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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값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아"

한은총재의 안이한 상황인식, "부동산투기는 특정지역 문제"

한국은행은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부동산투기 조장 및 경기부양 효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콜금리를 4.25%에서 4.0%로 0.25%포인트 내렸다. 1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 한은총재의 지나치게 안이한 '거품경제'에 대한 인식이 노정돼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북핵과 사스때문에..."**

박승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무기 보유선언과 사스 등의 영향에 따른 경기침체로 투자.소비가 극도로 위축됐다"며 "정부가 경기부양을 하지 않을 경우 성장률은 3%대로 하락할 것"이라고 금리인하 배경을 밝혔다.

그는 "성장률 4%를 유지해야 연간 20만명의 경제활동인구 증가에 대비해 2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성장률이 1%포인트 내리면 1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따라서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지면 일자리가 크게 줄어 고용대란이 우려돼 한은은 다른 부분의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고용을 유지하고 경제에 대한 국민신뢰 회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총재가 금리인하 이유로 내세운 또다른 이유는 가계 및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감소다.

박총재는 "시설투자가 금리인하로 살아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금리인하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경기부양에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은행의 가계대출이 2백30조원로 가계대출금리는 한은 콜금리와 연동돼 가계대출금리는 같은 비율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2백20조원에 이르는 중기대출은 금리에 대단히 민감하며 3백만명의 신용불량자에게도 금리인하는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은의 금리인하는 2백30조원에 이르는 가계대출 쓰는 서민이나 중소기업자들, 신용불량자들에 직간접으로 부담을 경감시키며 소비를 부추겨 경기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총재는 "침체된 경제를 이대로 두면 하반기 회복이 어렵겠지만 부양을 하면 회복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V자형의 회복은 바랄 수 없게 됐지만 침체가 당분간 지속된 뒤 U자형 회복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총재는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 "향후 금리는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고 밝히고 "올 성장전망이 4%대로 유지되면 부양에서 손을 뗄 것이나, 다시 4% 이하가 예상되면 그 때 가서 다시 부양을 검토하겠다"고 말해 추가금리 가능성의 길을 열어놓았다.

***"내 집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값 차이 없어"**

이날 박총재가 금리인하를 발표하면서 장시간 시간을 할애한 것은 금리인하시 부동산투기를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에 대한 해명이었다.

박총재는 "한두달 전부터 부동산 문제가 불거져 투기조짐이 생겼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특이 상황이다. 불경기과 부동산 투기는 상충되는 것이다. 마치 폭한과 폭서가 같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같이 부동산 투기조짐문제에 당면해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금통위에서 장기간 논쟁을 벌였다"며 "금통위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경기와 고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총재인 나는 현재 강북 은평구 단독주택에서 20년동안 생활중이다. 그러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값 차이가 없으며 팔려고 해도 안팔린다. 살 사람이 없다"며 "현재의 부동산 투기는 특정지역 특정계층의 부분적 현상으로 신행정수도와 재개발에 쫓아다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총재는 "이런 일을 잡는 데 한은 금리정책을 동원하기보다는 세금이나 전매규제와 같은 행정조치로 특정인과 특정지역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금통위에서 합의봤다"며 "정부에서 강력한 정책이 최근 나와 그 효과를 기대하고 귀추를 주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총재는 "금리인하의 효과여부에 대해 한계가 있고 부동산에도 마찬가지"라며 "금리를 동결해도 부동산 투기에 효과를 미치기는 역시 한계가 있기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은총재의 안이한 부동산투기 인식**

이같은 박승 총재의 설명은 금통위가 이번에 금리인하를 결정하는 과정에 상당한 고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지금 우리경제가 직면한 위기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그러나 박승총재가 이같은 결정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작금의 아파트값 폭등문제를 '특정지역 특정계층의 부분적 현상'으로 축소평가한 대목이다.

우선 박총재는 "한두달 전부터 부동산 문제가 불거져 투기조짐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남을 시발점으로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값이 지난 2년여 사이에 배이상 올랐고, 그 결과 서울의 아파트 평당가격이 1천만원을 넘어섰고 강남은 2천만원대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부동산투기 문제는 지난 한두달 사이에 발생한 문제"라는 한은총재의 인식은 문제가 있어도 한창 있다. 박승총재의 주장대로 부동산투기가 한두달 사이의 문제였다면 왜 정부는 지난해부터 10여차례에 걸쳐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발표했겠는가.

박총재가 이어 "현재의 부동산 투기는 특정지역 특정계층의 부분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자신의 단독주택 가격문제를 거론한 대목 또한 중앙은행총재답지 못한 접근법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박총재는 "나는 현재 강북 은평구 단독주택에서 20년동안 생활중이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값차이가 없으며 팔려고 해도 안팔린다"고 주장했다.

박총재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강북지역 단독주택들의 경우 대부분 거래가 안되고 있으며 그 결과 가격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러나 투기세력이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아파트의 경우는 서울지역 평당가격이 1천만원을 넘어섰을 정도로 가파른 상승을 거듭해왔다. 이같은 단독주택 가격정체와 아파트값 폭등이 '남북 문제'라 불릴 정도로 강남-북간에 심각한 위화감 확대의 주요인이었다는 점을 박승 총재는 애써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은총재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궁색한 해명의 연속이었다 하겠다.

***위기 대처 능력은 정확한 상황인식부터 갖춰야**

한은총재는 좀더 솔직해져야 한다.

이번 금리인하 여부를 놓고 이례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같은 대기업 소속 민간연구소는 물론, 한국금융연구원같은 국책연구소까지도 한결같이 금리인하 반대 입장을 밝혔다.

금리인하를 해봤자, 국내외 불확실성때문에 투자를 안하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할 리도 없고 은행들이 신용불량자들나 한계기업에게 돈을 빌려줄 리는 만무하다는 이유에서다. 0.25%포인트의 금리인하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 연구소는 반면에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투기만 부추켜 끝내는 거품이 터지면서 일본과 같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어 장기불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금리인하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은 금리인하에 반대했다. 이는 금리인하가 초래할 부동산투기 등 자산인플레를 지금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주는 증거다.

반면에 은행, 카드사 등 금융기관들은 금통위원회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리인하를 부탁할 정도로 금리인하를 적극 주장해왔다. 이유인즉 카드채 사태, SK글로벌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위태위태한 데다가 경기가 더 침체하면 추가로 가계 및 기업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하면서 금융시스템에 큰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동산투기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는 하나, 일단은 더이상의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한은이 금리를 인하해 달라는 게 금융기관들의 읍소였다.

한은은 이같은 샌드위치 상황에서 고심끝에 금융계등의 손을 들어 금리인하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선택이 초래할지도 모를 부동산투기 가속화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이 존재하는가이다. 위기대처 능력은 올바른 상황판단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은총재의 이번 해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겠다. 부동산투기로 대표되는 '거품경제'에 대한 상황판단이 지나치게 안이해 보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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