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10개월 동안 청년정치인 육성 프로그램인 '진보정치 4.0 아카데미'의 기획과 실무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느끼고 고민했던 지점이 많았다.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당시 느꼈던 고민을 풀어보고자 한다. 정치혐오가 만연한 한국에서 왜 의회정치가 중요한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외면하는 상황과 무엇이 청년과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로 막고 있는 지 등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정치얘기는 더러우니까 하지마."
작년 연말 대학 동기들과 송년회에서 불쑥 나온 말이다. 정당에서 4년을 일해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저런 무분별한 정치혐오는 점점 시민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만 할 뿐이라 생각했다. “정치가 더럽다는 편견을 가지고 피하게 되니까 정치가 제기능을 못할 뿐이야.” 나는 당황해서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놓았고 몇 번의 언쟁 끝에 나온 한 마디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정치가 나서서 정치가 더럽다는 인식을 갖게 하잖아!” 딱히 받아칠 말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화의 악순환을 이어갈 뿐이기에 정치와 관련한 언쟁은 거기서 끝났다.
정말로 정치가 문제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시민들이 정치인에게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치인들 스스로에게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비키니 사진을 본 권성동 의원처럼 '딴짓'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애교다.(권 의원은 현재 강원랜드 부정청탁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성폭행, 뇌물수수로 지역을 살고 있는 심학봉 의원, 10억원대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7년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이우현 의원, 5.18이 북한군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종명 의원 등. 최근 사례만 해도 일일이 거론하기 벅차다.
하지만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생각은 언론이 어떻게 정치를 말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 좋은 예시가 있다. 이러한 기사를 보면 시민들은 정치를 단순한 싸움 혹은 게임으로 인식할 것이다. 물론 당시 국회 상황이 난장판이긴 했지만 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하는지, 어떻게 하다가 패스트트랙 정국이 몸싸움으로 번졌는지, 누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이를 막으려 하는지 설명은 없다. 앞뒤 자르고 정치의 부정적이고 갈등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기사들은 시민들의 정치혐오를 유발한다.
언론이 정치인을 보도하는 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정치인이 시민의 대표로 제 역할을 하도록 언론이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인의 인간적 실수를 문제 삼아 대표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언론이 가진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여론 형성이다. 시민들의 막연한 정치혐오는 이와 같은 언론 보도에 기인한다. 기사를 통해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언론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그보다는 정치인을 합리적으로 비판해 그들이 시민의 대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한다.
교육은 또 어떤가. 학생들은 학교에서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적인 지식들을 얻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다른 건 다 가르쳐도 정치만은 가르치지 않는다. 마치 정치를 만져선 안 되는 것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정치에 대한 교육은 ‘선거일에 투표해야 한다’ 정도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이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만 19세 이상만 투표할 수 있는 한국의 19금 정치는 학생들을 정치와 무관한 시민으로 키우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정치와 격리된 깨끗한 공간에서 자라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한국의 시민들은 다방면에서 유발하는 정치혐오로 인해 정치와 많이 멀어져 있다. 앞서 말한 원인들(정치, 언론, 교육)을 살펴보다보면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맨날 싸움질만 한다"는 말부터 "(거짓말 많이 하는 친구에게)정치하면 잘하겠네" 같은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는 걸 보면 한국 사회에서 정치혐오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시민들은 "그 놈이 그 놈"이라며 투표를 하지 않든가, 선거일은 놀러가는 날 정도로 생각하고 선거기간만 되면 "평소에 하는 일도 없으면서 표 구걸할 때만 되면 시끄럽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가 떠난 자리엔 反정치만 남았다. 악순환은 악순환을 부른다.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되면 자연스레 정치와 멀어지게 된다. 시민들과 멀어진 정치인들은 제멋대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다시금 정치와 시민들을 멀어지게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반정치다. 시민들은 부패한 정치인들을 미워하고 국회의원들을 외면한 채 직접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다.
"촛불은 정치인들의 발언을 최대한 배제하고 국민들의 참여만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 촛불집회가 한창 뜨거울 당시 어느 토론회에서 집회를 주도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정치와 정치인들을 철저히 배제해야만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소극적인 국회에 분노했고 정치권과 자신들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 열망을 받아 방송인 김제동 씨는 '너희가 안하면 우리가 한다'는 슬로건으로 만민공동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국민과 정치인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확실히 정치권은 촛불 이전 몇 년 간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된 이후 정치권은 이에 등 돌렸고 정치는 요지부동이었다. 언론에 외압을 넣는 여당 당 대표(이정현), 정치권 내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같이 단식하는 제1야당 당 대표(문재인), 정권차원에서 진행된 유가족들에 대한 외면 등. 2015년엔 정부의 '쉬운 해고'와 '임금피크제'를 골자로 하는 노동개악이 진행됐고 전설로 남은 심상정 의원의 사자후 영상 외엔 정치권의 어떠한 저항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후 시민들의 정치혐오는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권력은 견제 받아야 했으나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소위 권력은 견제를 받아야 마땅하고 그러한 장치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대화와 타협과 숙고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 행정부를 견제할 입법부가, 사법부가, 언론이 모두 한 조직처럼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 당시의 현실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국가의 주권자인 시민들은 "너희들의 권력은 단순히 위임받은 권력일 뿐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대단히 엘리트주의적인 일상의 정치를 넘어선 초일상의 정치영역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정치권이 오랫동안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고 시민들은 이에 집회로 맞섰다. 2016년 10월 29일 1차 집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은 촛불을 들었고 2017년 4월 29일 23차 집회를 마감으로 해산했다. 결국 정치권이 시민들의 열망에 부응해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촛불은 지지부진했던, 실망만 안겨주던 정치를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비록 정치권의 힘을 빌려 정치적인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린 건 시민들이 들었던 촛불 덕분이었다. 유재원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돌 하나 안 던지고 권력자의 항복을 받은 것은 역사상 최초이고, 세계에서도 처음”이라며 촛불을 높이 평가했다. 나 역시 매주 광장에 나가 시민들과 함께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시민들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돌이켜보면 4.19혁명, 5.18 광주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2016 촛불 등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것은 정치권 밖에 있는 의식 있는 시민들의 참여 덕분이었다. 일반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광장정치가 한국 사회가 엇나가지 않도록 관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이 정치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의회정치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 광장정치는 의회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 의회정치 역시 빈틈이 있고 그것을 매우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회와 정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부정한다고 새로운 시스템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정치를 멀리한다고 정치가 자연스레 정화되는 것도 아니다. 정당활동과 정치에 뜻을 가진 청년들이 이 지점을 꼭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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