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빠르면 하반기부터 현재 임야면적의 3%로 제한돼 있는 골프장 허가면적을 5%로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이른바 경기부양책의 일환이다. 이럴 경우 현재 완공돼 영업중이거나 공사중인 전국 1백30여개의 골프장외에 골프수요가 큰 수도권에서만 최소한 40여개의 골프장 신축허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경부가 내세운 근거는 18홀짜리 골프장 하나를 새로 만들 경우 발생하는 8백억~1천억원의 신규건설투자와 50억~90억원의 세수확대다. 40개의 골프장이 신설된다 할 때 3조2천억~4조원의 신규투자 효과와 연간 2천억~3천6백억원의 세수증대가 기대된다는 얘기다. 한푼의 신규투자가 아쉬운 정부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임에 분명하다.
재경부는 이밖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스키장에 대해서도 전체부지가 슬로프 면적의 2백배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폐지, 스키장 건설 및 확장을 대폭 허용키로 했다. 골프장, 스키장 등 이른바 수요가 공급을 앞서고 있는 '레저산업의 투자촉진'을 통해 경기부양을 도모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재경부의 이같은 방침은 한국은행등 정부기관이 4% 저성장을 전망한 데 이어, 최근 모건스탠리가 올해 우리경제 성장률을 3%로 내려잡을 정도로 경기침체가 극심한 가운데 나온 것으로, 경제팀의 어려운 속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말이 3% 성장이지 올해 물가상승률이 3%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지난해 성장률이 낮았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성장은 '제로(0) 성장', 더 심할 경우에는 실질적인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기모순에 빠져든 재경부**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기부양책의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재경부는 골프장 신축허가를 대폭 허용하기에 앞서, 국세청이 추진해온 골프장 및 룸살롱 등 이른바 '향락성 접대비'의 손비처리 불허 방침을 백지화시켰다. 백지화의 핵심근거는 '내수경기 위축 우려'였다. 골프장 등의 접대비를 손비처리해 주지 않으면 이들 산업부문의 소비경기가 급랭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룸살롱의 경우는 이런 판단이 맞을 것이다. "하루밤에 수백만원씩 쓰는 룸살롱에서 제돈 내고 술먹는 이가 누가 있겠냐"는 업자의 반론이 있을 정도로 룸살롱에서는 접대용 법인카드가 주된 손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장의 경우는 다르다. 재경부는 골프장 신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그 이유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맞는 얘기다. 지금 골프장은 '초만원'이다. 일시적인 사스의 영향때문만이 아니다. 국내 골프인구는 프로야구 관중보다 많은 2백70만명으로 집계될 정도며, 그 숫자는 가파르게 급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매일 1천여명의 골프매니아가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날 정도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만성적 공급부족 상태에 빠져있다.
전체 골프회원권 중에서 법인회원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평균 잡아 열명중 세명중 접대용 법인카드로 골프를 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만큼 만약 골프장이 과잉공급 상태에 있다면, 골프 접대비의 손비처리 불허는 곧바로 골프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경부가 골프장 신설을 대폭 허용하면서 내세운 논리대로 현재 골프장은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지는 '초만원' 상태다. 골프접대비를 손비처리 안해줘도 골프장 영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재경부가 '내수경기 위축'을 내세워 골프 접대비 손비처리 고수 입장을 밝힌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들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공짜 골프를 계속 치겠다는 기득권 방어 주장에 다름 아니지 않느냐는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골프장 신축 허가와 골프접대비 존속이라는 이른바 '골프 경기부양론'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대선공약과도 정면배치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개발과 환경의 공존을 의미한다. 하지만 골프장 신축 허가는 이 공약에 정면배치된다. 골프장 개발이란 자연파괴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골프접대비를 폐지하면 '지속가능한 개발'이 가능해진다. 법인카드로 공짜골프를 즐기는 30%의 골프인구만 줄이더라도 현재의 골프장만 갖고서도 훨씬 나아진 골프환경 여건 조성이 가능, 골프장 신축 허가를 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재경부의 골프장 신축 허가방침은 벌써부터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경유승용차 조기 허용 방침 등에 이은 골프장 신축 허가 방침을 개발논리에 근거한 대표적 반환경적 정책으로 규정하며 가만 있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개발과 환경이란 본디 공존하기 어려운 상극 개념이다. 그러나 골프장의 경우는 골프접대비 폐지라는 결단을 통해 드물게 '공존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골프접대비를 폐지하면 그만큼 골프장 신축 수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대선공약을 실현할 수 있는 호재인 것이다. 청와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IMF사태후 부패접대 오히려 심화**
골프장, 룸살롱 등 향락성 접대비 폐지는 인수위 시절부터 논란이 됐던 이슈다. 지난 1월 인수위는 향락성 접대비의 손비처리의 전면폐지 또는 대폭축소를 추진했었다.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연구원도 접대비의 대폭축소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때도 재경부는 '경기'를 이유로 반대했고, 결국 최근 재경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과연 이를 '재경부의 승리'로 봐야 할 것인가.
