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외환위기이후 계속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기가 형편없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더욱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다.
새해가 되자마자 정부가 통제하는 통신,전기,수도, 가스, 유류가격이 일제히 인상됐다. 시차를 두고 인상하느니 화끈하게(?) 처리하고 보자는 의도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일시에 전격적으로 한꺼번에 7~10%씩 올려 버렸다.
이러한 갑작스런 공공요금의 인상에 정부의 국영통신회사중 한곳의 노사분규마저 겹쳐 지금 인도네시아 경제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이다. 국영통신회사중 하나인 인도넷(IndoSat)의 정부 보유 지분을 얼마 전 싱가포르의 기업에 매각키로 결정해 버리자 해고를 두려워한 노조가 반발하면서 파업에 나서 연일 대통령궁앞에 몰려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실 인도네시아 국영기업의 방만한 기업경영은 어제오늘의 새삼스런 일도 아니고 낙하산 인사, 과다한 급여의 지출, 비효율 등은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경영자에서 말단 근로자까지 낙하산이 가득해 서로서로 봐주기식 경영을 하다보니 정부로서도 더이상 계속되는 부실경영을 감당할 재주가 없어 매각을 했다.
문제는 노조나 경영자나 모두 낙하산이니, 그들의 '배후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싱가포르의 기업이 인수를 하면 국제기준에 맞춰 근로자를 정리해 나갈 것이다. 또 근로조건은 지금처럼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하고, 고객의 항의에 서로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할 수 없어진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노조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흔한 말로 빽이 든든한 노동자가 무서울 게 뭐 있어서, 파업을 두려워 하겠나?
이런 여러 경제의 악재들이 2003년 벽두부터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계속되는 높은 실업율, 물가불안은 산유국임에도 유가와 가스 값을 7%이상 인상시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했다. 정부로서도 더 이상 재정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여름부터 혼란스러운 정치상황과 관료의 부패무능, 계속되는 임금상승, 그에 못미치는 형편없는 노동생산성. 이런 것들은 이 나라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외국투자기업을 모두 해외로 내쫓아 버렸다.
2001년 일본 소니는 노동자의 파업이 나자 협상도 집어 치우고 바로 짐을 싸서 떠나 버렸다. 2002년 나이키는 노조의 공격에 생산시설과 사무실 집기가 파손되자, 모든 걸 포기해 버리고 자사의 현지 파견인원을 모두 철수 시켜버렸다. 당연히 생산시설은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기업이나 서방의 기업에게 자료는 생산시설보다 더 중요한 자산이다. 회계장부를 불태우고 사무실 PC를 훼손하는 사태를 이들이 용납할 리 만무하다. 이런 사태를 보고 많은 기업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했다. "이런 식으로는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을 기업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결국 대부분의 서방과 일본의 다국적기업은 내수를 위한 판매부서만을 남긴 채 철수를 단행했고 그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속에 발리에서 테러마저 발발해 관광객마저도 발길이 뚝 끊겨 버렸으니, 이 나라에 드리운 암울한 경제의 먹구름이 걷힐 리 있나?
그 결과가 몇달이 흐른 지금, 매우 심각하게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오히려 후퇴하는 데 임금만 상승한다면 이 나라에서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다. 간단한 생활 필수품의 경우도 차라리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수입해서 판매하는 편이 여기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제품중 쓸만한 것이라고는 비닐봉지뿐"인 황당한 이 현실이 인도네시아기업의 경재력을 가장 간단하고 확실하게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러한 경제의 심각성을 팔을 걷고 나서야 할 정치권은 그러나 지금 내년에 있을 대선준비에 정신이 없다. 지금의 대통령은 거의 실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오래 전부터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군부에게 대통령의 명령따위는 먹혀들지 않는다. 군출신의 내각조정장관 (우리의 국무총리쯤에 해당한다)은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의 지시에 반발하기 일쑤고 내각의 장관들도 제 각각이다.
국민들은 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또 매우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기대치도 높다. 그러나 실권없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여러 파벌로 나뉘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세력과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군부. 이들을 통제할 힘이 없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슨 일만 터지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자제를 호소하는 일 말고는 없다.
국민은 국민대로 한꺼번에 모든 걸 해결해 달라며 매일 소요를 일으키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나날이 힘들어지는 국민의 생활보다는 당장 자신들의 정권쟁취에 혈안이 되었으니, 이런 판에 경제가 회복된다면 모세의 기적이후 역사에 기록될 가장 놀라운 기적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도 정부를 장악하지 못하면 한낱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정치권은 혼란에 빠지고, 그 영향은 바로 경제에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기다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선동정치를 하고픈 유혹을 불러일으켜, 이성 따위는 무엇인지도 잊고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국민들에게 아무말이나 떠들어 대며 사회를 혼란케 한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정치가 썩으면 국민이 고생하지만 결국 그 책임은 결국 국민들 몫이고, 그 해결책도 국민이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필자 기태형님은 현재 자카르타에서 현지인과 함께 무역업을 하고 있는 기업인으로, 프레시안에 종종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경제,정치상황에 대한 현지르포를 보내주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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