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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 수용 안해도 그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인권의 충돌은 만연하다. 이러한 인권의 충돌에 관한 조정 및 제도개선을 위하여 한국은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해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입법·행정·사법부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인권침해를 받은 진정인의 진정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고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담당 부처 및 기관에 권고조치를 제시한다. 이러한 제도적 차원에서의 권고조치를 통해 제도가 개선되면 그 인권침해 및 차별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리구제 조치가 법적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에 의한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처 및 조직들이 수용 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이러한 불수용은 인권의 제도적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권의 제도적 충돌에 관한 문제해결을 위하여 본고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조치에 관한 수용율을 부처 및 기관평가에 적극적 반영, 불수용 결정 이후의 제고 방안 마련, 그리고 가칭 '인권영향평가'의 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

만연한 인권의 충돌

인권의 충돌은 만연하다. 개인과 개인의 인권충돌부터, 개인과 조직 및 제도, 조직간, 그리고 국가간 인권의 해석 및 적용의 충돌은 인권충돌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 충돌이 만연한 이유는 인권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조효제는 인권의 문법이라는 책에서 인권담론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인권이 지향하는 목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인권이란 유토피아 건설과 같은 이상향적인 추상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강조해야 함을 의미한다. 조효제는 인간이 가지는 최소한의 요구를 절대적으로 관철한다는 점에서 '최소절대화(Absolute-minimum)'라는 방식에 의해 인권의 기제가 작동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권은 더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인권의 상징성과 현실은 아무리 최소한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인권의 실현은 그 진행이 더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아주 단순하게 인권은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드러나는 인권격차는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목격되는 일상이기도 하다. 인권선언이 채택되고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인권선언들이 추가되고 있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노력들에 비하여 실제 모든 사람들이 인권을 충분히 보장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많다.

또한 인권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 그러나 상대주의 관점에서 다양한 상황에서의 인권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권들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인권이 보편적이라고 선언할 수 있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적용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가치와 권리들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의 인권 가치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인권이란 선택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의 인권보장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일예로, 우리는 장애인 시설 및 기관의 설치에 있어서 장애인(부모), 국가기관, 그리고 그 지역주민 간 이해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를 흔치않게 목격한다.

2017년 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에 대한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자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모습이 뉴스에 등장하였다. 이 지역에 한방병원 설립을 희망하는 지역주민들이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등장한 갈등의 모습이었다. 서울에 사는 장애학생은 약 1만3000명 정도인데 반해 특수학교는 29개에 불과하고, 2002년을 마지막으로 추가적으로 개교한 특수학교는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장애인 특수학교의 설립은 서울교육청이 처음부터 추진하였으나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또는 새로운 의료시설이용권이라는 주장과 장애인 학생들의 교육권의 충돌의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인권의 상징성과 현실사이의 격차는 우리사회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현재 한국은 국제적인 인권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우리사회의 인권수준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나는 이러한 현실적 괴리를 무엇보다도 인권선언의 법적 강제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질서의 과정에서 채택된 인권선언들이 강제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인권선언들은 기본적으로 인권 향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되고 있고 가능하면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각 국가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여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 정도로 지극히 임의적 성격이 강하다.


인권 충돌에서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UN은 1946년 국제인권법의 국가별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 국가별 인권기구의 설치를 권유하고 있다. 이후 1978년 UN 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침(Guidelines for the Structure and Functioning of National Institutions)'을 제정하였고, 1991년 파리에서 개최된 국가인권기구 국제워크샵에서 ’파리원칙(Paris Principles)'으로 알려져 있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of National Institutions)'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였다. 한국은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Korea)를 설립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해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서 입법·행정·사법부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국가인권위원회 활동 및 역할에 대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2001년 5월 24일 제정된 이후 2012년 3월 21일 내용이 일부 개정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총 6장, 전문 63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6장은 제1장 총칙, 제2장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제3장 위원회의 업무와 권한, 제4장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의 조사와 구제, 제5장 보칙, 그리고 제6장 벌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제2조 1항은 인권의 정의를 “인권이란 대한민국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4조에서는 법 적용범위로 대한민국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에 있는 외국인에 대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주요 업무내용을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실태조사 및 연구, 인권에 대한 교육 및 홍보, 그리고 국제적인 교류 및 협력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매달 진정사건 접수 및 처리 현황을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있으며, 2018년도 진정사건 처리결과에 관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처리건수의 구분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은 권리 침해를 받았다고 진정을 접수하는 비율이 75.8%(7716건) 차별에 관한 진정(2437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진정에 대한 처리 내역으로 가장 비율이 높은 것은 각하(6284건)로 나타났고, 뒤를 이어 기각(3098건)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거나 진정인의 심경변화 및 진정사유 해소 등의 이유로 진정을 취하한 경우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진정건수가 많은 침해의 경우 그 구제율이 8.7%로 차별의 진정건에 대한 구제율 38.7%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넷째, 실제적인 권리구제의 일환으로 제시되는 처리 내역들(수사의뢰, 조정, 권고, 고발, 징계권고, 긴급구제, 합의종결 등) 중에서는 권고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인권의 제도적 충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에 대한 불수용을 중심으로

