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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의학 모두 건강이란 우주를 항해할 도구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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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의학 모두 건강이란 우주를 항해할 도구일뿐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카오스와 코스모스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병을 파악하고 치료법을 다 정한 후에도 가능하면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입니다. 사람마다 드러내는 부분은 다르지만, 그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 보면 모든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드라마이며 영화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상담을 마치고 그들이 남겨 놓은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면 우리 삶이란 결국 한 편의 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느냐는 생각을 하지요. 그러고 보면 '의사는 환자에게서 배운다'는 말은 단순히 치료의 경험을 통해 완숙한 의술을 습득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이야기를 써 나감을 뜻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편한 증상과 그것의 바탕이 되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 삶이 그렇듯 논리정연하지 않습니다. 때론 환자가 한참을 이야기하다 "제 몸이 종합병원이지요?"라고 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그렇듯, 자기변명과 자기방어라는 기제가 작동해 환자가 어떤 이야기는 숨기고 어떤 이야기는 과장되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아마 아무런 기준이 없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진료차트는 한 편의 단편소설이 되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한의학은 인체를 소우주라고 표현하는데, 환자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정말 혼돈으로 가득한 우주와 같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의학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잘 알 수 없는 인간의 몸과 감정과 정신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준을 갖고 들여다봐야 무엇이 정상이고 어디에 이상이 생겼는지, 왜 그렇게 되었고 그 전개되는 과정은 어떠할지를 알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오스적 상태를 파악해서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코스모스를 발견하기 위한 작업인 셈이지요.

전통 한의학의 음양오행, 기, 체질 등의 개념이 이러한 코스모스를 발견하기 위해 쓴 대표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규정하기 어려운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경험과 연구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법칙과 용어를 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인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파악한 것이지요. 또한 당시 사람들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규칙성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말한 '인체는 소우주'라던가 '천인상응(天人相應)'과 같은 말들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현대의 도구는 뭐니 뭐니 해도 물질과학입니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해 파악합니다. 이것으로 증명이 되면 참이고 아닌 것은 거짓이 될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현대 모든 학문의 기준이 되고 있고, 현대의 한의학 또한 물질과학이 이뤄낸 성과들을 흡수하고 그 기준에 맞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로 통일됨이 정말 올바르냐는 생각이 듭니다. 도구가 너무 강력해지면 우리는 왜 그것을 쓰는지를 잊고 그 속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의 역사에서도 앞서 말한 도구들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다 보니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꿰어 맞추거나, 생각이 도리어 용어와 이론에 갇히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 현대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알 수 없거나, 비합리적이거나,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내용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었던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고 말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말을 걷어내면 여전히 유미의한 내용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의 물질과학에도 똑같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물질화하다 보니 인간 스스로가 수단이 되거나, 비윤리적인 연구 또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팀 쿡이 한 대학졸업 연설에서 한 "로봇이 인간을 닮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인간이 로봇처럼 되는 것이 걱정"이라는 말 또한 이런 위기를 반영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가 진리라 믿었던 이 물질과학에도 오류가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질문을 하지 않고, 이 수단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잊는다면 도구가 훌륭할수록 우리는 그것에 빠져 본래의 목적을 잊게 될 확률이 큽니다.

이제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의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어떻게든 환자의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이용하는 도구가 다르더라도 그것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같다면,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증명 가능하다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의학체계만으로는 병과 건강이라는 혼돈의 상태를 모두 설명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환자 중심으로 도구를 모으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가까운 미래에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해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의 세계에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만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죠.

한 사람의 건강과 질병은 수많은 변수가 만들어낸 그 사람의 인생에서 피어난 꽃이고 열매입니다. 단순하게 그 꽃과 열매만을 보고 접근한다면 그 뒤에 감춰진 사람이라는 방대한 정보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눈앞의 꽃과 열매를 무시하고 사람만을 붙들고 있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혼돈은 질서를 드러내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사람을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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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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