IMF사태후 글로벌 스탠다드가 도입되면서 많은 부문에서 변화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곳, '부패'문제에서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국제투명성기구(TI)가 2001년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와 뇌물공여지수를 보면 한국의 부패지수는 91개국중 42위, 뇌물공여지수는 21개국중 18위였다. 부패지수의 경우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하위였다. 특히 부패지수는 '996년 27위였던 것이 1997년 34위, 1998년 43위, 1999년 50위 등으로 IMF사태를 겪으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이 선택한 대응책이 부패수단이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미국의 세계적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PwC)가 조사한 기업의 경영투명성 조사결과를 봐도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35개국 31위로 평가됐고, 스위스국제경영대학원(IMD) 조사결과도 마찬가지였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19일 발표한 '접대비 지출과 수익성'이란 보고서는 재경부 주장대로 접대비 존속이 결코 경기부양책이 못되며 도리어 '경기침체책'이 될 것인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96년부터 2001년까지의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접대 지출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투자가들이 접대비 비중이 낮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들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접대비 비중이 가장 큰 1집단의 외국인 지분율은 2.72%에 불과한 반면, 접대비 비중이 가장 작은 10집단은 9.85%로 가장 높았다.
이는 접대비가 순익을 갉아먹는 존재인 동시에 기업의 불투명성과 경쟁력 부재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외국투자가들이 접대비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기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골프접대 망국**
옆나라 일본은 '관료의 나라'다. 일본도 한때 접대문화가 극성을 부린 적이 있다. 특히 골프의 경우가 그랬다.
1988년 국세청에 신고된 일본의 골프접대비는 4조5천5백억엔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그해의 국방비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일본이 얼마나 골프접대로 흥청망청했는가를 보여주는 수치다. 그후 1991년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에서는 '골프접대 망국론'이 팽배했다. 관료나 대기업임원등이 골프접대에 빠져들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다가 일본경제를 만성불황의 늪으로 침몰시켰다는 비판이었다.
그후 일본은 골프접대비에 대한 손비처리를 폐지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여파로 공급과잉이던 일본 골프장들이 연쇄도산하고 골프회원권 값이 폭락했지만 이를 문제삼는 여론은 없었다. 이 과정에 외국계로 넘어간 닛산자동차등의 역할이 컸다. 닛산자동차는 '골프접대 중단'을 선언했고, 많은 일본의 대기업들이 그 뒤를 따랐다. '윤리경영'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윤리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실제로 몇몇 대기업들은 직원들에게 하청업체 등으로부터 받는 골프, 룸살롱 접대 등을 엄격히 금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러나 대기업 입장에서 접대를 해야 하는 쪽의 반응이다. 그들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윤리경영은 반쪽 신세에 그치는 게 불가피하다.
DJ정부 후반부 경제를 책임맡은 진념 경제팀은 경기부양책으로 건축경기 부양과 신용카드 사용 증가를 택했다. 그 결과는 아파트값의 살인적 폭등이었고, 신용불량자 양산과 금융기관 부실화였다.
지금 김진표 경제팀은 골프장, 스키장, 룸살롱 등의 레저산업에 기대를 거는듯한 인상이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10여년전 일본이 경험했던 '골프접대 망국론'이 금명간 우리나라에서도 제기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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