연대에 들어간 친구, 국회에서 일하다 노동운동을 위해 노조로 떠난 후배,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국회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는 선배, 여성들이 받는 차별을 정치로 바꾸기 위해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 돈도 기반도 없지만 지역에서부터 정치를 바꿔가겠다고 고양시로 떠난 선배.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두운 미래에 대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능력도 재주도 많은 이들을 보면서 청년들이 심상정보다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아니라 10년 뒤에. 청년정치에 대해 고민하는 며칠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좋은 교육과 지원이 있다면 심상정과 노회찬보다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자질을 갖춘 젊은 인재들이 많은데 완전하게 성장한 정치인과 막 자라는 청년들을 비교한 것은 편견이 아닐까?”, “단지 그들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많은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공평한 시스템과 편견에 이들의 노력과 능력이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은 청년들이 심상정보다 부족해보일지 몰라도 좋은 교육과 지원이 있다면 넘어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훌륭한 청년들이 자라서 기성정치인을 뛰어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당의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각 정당에서 가산점을 주거나(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을 모집하거나(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를 청년으로 구성(바른미래당)하곤 한다. 이 역시 훌륭한 조치라고 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배우고 경험하고 적응해가는 시스템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집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정의당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10개월에 걸쳐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라는 ‘청년정치인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최근 진행된 정의당 제5기 당직선거에서 아카데미 출신 수강생이 부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청년들이 정당들 안에서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고 일선으로 나서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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