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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은 수입·지출로 계산되는 산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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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은 수입·지출로 계산되는 산수가 아니다

[연금개혁을 말한다 ④] 국민연금 재정안정론의 역설

연금개혁은 난이도 높은 문제다. 여러 번 문제를 풀어본 선진국들도 여전히 어려워한다. 그나마 후발주자인 우리는 앞선 경험을 통해 소중한 힌트 몇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 국가마다 경제적·제도적 상황이나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바람직한 연금모델' 같은 정답은 없다. 둘째, 연금개혁 문제는 함께 풀어야 할 협동 과제라는 것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야 비로소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한 연금개혁이 안착된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연금제도의 본래 목적인 '노후소득보장'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급여의 적절성, 대상의 포괄성,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합의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연금민영화는 실패한 개혁

특히, 한때 '유일한 해법'인양 강조되던 연금 민영화는 '명백한 오답'이었음이 밝혀졌다. 1981년 칠레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이 기존 공적연금을 폐지하고 민영화하자, 세계은행과 OECD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가세해 '모범 답안'으로 삼고 전파에 나섰다.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대신, 사적연금 중심의 다층연금체계를 모델로 제시했다. 이때 등장한 핵심적인 논거가 부과방식 공적연금(국민연금)은 재정적·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후세대 부담을 가중시키며, 알려진 것과 달리 오히려 소득 역진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이 적립방식의 연금을 운용하면 수익률을 높이고 투자확대를 통해 경제성장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관 지원의 전제로 연금개혁을 압박하자,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남미와 동유럽, 아프리카 등 30개 국가들이 공적연금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민영화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연금민영화 실험은 처참한 성적표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금융시장 변동의 위기가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됐다. 연금 급여는 악화됐고, 가입률도 나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실제 납부율은 더 처참했다. 성불평등도 심화됐다. 민간보험사 간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효율성이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소수 회사가 독점하면서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관리비와 수수료 부담만 높아졌다. 게다가 막대한 이행비용 문제로 국가의 재정부담도 커졌다. 결국 2000년 이후 18개 국가들이 다시 연금민영화를 되돌렸고,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 맞서 공적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ILO는 최근 보고서(2018)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우리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다"

제도불신과 노후불안으로 귀결된 재정안정화 개혁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부과방식 공적연금(국민연금)을 비난하던 '재정불안'과 '후세대 부담' 같은 90년대 낡은 주장과 선동이 국민연금 개혁을 주도해왔고,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1998년 '국가부도의 날', IMF는 다른 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함께 공적연금 개혁을 구조조정 협약에 명문화했다. IMF권고가 그대로 관철되진 않았지만 1998년 개혁을 통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줄이고, 수급연령 역시 60세에서 65세로 상향했다(2013년부터 매 5년마다 1세씩 증가해 2033년 65세 도달). 제도 도입 10년 만에,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1999년)되기도 전에 재정안정을 위한 개혁이 이뤄진 것이다.

5년 마다 재정계산을 실시하기로 결정된 것도 이때의 개혁 결과다. 2003년 이뤄진 첫 번째 재정계산은 2047년 국민연금기금이 고갈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통해 재정안정이 시급하다고 다그쳤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이 추진됐고, 2007년 국민연금 급여를 10년 만에 또 다시 60%에서 40%로 축소하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재정안정 개혁 결과, 국민의 노후소득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악화됐다. 예컨대 2008년부터 국민연금에 최초 가입한 청년들은 1988년 가입자에 비해 국민연금 순혜택이 9358만 원, 2028년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될 현재 청소년들을 포함한 이후 세대는 1억 747만 원이 삭감된 셈이다(20년 가입, 평균소득자, 25년 수급기준). 재정안정론자들은 미래세대의 '부담'만 강조했지, 실제 미래세대 역시 누려야할 노후소득은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삭감한 것이다. 이번 4차 재정추계 결과에서도 국민연금 전체수급자 평균 실질 소득대체율은 2060년이 되더라도 2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스레 '용돈연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논의가 어렵게 수면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또 다시 '재정안정론'이 발목을 잡았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이 2057년에 소진된다며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안이 제출됐다(국민연금제도발전위 ‘나’안). 기존 개혁으로 급여삭감은 2028년까지, 그리고 수급연령 연장은 2033년까지 여전히 진행 중인데도 말이다. '국민연금의 건강검진'이라는 재정계산은 기금의 소진시점이 곧 '국민연금의 사망선고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변질됐다.

국민의 분노가 뜨거워지고, 대통령까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자, 복지부는 이를 배제한 '국민연금 종합계획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1월 18일 이를 국회에 보고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장기재정대책이 빠졌으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준다고 질타했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작 정부의 45% 또는 50% 급여 인상안은 단계적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급여인상에 필요한 소요재정 이외에도 일부 재정안정 몫까지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재정안정의 척도처럼 여기는 소진시점 역시 각각 2063년, 2062년으로 늘어났음에도 말이다.

특히 5년 전인 2013년 3차 재정계산 당시 박근혜 정부는 "(3차) 장기 재정전망 결과,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는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건전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국민연금은 2060년까지 급여를 지출할 수 있을 만큼의 적립기금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보험료 수입 대비 급여 지출수준도 선진국에 비하여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했음에도 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재정안정론은 오히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

한국은 국민연금 축소를 통해 사적연금을 활성화하는 우회적 경로(간접적 시장화)를 걸어왔다. 특히 칠레와 같이 극단적인 연금민영화를 취하진 않았지만, 기금고갈에 입각한 재정안정 개혁은 그와 버금가는 정치적 후과를 남겼다. 낮아진 국민연금의 틈은 사적연금의 판로 개척을 위한 교두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연이어 발표됐다. 2018년 3월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69조 원으로 2013년에 비해 200% 증가했고, 개인연금 역시 같은 기간 44.8% 증가율을 보이며 130조 원까지 성장했다.

