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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은 윤리로 뚫어야"

[데스크 칼럼] 극한불황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한국경제는 대중국 수출만이 유일한 성장엔진이며, 신용카드 문제도 여전히 잠복된 상태이고 국내투자가들은 경기회복에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 앤디 시에가 최근 한국을 방문한 뒤 작성한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적확하게 지적한 분석이라 하겠다.

***"한국 내수시장은 3년내 못 살아날 것"**

9일 만난 한 외국계 펀드매니저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내수가 언제쯤 살아나겠느냐'고. 내 답은 '99년도의 바이코리아같은 광풍이 불어 사람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지않는 한 2~3년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3년간 한국경제는 내수로 먹고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드 붐과 아파트 투기 붐이 그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기에 기대하기 힘들다. 카드 사용액의 경우 미국 수준인 GDP(국내총생산) 대비 75%에 달해 더이상 확장이 힘들어보인다. 아파트값도 더이상 폭등하기 힘든 임계선에 도달해있다.

카드채 부실만 해도 2~3년에는 완치되기 힘든 상황이다. 카드채 문제라는 것은 연체자들이 카드 빚을 갚아야지 근원적으로 풀리는 것인데 과연 2~3년에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는 '최근 반도체 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답했다.

"반도체 등 IT(정보통신)경기가 회복조짐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회복속도가 완만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또한 협력업체들이 생산하는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와는 달리, IT산업은 주위에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IT산업이 좋아진다 할지라도 삼성전자 등 일부기업에게만 호황의 혜택이 돌아갈뿐, 이와 무관한 대다수 기업에게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그는 요즘 증시에 외국자금이 봇물 터진듯 들어오는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분석을 했다.

"돈이 들어오는 곳은 달러 약세에 따른 환차익 등 단기차익을 겨냥한 금융시장일뿐이다. 한국에 공장을 짓고자 하는 외국기업은 없다. 땅값 비싸고 임금 높고 노사문제 복잡하고 회사투명성도 낮고 남북관계도 불안한 곳에 누가 거액을 들여 공장을 지으려 하겠느냐. 그럴 바에야 중국에 가는 게 백배 났다. IMF이후에 성사된 직접투자라는 것도 부실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가공한 뒤 되파는 수준의 투자였지, 직접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든 투자는 거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1999년 바이코리아같은 거대한 유동성 장세가 선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상당기간 한국경제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물경제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장세란 결코 오래 갈 수 있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경제는 지금 산업구조재편이 시급한, 자못 심각한 구조적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미국 증시 호황은 착시현상"**

월가의 또다른 친분있는 애널리스트도 기자에게 최근 비슷한 메시지의 메일을 보내왔다.

"미국경제는 지금 증시가 활황기조를 보이는 등 외형상 회복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모르핀을 맞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신세다.

지금 미국경제는 '부시 효과'를 기대하며 금융시장이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선 부시가 모든 경기부양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는 텍스 컷(tax cut:감세)을 이미 단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달러화 약세를 묵인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유가를 배럴당 20달러선까지 끌어내리려 할 게 분명하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렇게 하면 내년부터는 미국경제가 살아나고 세계경제도 좋아지지 않겠냐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물을 보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미국의 핵심산업인 IT산업의 경우 아직도 공장가동율이 정상보다 10%포인트 밑돌고 있다. 실물경제에서 아직 거품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계속 감원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실업률은 6.4%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있다.

실물경제에 바탕하지 않은 금융장세는 일시적 '착시 현상'일뿐이다."

***불황 시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원(KDI)은 9일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3.1%로 대폭하향조정했다. 이는 지난해말의 전망치 5.3%와 올해 1.4분기의 수정전망치 4.2%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KDI는 2.4분기 성장률이 2.4%로 1.4분기의 3.7%보다 낮아져 상반기에는 2 분기 모두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하반기 역시 전년동기 대비 성장률은 3.4분기와 4.4분기가 각각 3.0%와 3.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하반기는 물론, 내년 경기도 그다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특히 민간 소비는 연간 0.6%에 그쳐 성장률 저하의 주범이 될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설비투자도 4.4분기에 5.1%로 확대되지만 연간 1.0%에 머물 것으로 관측됐다. 경상수지도 연간 18억달러의 흑자를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의 경상수지 흑자는 61억달러였다.

수출, 내수, 투자 모두가 좋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전망인 동시에, 최근 외국인주식자금의 대거유입으로 금융시장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실물경제는 쉽게 냉각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임을 보여주는 한 근거자료라 할 수 있다.

***고개숙인 김진표 경제팀**

이처럼 실물경제가 위태롭자, 불과 한달여 전까지만 해도 연간 4% 성장을 호언했던 김진표 경제팀도 3%대 성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최근 고개를 숙였다.

정부는 추경예산 편성과 특소세 인하를 서두르고 야당도 여기에 가세해 근로소득세 인하까지 추진해 사실상 합의에 이르른 상황이다. 내년부터 국방비 대폭 증액으로 타부처 예산은 '동결'을 해야할 정도로 재정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재정에 구멍이 나는 일을 감수하더라도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이다. 뒷짐지고 가만히 있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어떤 날벼락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한국은행에 대해서는 추가 금리인하 압박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외형상 주가가 오르고 채권금리가 오르고 있으나 밑바탕 실물경제가 엉망인 만큼 '금리인하'라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재정, 세금, 금리라는 가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실물경기를 되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게 재계, 정치권 등의 일치된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접근방식은 여전히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채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자고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경기 사이클상의 불황'이 아니라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심각한 '구조 불황'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대책은 '링거 주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불황기에는 윤리를 세워야 한다"**

한 대형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올해는 숫자를 잊기로 했다"고 말했다. "숫자를 조금 호전시키기 위해 편법을 쓰기보다는 왜 이런 어려움에 봉착했는가를 철저히 분석하고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자체개혁 노력에 전념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는 "은행의 최대주주인 외국투자가들도 '올해는 숫자를 안보겠다'고 말하고 있다"며 "지금은 허리띠 바짝 조이고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도 기자에게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불황기에는 아무리 경기부양을 해봤자 별무소용이다. 이럴 때는 모든 경제주체의 '윤리'를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 예로 기업의 경우 투명성을 높이고 불공정거래 행위를 없애고 해,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기업의 경쟁체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반대로 한다. 정부는 기업의 온갖 민원을 들어주기에 급급하고, 기업은 도리어 정부에 대해 '우리 요구를 신속히 받아들이지 않고 뭐 하고 있느냐'고 큰 소리 친다. 이런 과정에 윤리는 퇴행하고 구조모순은 도리어 심화된다.

DJ정부도 초기에는 일을 제대로 하려다가 정권 후반기에 총선등 정치일정을 의식해 고삐를 늦춘 결과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SK글로벌 분식회계야말로 DJ 재벌개혁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증거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중국을 방문중인 노무현대통령은 9~10일 중국경제의 성장엔진인 상하이 포동지구를 돌아보고 있다. 한국경제의 '기회'이자 '위기'인 중국과 겨뤄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귀국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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