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신을 타고 인도네시아의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현지 종업원들에게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주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많아 인도네시아 신문을 이를 대서특필하는 등 물의를 빚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뭐 망신 뭐가 시키네'라는 느낌이 절로 들곤 한다.
이런 보도가 잦아서인지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과 함께 무역업을 하고 있는 독자 기태형님이 한 편의 글을 보내왔다. 현지 기업인들이 겪는 말못할 애로와, 특히 우리나라 주재 외교관들의 무사안일함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역시 그곳에서도 관료주의가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글이다. 편집자주
***"그렇게 하는 일 없이 놀면 심심하지도 않은지?"**
자카르타에서 차로 약 1시간쯤 되는 거리에 우리의 부천이나 성남쯤에 해당하는 카라와치라는 위성도시가 하나 있다. 이곳을 포함한 인근 땅그랑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는 많은 한국계 섬유ㆍ신발ㆍ봉제 공장들이 있고 또 그 경영주들의 주택들이 몰려 있어 일종의 코리아타운 비슷한 지역이라 할수 있다.
지금 그곳의 현지인 공장노동자들과 한국인 사주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인사회에선 어제는 누가 밤새 짐을 싸고 도망을 갔네, 누구네 공장이 문을 닫고 사장이 사려졌네 하는 소식이 아주 일상처럼 되어 가고 있다.
많은 한국계 기업이 치솟는 임금과 그에 못미치는 형편없는 생산성에 따른 채산성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도산을
하거나 근근히 공장을 경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영세한 한국기업으로서는 버틸 재간이 없어 사주는 먼저 가족을 피신시켜 놓고 챙길 수 있는 것을 모두 챙긴 후 갑자기 외국으로 도주하는 경우가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한국기업인들이 뭐 큰돈을 챙겨 도망가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워낙 이곳의 노동시장의 경직되어 있다 보니 해고를 하려면 퇴직금과 별도로 최소 3개월 보통 6개월치의 해고 수당을 줘야 하고 누진 퇴직금제를 채택하고 있어, 공장부지와 설비를 다 팔아도 퇴직금은 고사하고 밀린 월급조차 전부 지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국 한국기업으로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공장부지와 설비를 헐값에 넘기다 보니 겨우 푼돈을 쥐고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만일 그 한국인 기업가들이 전부 몰염치한 사기꾼이었다면 이런 악조건밖에는 없는 노동시장에서 여지껏 기업을 운영하지도 않았다. 떠나도 벌써 다들 떠났지.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중간에서 노동자와 기업인을 조정해주고 인도네시아 당국에 협조를 구해야 할 대사관 상무관이 뛰어다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기업인은 죽어가는데 그들을 보호해 주거나 도와주어야 할 우리의 영사관련자들은 전부 뭐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그렇게 어렵게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준비해 외교관이 됐으면 자신이 그렇게 어렵게 차지한 자리를 좀 열심히 닦고 빛내면 안되는 건지, 교민에 대해 신경을 쓰는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게 하는 일없이 놀면 심심하지도 않은지 궁금할 따름이다.
많은 기업인들은 때론 성난 노동자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껴가면서까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의 근로자들은 임금이 워낙 적은 것도 문제지만 그들 스스로도 저축에 무신경하다 보니 기업이 급여를 지급치 못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의 노동청쯤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에서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나갈 생각은 없고 오로지 기업인만 쥐어 짜려 든다. 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의 면피를 위해 모든 책임을 기업인에게 일방적으로 덮어 씌우는 경우가 흔하다, 보고서에는 언제나 부도덕한 한국기업인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내용뿐이니 언제나 기업인은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보신에만 급급한 공무원의 이러한 행태로 노동자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이유도 없이 자신의 사주를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한국기업인에게 전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10년을 인도네시아에 살면서도 이들의 관습과 현지의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입장을 정당하게 그러나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게 서툰 것은 우리 기업인의 문제점이긴 하다. 그러나 교민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도와주어야 할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나태함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교민의 업무가 1차적인 업무인 한국의 외교관이 아닌가?
모여서 주재국의 고위관리와 권력자들과 가든파티나 하라고 고르고 골라 힘들게 뽑아 보낸 자리가 아니라, 주재국에 나가 한국정부를 대표하고 한국국민의 권익을 대표하라고 임명된 외교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교민의 권익보다는 자신의 권익을 교민의 편의보다는 외유나온 권력자들의 편의를 돌보는 데 온 신경을 쓰니 교민이 눈에 보일 턱 있나.
영세한 교민의 봉제ㆍ섬유ㆍ신발 생산업체는 상대의 가치를 못느끼는지, 매일 자신의 정든 일터를 정리하고 미얀마나 베트남으로 떠나는 기업인과 면담 한번 했다는 얘기 들은 적이 없고 카라와치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는 얘기도 없다.
얼마 전 재(在)인도네시아 일본 상공인회의소 회장단은 일본계 기업의 경영애로를 전달하기 위해 현직 노동부장관을 배석시키고 메가와티 대통령을 대통령궁으로 찾아가 만났다고 교민신문에 나왔다.
그럼 우린?
호텔에서 노동부 장관과 소득도 없는 점심만 먹었단다. 그 자리에서 노동부 장관이 한국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듣고는 한 말이 " 어려움은 알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다.
정말 당당하고 자기확신에 가득찬 정직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배려해줄 생각이 없음을 어떠한 외교적 수사나
우회적 표현 없이 바로 상대의 면전에서 정직하게 확 까발리는 그 당당함. 놀랍지 않나?
"많은 한국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우리 경제에서 상당한 노동력을 흡수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외칠 수 있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야말로 배째라 정신을 직접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두 달전의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의 외교담당자가 해결책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거나 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래저래 한국의 기업인은 한국에 있으나 외국에 있으나 항상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한국정부에게나 인도네시아정부에게나 기업인은 쥐어짜야 할 대상이지 육성해야 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보이나 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다고 황금이 쏟아져 나올까? 배를 가른 후엔 어디서 황금알을 얻을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많다면야 얘기가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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