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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완치보다 완화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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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완치보다 완화가 중요합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치료의 다양한 목적

"지난 한 주는 어떠셨어요? 걷기는 꾸준히 하셨죠?"

"고만고만했어요. 선생님 말 듣고 30분이라도 걷고자 하는데 그것도 힘드네요. 언제나 좋아질까요?"

"최근에 말씀드렸지만, 지금 단계에서의 목표는 더 후퇴하지 않는 겁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은 물러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오래 쌓인 후 드물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몇 개월 전 허리가 아파서 내원했던 할아버지와 요즘 자주 나누는 대화입니다. 보호자와 함께 오다가, 지팡이를 짚고 오다가, 지금은 한두 번 쉬지만 지팡이 없이 스스로 힘으로 내원합니다. 혼자서 걸어오는 게 가능한 이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하는데, 오실 때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제대로 챙겨 드실 것과 낮에 햇볕 쬐면서 걷기, 그리고 밤에 좀 더 일찍 자는 것을 점검하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아프던 상태에서 조금 나아지고 나니 얼마 전부터는 언제쯤이나 다 나을지를 궁금해하십니다. 할아버지는 기존에 처방 받아서 복용하는 약물이 너무나 많아 몸이 그걸 견딜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2년 전에는 암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은 후 추적관찰 중인데다가 몸의 활력점수가 너무 낮아서, 저는 내심 이 정도까지 회복된 것도 다행이다 여기고 있던 참이었는데 말이지요.

치료에 있어서 환자의 의지와 의사의 실력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랜 투병과 투약, 강한 치료 등으로 인해 환자의 몸과 마음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망가진 경우가 특히 어렵습니다. 물론 여기에 노화란 수식어가 붙으면 더욱 그러하고요. 이분들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이 제 경험으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병의 상태와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치료의 목표치를 낮춰서 이야기합니다. 현재의 심한 불편함을 개선해서 생활의 질을 지금보다는 조금 향상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좋아지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환자의 인식이 부족할 때는 검진을 권하기도 합니다. 환자가 막연한 기대를 품거나 병을 회피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나아질 확률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안은 어쩌면 제 실력이 부족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에 어두운 탓일 수도 있고, 환자의 의욕을 꺾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제 말씀을 긍정하고 꾸준히 치료를 지속하는 환자가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의사를 찾아가는 환자도 많습니다. 그러다가 일이년 후에 다시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과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하다 보면,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있는데 내가 모르거나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이 섞인 반성과 함께 치료의 목적을 생각하게 됩니다.

드러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때로는 악화되는 것을 막거나 악화의 속도를 늦추고 병으로 인한 불편을 덜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환자는 완치를 원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태라면 초점을 병 자체보다는 사람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환자의 인간다운 삶을 지지해주는, 적어도 지금보다 더 후퇴하지 않도록, 그리고 물러나더라도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해가면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좁게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 행해지는 완화의학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확대하면 환자들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여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지금, 혹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동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병과 건강이라는 숙제만 어느 정도 정리되어도 한결 삶이 경쾌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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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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