특히 국민의 감정적 불만을 자극시키며 '국민연금 탈퇴하자'는 여론을 형성시켰다. 지난 4차 재정추계 당시에도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방안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또 다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국민연금을 폐지하자'는 글이 빗발쳤다.

정작 재정안정만을 강조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70년의 일괄 해법'으로 변죽만 울리며 제도신뢰를 훼손하면서, 결국 제도 자체의 지속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먼저 대폭적인 보험료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재정안정을 강조하는 이들은 국민연금 보험료가 기금 고갈 직후 최대 33.5%까지 폭등해 미래세대에겐 보험료 폭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지부에서도 반박했듯이, 이는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기 이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소진 당시 연금수급자들이 받게 될 지출총액 전부를 보험료로 충당한다는 단순 계산법으로 추정한 것이다. 말 그대로 "극히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4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2041년 최대 1778조 원까지 쌓이다 이후 급감하게 된다. 만약 2088년 적립배율 1배를 목표로 2020년 보험료를 한꺼번에 올릴 경우, 필요 보험료는 16.02%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주장대로 할 경우 국민연금기금은 2063년 최대 6131조까지 적립되는데, 그 당시 한국 GDP 전망 규모와 거의 맞먹는 규모다(89%). 금융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뿐더러, 이후 연금지급을 위해 다양하게 투자했던 기금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유동성 문제 역시 심각해질 수 있다. 심지어 이렇게 한다고 해도 향후 70년이라는 제한된 시야 내에서만 기금소진이 나타나지 않게 할 뿐이다.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더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급격한 보험료 인상 부담에 따라 사각지대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치러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를 더 축소하자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연금을 받는 수급연령을 더 늦추자는 주장 역시 당장의 해법으로 적절치 않다. 물론 주요 선진국의 공통된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관대한 연금으로 인한 조기퇴직 문제와 연동된 재정안정 조치이며, 거의 대부분 법적 퇴직연령과 연금수급연령이 일치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국민연금 수급연령은 65세까지 늘어나지만, 본격적으로 정년 60세가 시행된 것은 불과 2017년부터다. 실제 퇴직이 50대 중반에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소득공백기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조기퇴직은 고사하고 낮은 연금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더욱 불안정한 노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고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급연령 연장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이에 따른 다양한 노인복지서비스와도 연동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시장이나 제도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재정안정에만 매몰된 주장의 한계다.

노인인구와 수명의 증가에 따른 부양비용은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할 수 없어

현재 한국의 노인세대는 국가재건과 산업화 시기 등을 거치며 고단한 노동으로 한국사회를 성장시켰다. 그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이유는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부양하던 전통적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고, 국민연금 같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제도가입의 기회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현 세대는 이전 세대가 다져놓은 사회 경제적 기반 위에 존재한다. 결국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 역시 현 세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세금을 통해 생계급여나 기초연금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더욱 확대해야 한다. 현 세대 역시 노인이 됐을 때 그 다음 세대(당시의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이 제대로 작동된다는 신뢰가 있다면 가능하다. 이것이 세대 간 연대이고, 문명사회가 노후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감당해야할 부양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재정방식 자체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제도적으로 책임질 것인지,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길 것인지의 문제다. 국민연금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논리는 노인빈곤 문제를 방치하거나 사적부담의 크기를 외면했을 때나 성립가능한 주장이다. 국민연금이든 기초연금이든 당시 경제활동인구가 보험료나 세금으로 부양한다는 점에서 결국 모두 미래세대의 몫이다. 그나마 현 세대는 지금의 노인 세대와 달리 국민연금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세대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주는 셈이다.

제도에 대한 신뢰확보가 재정적 지속가능성의 전제조건

이번 국민연금 개혁의 가장 큰 논쟁구도가 표면적으로는 '노후소득보장 vs 재정안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연금 강화 vs 국민연금 약화'가 더 적합해 보인다.

국민연금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은 장기적으로 재정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보험료를 인상하더라도 재정균형에 필요한 만큼은 여의치 않으니 결국 수급연령을 늦추거나 국민연금 급여를 더 축소해야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정규직 연금'이고 '소득 역진적'인 제도라는 혐의까지 두고 있으니,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을 중심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을 강화하자는 입장은 재정안정에만 치우친 기존 한계를 극복하고, 노후소득보장이라는 애초의 제도 목표에 맞게 균형점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의 적정성을 강조하면 마치 재정문제는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민연금 급여 적절성 보장, 보험료 지원과 크레딧 확대 등 사각지대 해소, 지급보장 명문화 등을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후 재정안정의 지속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추이를 봤을 때도, 아직 우리 사회는 연금개혁 문제를 풀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 나의 노후를 제대로 보장해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길 때 비로소 재정안정에 대한 해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연금개혁 문제를 풀 수 있는 또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연금개혁의 문제 유형이 단순히 보험료 수입과 급여 지출만을 고려해 답이 나오는 산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고, 그만큼 사회적 논의가 중요하다. ILO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담은 말의 의미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ILO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도전들과 인구 통계학적으로 촉발된 '노후 위기'에 대해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예측들에 반대해왔다. 연금제도의 성숙이 장기적으로 급여지출 증가를 수반하지만 이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불안의 원인이 아니다. 고소득 국가들의 경험은 인구학적 변화, 연금제도의 성숙 그리고 다른 미래의 도전들 전반에 대해 연금제도가 지속할 수 있도록 마이너(minor)한 개혁을 통해 연금제도를 맞춰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ILO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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