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치,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되 아무나 할 순 없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치,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되 아무나 할 순 없다?

[정치혐오의 천국, 대한민국] 태백산맥보다 높은 정치장벽 上

이걸 넘어가라고 만든 건지.. 함부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만든 건지... 현실정치에서 느낀 정치참여의 장벽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배웠지만 현실에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정치"였다. 정치를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취미생활 정도로 여기지 않는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헌법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은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을 보장하며 국민들의 참정권을 명시하고 있다.(제24조, 제25조) 또한 헌법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유로운 정당설립과 그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제21조, 제8조)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런 가치들은 현실에서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관계법으로 통칭되는 공직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은 평범한 시민들이 결코 정치영역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다. 앞서 말한 법들 중에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이 어떻게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지, 과도하게 높은 장벽을 어떻게 낮춰야 하는지 살펴보자.

공직선거법은 정치자금법과 다른 맥락의 정치참여 장벽이다. 정치자금법은 시민들에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부과해서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반면에 공직선거법은 시민들과 정치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어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말과 글 등 표현 자체를 막고, 정치참여의 기준을 높게 책정하는 등으로 말이다. 이해가 안 가는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살펴보자.

선거에 대한 얘기는 허용된 기간 안에만 허용된다. 보통 선거기간이라고 하면 예비후보 활동기간까지 합쳐 180일 가량이다. 선거일부터 선거일 180일 전까지 선거운동이 가능한데 그 이외의 기간 동안 선거와 관련된 어떠한 행위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선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간보다 선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기간이 길다는 말이다. 문제가 있는 후보가 다음 선거에 출마한다고 해도 D-180까지 그 사람의 낙선을 위한 어떤 행위도 해선 안 된다. 좋은 후보에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허용된 기간 안에도 엄청난 제약이 따른다. 특히 공직선거법 제90조와 제3조에 따르면 그 180일 안에는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시설물 설치, 문서 배부, 표찰 착용, 광고 등이 금지된다. 본 선거기간 전까지 선거운동이 가능한 건 예비후보자 뿐이다. 그 예비후보자 마저도 사무실 앞 현수막 게시, 명함 배부, 지역구 1/10의 세대에 공보물 발송, 어깨띠 착용, 전화 이외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선거일 90일전부터는 집회 자체도 금지된다. 지지자들이 모여서 행진을 해도 안 되고 등록된 선거운동원이 아니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호소도 할 수 없다. 본선기간이 된다고 해도 방송토론, 피켓, 선거운동원의 지지호소, 유세차 같은 소소한 것들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규제들을 보면 최대한 시민들에게 정치와 관련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게 막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방송에서는 현직 정치인 위주로 다뤄지고, 정치혐오 때문에 일상에서 정치 얘기는 금기시되고, 선거운동은 선거기간에만 할 수 있고, 선거운동은 할 수 있는 게 10가지도 안 된다. 도대체 시민들이 언제 좋은 후보를 어떻게 찾으라는 것이며 나쁜 후보는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 것인가. 후보나 정당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 후보가 좋은 후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가. 온 국민이 주목하는 대선후보 토론회 정도가 아니면 기회도 많지 않다. 공직선거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선거 때마다 반복된다. 하지만 선거 이후 다음 선거가 올 때가지 주목받지 못한다. 시민들은 정치에 대해 더 알고, 더 표현할 권리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250조와 제251조는 더 가관이다. 250조는 당선을 위한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허위사실공표죄) 251조는 당선·낙선을 위해 공연한 사실을 적시하여 후보자와 가족을 비방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근데 공익을 목적으로 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허위사실이야 그렇다 쳐도 사실을 기반으로 후보자를 깎아내려도 처벌을 받는다니. 사실에 근거해 후보자를 비판을 하는 건 다 공익을 위한 일이 아닌가? 이 두 조항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효과를 가진다. 한 유권자가 후보에 대해 말할 때 거짓이면 처벌하고 사실이어도 처벌한다는 말은 그냥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화 속에서 어렵사리 도전을 해도 기울어진 선거제도 하에서는 당선을 꿈꾸기 어렵다. 현 선거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다수대표제다.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거대정당 후보가 아니고서야 당선은 남의 일이다. 그나마 현재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당선이 되고 자유롭게 정치를 펼칠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국회엔 교섭단체라는 희한한 제도가 있다. 교섭단체는 20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만 구성할 수 있다. 거대정당 소속이 아니면 상임위원회 위원장, 간사도 맡을 수 없고 정치 일정도 논의할 수 없는 처지다. 왜 20명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10명 기준으로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저 정치참여의 벽을 쌓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제도다.

한국의 정당들은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보조금은 분기별 대략 100억 정도이다. 이 금액의 1/2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나눠 갖는다. 20석 이하의 정당 중 5석 이상은 5/100, 5석 미만의 정당은 2/100의 금액을 받는다. 이후 남은 금액들을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한다. 차라리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하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아무 근거 없이 20석을 기준으로 정당 간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국회 자체도 교섭단체 기준으로 운영되는데 보조금 지급마저도 교섭단체 구성 유무가 기준이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제약 속에서 새로운 참여자가 들어와 목소리를 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정치자금법을 포함한 많은 정치장벽들은 시민들을 정치와 격리시킨다. 누구나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지만 현실에서는 함부로 참여할 수 없다. 의회라는 경기장 밖에선 거대정당들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경기장 안에서는 기득권들의 주장만 가득한 상황에서 누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을 것인가.

정치장벽이 높으면 그 장벽 안에서 많은 것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만 좋다.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안에서 모든 걸 결정해버리면 되니 말이다. 거대언론, 거대정당, 재벌대기업을 포함한 사회의 기득권층은 거대한 정치장벽 안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회 시스템을 만든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사회구조, 부가 대물림되어 태어난 부모를 원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 '노오력'이 중요하다며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사회구조. 모든 게 다 거대한 정치장벽 안에서 그들이 결정한 룰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적어도 정치만큼은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기득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고 그 불합리한 경쟁을 통해 다시 기득권을 움켜쥐게 두어서는 안 된다. 부가 대물림되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이 시대에서 한 줄기 희망은 정치밖에 없다. 정치만큼은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영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을 때만 사회가 불평등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