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정국의 최대 잠복변수로 일컬어져온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7일 마침내 귀국했다.
박 명예회장의 귀국후 첫 일성은 '최규선 비리' '파크뷰 사전분양' 등에 포스코가 연루돼 물의를 빚고 있는 현 포스코 최고경영진의 퇴진이었다.
지난 20개월 동안의 미국 및 일본에서의 치료를 마치고 이날 영구귀국한 박 명예회장은 17일 오후 일본에서 귀국, 인천 국제공항에 마중나온 황경로 전 회장, 안병화 전 사장 등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및 보도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비리 연루 의혹과 관련해 "포스코 34년 역사에 중대한 오점을 찍었다"며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현 경영진을 맹성토했다.
***박태준, "나쁜 놈들 아니냐. 책임져라"**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 회장이 뭐하는 자리냐"고 직접적으로 유상부 회장을 지목한 뒤 "내가 25년동안 재직하며 외압, 청탁을 단절하느라 병이 다 들었는데 창업자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사실상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는 이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책임지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라"고 재차 퇴진 요구를 했다.
박 명예회장은 또 "그래 놓고 도쿄에 '들어오지 말라. 일이 다 해결되면 들어오라'는 신호를 어찌나 보내는지..."라고 개탄하며 "가고 오는 것은 내 맘대로인데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나쁜 X들 아니냐"고 특유의 원색적 어조로 맹비난했다
그는 "내가 죽을 때까지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덧붙여 현 경영진이 조기에 퇴진하지 않을 경우 창업자 자격으로 나서 구체적 퇴진조치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박 명예회장은 그러나 현재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유상부 포스코 회장,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 등이 정권교체후 자신이 임명한 측근 세력들임을 인식한 듯, "임명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으면 의논을 해야지, 시키고 난 뒤 한달이 지나니까 내 말을 듣지 않더라"고 말해 이번 비리 연루 의혹과 자신은 무관함을 내비쳤다.
***"권력줄이나 잡아보려고 엉뚱한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된 것"**
그는 "내 철학대로 경영하면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똑같은데 권력줄이나 잡아보려고 엉뚱한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해, 이번 포스코의 비리 연루 의혹이 유상부 회장의 '자리보전'이라는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유회장은 2000년 5월 박태준 명예회장이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교체설'에 휘말렸었으며, 그로부터 두달 뒤인 2000년 7월말 김홍걸, 최규선 등과 영빈관에서 회동함으로써 자리 보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비리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로 유상부 회장과 김홍걸의 회동후 포스코는 2000년 8월 김홍걸의 벤처사업 진출을 위한 자문을 해주고, 2000년 10월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테이타가 타이거풀스 경쟁사인 한국전자복권의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면서 사업참여 포기를 선언하는가 하면, 2001년 4월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70억원에 고가매입해주는 등 일련의 정경유착 비리에 깊숙이 유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포스코는 이밖에 김옥두 민주당의원 등 정치실세들이 연루된 분당 파그뷰 비리에도 포스코가 보유하고 있던 땅을 2백6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헐값에 팔고 20여명의 임직원이 특혜 사전분양을 받는 등 깊숙이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 사태에 도의적 책임 없나**
박태준 명예회장의 질타에 이날 공항에 영접을 나온 황경로 전 포스코회장은 포스코 전현직 임원을 대표해 "아무래도 창업자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면서 "좋은 말씀 참고해서 거울로 삼자"고 말했다. 비록 현재 박태준 명예회장이 조직도 상으로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명예회장이기는 하나, 그가 아직도 포스코 곳곳에 영향력이 큰 창업주라는 점을 고려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포스코 비리연루에 박명예회장의 직접적 책임은 없으나, 현재의 유상부 회장체제가 박 명예회장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역시 간접적으로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이같은 비판적 시선을 의식한 듯, 이날 "임명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으면 의논을 해야지, 시키고 난 뒤 한달이 지나니까 내 말을 듣지 않더라"고 말해 유상부 회장이 자신의 영향권 밖에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회장에게도 적잖은 도의적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DJ정부 출범전후에 박태준 명예회장이 끼친 영향은 상당했고, 그결과 그는 DJ정부 전반부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태준 일명 TJ는 92년 중반부터 격화된 YS와의 갈등의 여파로 대선직전인 92년 10월 민자당을 탈당함으로써 YS정부 출범후 포항제철의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그후 일본에서 4년여간 망명아닌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YS정권의 레임덕(권력누수)시기인 97년 7월 귀국해 포항 북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함으로써 정계에 복귀했고, 그해 9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총재와 '도쿄 회동'을 통해 동반자 관계를 맺은 뒤 그해 11월 자민련 총재로 영입됨으로써 'DJP 연합'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어 2000년 1월 김종필 총리에 이어 DJ정부 2대 총리로 취임해 집무하던 중 그해 5월 부동산투기 및 명의신탁 비리 파문으로 총리직을 사임한 뒤 병치료를 위해 그동안 미국과 일본에서 20개월을 지내왔다.
따라서 현재의 포스코 경영진은 전적으로 박 명예회장의 구상에 따라 짜여진 진영이었고, 그 결과 작금의 포스코 사태에 박 명예회장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는 게 아니냐는 게 재계 일각의 지적인 것이다.
***'박태준 변수'의 출현이 몰고올 정치파장은?**
이같은 재계의 시각과는 별도로, 박태준 명예회장의 귀국을 바라보는 정치권 시각도 예사롭지 않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재의 정치판도를 볼 때, 몇 안되는 '정치원로'중 하나인 TJ의 귀국이 몰고올 지도 모를 정치적 파장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명예회장은 이날 귀국시 지대섭, 김동주 전 의원 등 정치권 측근들과 함께 귀국했다. 또한 공항에는 청와대 조순용 정무수석을 비롯해 한영수, 차수명 전 의원 등 적잖은 정치권 인사들이 영접을 나왔다. 지난 2월 잠시 귀국했을 때에는 박지원 청와대 정치특보가 마중을 나오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도 엄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의 정치적 행보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박 명예회장의 영구귀국 소식이 알려진 연초부터 정치권은 박태준 진영과 접촉을 갖기 위한 암중모색 노력을 해왔다. 실제로 몇몇 대선주자들은 구체적으로 유상부 포스코 회장등과 접촉하며, 지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향후 정치활동 재개여부를 묻는 보도진의 질문에 대해 "내가 직접 정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앞으로 나라 정치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볼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또 "민주당 노무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및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로부터 면담 요청이 오면 만나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직답을 회피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몸값'은 앞으로 대선이 가까와질수록 금값이 되지 않겠느냐는 게 정가의 지배적 관측이다. 정치권의 몇안되는 원로인 동시에, 재계에도 적잖은 영향력이 있는 거물인 까닭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지원을 얻을 경우 명분과 조직, 자금 모든 면에서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대선이 가까와질수록 대선 주자들은 그와 접촉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YS보다는 TJ 몸값이 비싸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다.
"앞으로 나라 정치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볼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간과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태준 변수'의 출현은 향후 정국을 읽는 데 빼놓아서는 안될 또하나의 가늠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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