인권침해를 받은 진정인의 진정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고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담당 부처 및 기관에 권고조치를 제시한다. 이러한 제도적 차원에서의 권고조치를 통해 제도가 개선되면 그 인권침해 및 차별이 획기적으로 낮아지는 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러한 인권위 권고조치가 정부부처에 의해 수용된 사례들도 상당 수 있다. 예를 들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장애인 경사로 설치에 대한 인권위 권고에 보건복지부의 수용,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휠체어 리프트 설치에 관한 인권위 권고를 국토교통부 및 기획재정부의 수용, 복지부의 HIV 감염인 의료차별개선 인권위 권고 수용 등은 그 예들이다. 이러한 권고조치의 수용은 정부 부처 및 조직들이 인권침해 및 차별에 대하여 개선조치를 취하고 그 만큼 효과적인 차원에서 인권향상이 현실화 되고 현실 속에서 체감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권리구제 조치가 법적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에 의한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처 및 조직들이 수용 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아래에는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보도자료에 제시된 최근 몇 개의 권고조치에 대한 불수용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학교수인 진정인이 대학교 총장의 배임 및 성추행 관련 재판을 방청하다가 재판장인 판사가 진정인을 일어나게 하더니 탄원서와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증거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과 관련하여 수차례 “주제 넘는 짓(행동)을 했다” 또는 “주제 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판사가 법정 방청객에게 인격권을 침해하는 언어적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해당 판사에게 주의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 시행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해당 판사가 소속된 수원지방법원장과 사건이 발생한 법원인 광주지방법원장은 이에 대해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9. 05. 26).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들에서 건학이념 등을 이유로 대학 내 성소수자 관련 강연회와 대관을 불허한 진정사건에 대해 집회의 자유 침해 및 차별행위로 판단하고, 해당 대학에 징계처분 취소 등을 권고 의결하였다. 그러나 해당 대학들은 이에 대해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9. 05. 07).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일률적으로 노인복지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노인장기요양급여에 따른 심사 그리고 요양서비스 이용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두 제도간 활동지원 급여시간의 차이 및 활동보조인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만65세 이상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 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보건복지부가 불수용하였다(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 2017. 11. 24).

그 밖에 미국대사관 앞 1인 시위 허용에 관한 인권위 권고에 경찰의 불수용, 서울여대의 경우 합숙형 인성교육 개선 인권위 권고조치 불수용, 한국프로볼링협회의 나이차별 인권위 시정권고 불수용, 경북대학교병원의 가족수당 차별 시정 인권위 권고의 불수용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조치를 했지만 해당 부처 및 기관에서 불수용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불수용 사례들은 해당 기관들의 내부적 상황 및 제도적 고려 등을 통한 대응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수용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제도적 위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정립을 위한 제언들

인권 그리고 인권보장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흔들리기 쉽다. 상황별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쉽게 휘둘릴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인권의 선언적 특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권의 선언성 수준을 넘어서 실제 작동하는 그리고 인권이 신장되는 제도적 실현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이 가지는 권리가 다양하다는 점은 인권 문제를 분석하고 인권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등의 과정에서 다차원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역사적으로 기본권 논의가 자유권 및 시민권의 보장에 치중하였다면 최근에는 인간의 사회권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를 위협하는 다양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위험들이 등장하면서 인권문제는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의 유입으로 인한 다문화,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난민 등 이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무감각했던 주제와 대상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의 복잡성은 인권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다차원적 접근방식을 채택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차원적 접근 원칙은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서 좀 더 꼼꼼하고 치밀한 분석방법 그리고 실천모델들의 결합 및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에 간단하면서도 몇 개의 욕구들만을 파편적으로 지원해주던 방법들은 인권의 향상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차원적 접근 원칙의 적용은 통합적인(holistic) 이해와 해결방안의 모색으로 연결된다. 단순한 욕구 충족 수준을 넘어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민권, 정치권, 사회권, 그리고 경제권과 같은 권리들의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제시해 본다. 첫째,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 및 시정조치에 대한 수용률을 정부 부처의 기관장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를 위하여 이러한 기관장 평가지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 수용률을 도입할 것을 검토하였다. 보다 적극적인 도입 및 운영 방안의 모색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조치에 대한 해당 부처 및 기관의 불수용이 이루어진 다음에 후속조치 및 과정에 대한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부처 및 기관의 불수용에 대해서 불수용 근거나 이유에 대한 판단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 보도자료에 공개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에 이러한 불수용 사례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이해관계 부처들 간의 협의 및 재고에 관한 절차적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및 성인지 의식 확산을 위하여 정부부처 주요 제도 및 프로그램들을 대상으로 성별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성별영향평가의 도입취지와 유사하게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칭 '인권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인권침해 및 차별이 제도 시행 및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권영향평가’의 강제성을 제고시키는 방안도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NGO 및 민간 영역에서도 인권향상을 모색하기 위한 자발적인 조치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인권교육 및 인권향상방안에 대한 전 사회적인 캠페인 및 홍보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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