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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못해 환장한 나라, 한국"

[데스크 칼럼]盧대통령, '헌법'에 충실하라

"지구상에서 단 한나라 우리나라만 파병 못해 환장한 나라 같다."

한 중견 직장인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 작금에 돌아가는 분위기를 이보다 정확히 짚은 말도 따로 없어 보인다.

***"파병 못해 환장한 나라, 한국"**

그의 말도 과장이 아닌 것이 미국의 '이라크 전투병 추가파병' 요구가 알려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지배세력이 보여준 움직임이 그러하다.

가장 먼저 국내 보수언론들이 미국의 파병 압박 직후부터 노골적으로 "국익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의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야당인 한나라당도 곧이어 '파병 찬성' 입장을 흘리면서 연일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최근 들어서는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외통장관, 주미대사, 통일부장관 등이 마치 각본이라도 짠듯이 돌아가며 잇따라 파병 찬성 또는 조기 파병 발언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재벌들 모임인 전경련까지 경제실리를 내세우며 파병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한국의 내로라 하는 권력집단이 예외없이 노대통령에게 파병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의 절대우방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헝가리, 인도, 네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군사대국화를 위해 연내 파병을 앞장서 약속했던 일본조차 이라크 정황악화에 따른 자위대 인명손실을 우려해 11차례나 현지조사단을 보내면서까지 파병을 늦추고 있는 게 지금 국제사회의 현주소다.

이러다 보니 "한국만 파병 못해 환장한 나라 같다"는 낯 뜨거운 얘기를 들어도 따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정부의 조직적 파병 여론몰이**

미국의 파병 압력이 들어온 것은 지난달 4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무부 부차관보의 방한을 통해서였다. 일개 부처의 '부차관보'급이 직접 청와대를 찾아와 파병 요청을 한 것 자체가 외교관례상 '모욕적'으로 비칠 수 있을 만큼 큰 결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두 말 없이 "진지한 검토"를 약속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부시 미정부의 핵심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운 한 전직 정부고위인사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미국쪽을 알아보니 우리더러 늦어도 '10월 중순'까지 파병 결정을 내리라는 거더라. 심사숙고하고 말고 할 시간조차 없는 셈이다. 아마도 노무현 정부는 10월중에 파병 결정을 할 것이다. 단지 어떻게 정부가 파병 명분을 찾느냐가 문제인듯 보인다."

이때는 아직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파병 규모나 시기, 지역, 군대의 성격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요구가 없었다"고 강변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지 않았음이 하나씩 드러났고, 9월말부터는 노골적으로 미국이 정해준 '최종 시한'을 의식한듯 각료들의 '조직적 조기파병론'이 앞다퉈 터져나오고 있다.

파병 이유도 '국익론'에서부터 시작해 '보은론' '북핵 바터론' 등 다종다양했다. 심지어는 미국에 그 어떤 조건을 붙이지 말고 파병해야 한다는 '무조건 파병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3일 파병론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이라크 현지조사단이 귀국하는 대로 내주초부터 '조기 파병'을 공론화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현지조사단이 귀국도 하기 전에 이들이 보내온 '중간보고'를 인용하는 형식을 빌어 "이라크 현지에서 테러가 심각한 것으로 국내에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현지조사단이 판단하고 있다"(한겨레신문 2일자)며 여론몰이를 시작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같은 날인 1일(현지시간) 미국에 대한 아랍의 적개감이 '충격적' 상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1면 톱 기사로 내보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내용이다.

***보름새 들러리로 전락한 '국민여론'**

이처럼 지배세력의 파병 불가피론이 확산되면서 노대통령의 인식에도 미묘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파병 요구가 밝혀진 직후 "파병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식'"이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하지만 1일에는 파병의 전제조건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확신할 수 있는 안정적 대화국면의 조성"을 거론했다.

이같은 대통령의 변화는 미국의 파병 요구가 알려진 뒤 행해진 각종 여론조사에서 70%가까운 국민이 파병에 반대하는 등 파병 반대여론이 압도적인 데 따른 변화가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특히 지난달말 한미동맹 50주년에 나온 노대통령의 '보은' 발언은 노대통령이 이미 파병을 결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이같은 변화와 관련, "여론조사를 봐도 파병에는 반대하나 유엔 결의가 나오면 찬성하는 쪽이 약간 많고, 파병 반대론자들도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지 않냐"며, 유엔 결의만 나오면 국민여론은 더이상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파병 압력이 공개화된지 보름도 안지나, 어느 새 '국민 여론'은 들러리로 전락한 셈이다.

***"盧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한국의 카다피"**

노대통령 취임 직후 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던 모 방송토론회에서 토론회가 끝난 뒤 토론자들과 차를 마시는 사이에 들은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계, 언론계의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이들은 대선직후에 미국을 방문해 미국 정부들과 만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화두는 미국의 '노무현관(觀)'이었다. 한결같이 노무현 당선에 대한 부시 정부의 우려가 크다는 얘기를 했고, 이에 대해 자신들이 어떤 조언을 했는가도 얘기했다. 그 중 한 인사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노무현은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다. 따라서 미국은 노무현을 조심조심 잘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카다피'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우리 사회 지배세력의 사고방식이 '어느 편'에 서있는가를 극명히 알 수 있는 얘기였고, 노대통령이 어떤 세력에게 둘러싸여 옥조임을 당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72조**

대한민국 헌법 제72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이 조항에 앞서 위치한 헌법 제69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벼랑끝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향후 노대통령이 직면할 정치적 어려움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때 일국의 대통령이 기댈 곳은 다름아닌 '헌법'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 7월12일 제정이래 9차례나 개정됐을 정도로 결코 순탄치 못한 길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헌법은 엄연히 국가의 모든 권력집단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제약하는 조항인 동시에, 국제적 외압에서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기도 하다.

노무현정부는 '참여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 여부야말로 '국민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대사이다. 파병찬성론자는 당당히 찬성이유를 밝히고, 반대론자는 당당히 반대이유를 밝히자. 그리고 국민의 선택을 받고,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자.

이 길만이 미국이 불씨를 제공한 파병에 따른 국론분열을 최소화하고,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천문학적 국민세금을 소진할 수도 있는 파병문제는 '대통령의 선택' 사항이 아닌 '국민의 선택' 사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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