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재정추계에 따른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이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연금개혁 특위)'에서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들의 노후소득보장과 직결된 만큼 사회적인 관심이 높다. <프레시안>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국민연금 주요 개혁 과제와 쟁점에 대해 전문가 기고를 10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지난 2018년에 제4차 연금재정추계가 이루어져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결과를 놓고 여러 언론은 예년처럼 기금고갈론과 재정안정론을 들고 나와 정부와 국민연금을 비판하였다. 재정안정론과 기금고갈론은 연금재정추계가 법률에 의해 처음 실시된 2003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기되어 와서 지금 우리국민들의 뇌리에는 기금고갈인식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하지만 공적연금의 도입배경을 생각하면 기금고갈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정안정론은 문제가 많은 논리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퇴직제도는 옛날부터 있던 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숙한 20세기에 와서 기업 간 경쟁이 격화하면서 고령노동자를 퇴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당연히 고령노동자들의 반발이 있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공적연금이다. 따라서 공적연금은 자본이 퇴직제도를 얻게 된 대신 퇴직으로 수입이 끊긴 퇴직노동자에게 제공하는 노후보장인 것이다. 이런 공적연금의 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자본으로부터 노후보장에 필요한 사회적 자금을 징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은 대부분 사회보험방식이어서 노동자들도 가입하여 보험료를 내지만 기실 공적연금의 핵심은 퇴직제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후보장자금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이 사회적 노후보장자금의 확보는 자본과 노동이 함께 참여하여 이루며 이는 경제활동세대가 퇴직세대를 집합적으로 부양하는 세대간 부양의 형태로 나타난다.
재정안정론자들은 공적연금의 이러한 성격을 무시하고 노동자들이 미리 저축했다가 그 돈을 찾아가는 것처럼 전제한다. 물론 공적연금 도입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낸 돈에 이자를 붙여 연금을 받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이다. 실제로 적립방식이라는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매월의 연금급여를 그달그달 걷히는 보험료 수입에서 지급한다. 즉 현재 연금 받는 사람들도 그들이 젊은 시절 낸 돈에 이자를 붙여 받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매달 내는 보험료 수입에서 연금을 받아가고 있다. 다만 현재는 보험료 내는 사람이 연금받는 사람보다 많은 연금미성숙단계이기 때문에 수입이 지출보다 많아 기금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금이 성숙기에 들어 연금기금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후자금을 사회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많은 돈을 미리 쌓아둘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경제침체기에 지나친 돈을 기금으로 쌓아두는 것은 구매력을 잠식하여 자동안정화기능도 수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재정안정론자들은 보험료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것 같은 착시를 극대화하고 이를 수익비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수익비는 가입자가 낸 돈과 그가 퇴직 후에 받을 돈의 비율인데 이는 결국 보험료로 납부한 돈만큼만 연금으로 받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한 것이다. 이를 세대간 부양을 기본으로 하는 공적연금에 적용하면, 현 부모세대를 부양하는 자식세대는 부모세대가 젊을 때 낸 보험료를 계산해서 그 금액만큼만 부모세대에게 연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자식세대가 경제성장의 과실을 부모세대에게 전혀 제공치 않겠다는 것인데다 그 자식세대가 부모세대가 되어서 받을 연금도 그만큼의 금액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사회적 부양개념에 전혀 맞지 않는다. 수익비는 민간연금에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적연금에서 그 개념을 사용치 않는다. 수익비에 관한 국제비교자료가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사회는 주로 재정안정론에 입각한 연금개혁을 추진해왔고 여기에는 주류언론의 탓이 매우 크다. 언론은 연금개혁이 추진된 1990년대 말과 2003~2007년 사이에 엄청난 양의 기금고갈보도를 쏟아냈고 여기에 인구고령화에 기초한 세대형평론을 덧붙여 연금불신을 조장해왔다. 언론이 국민연금에 대해 가한 비판 중 한 가지는 현재 저부담·고급여 구조인 국민연금이 근본적인 설계상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적연금은 도입 초기에 제도연착륙을 위해 저부담·고급여 방식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때 만든 최초의 공적연금안인 국민복지연금은 보험료율 8%에 급여는 퇴직 5년 전 소득의 30%로 저부담·고급여였고 1974년에 시행할 경우 2015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또 1980년대 초에 설계된 바 있는 연금안은 보험료율 7%에 급여는 퇴직 3년전 소득의 70%로 2029년 기금고갈로 설계된 바 있다. 이 제도들은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저부담·고급여 구조가 설계상의 오류가 아니라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택할 수 있는 방안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재정안정론에 기초하여 언론이 주장해온 연금개혁은 사실상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나라 주류언론은 낸 만큼 받아가야 한다는 민간연금식의 재정안정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 저부담·고급여인 국민연금은 곧 기금고갈에 직면할 것이고 이는 최근의 인구고령화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해왔다. 그래서 보험료를 올리든가 급여를 내리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막상 연금개혁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론 스스로가 회의적이다. 연금개혁의 일환으로 보험료를 인상하려 하면 미래세대가 그것을 부담할 여력이 있겠느냐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연금급여를 낮추면 그것도 비판한다.
이런 보도는 결국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진퇴양난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진퇴양난의 이미지는 연기금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언론은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기금수익률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언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결코 낮지 않은 연기금 수익률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어쩌다 수익률이 단기적으로 하락할 때면 그것을 과장하여 보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보도가 기금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의도보다는 연금공단을 비난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 같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금수익률을 올려야 하지만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는 연금공단에 보험료는 계속 내야 하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진퇴양난의 이미지는 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조장된 연금불신은 언론 스스로에게도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우리나라 주류언론은 연금개혁을 통한 국민연금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불신이고 이 국민불신의 원인은 기금고갈불안감이며 이를 해소하려면 연금개혁을 하여 재정불안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연금개혁을 하려면 기금고갈불안감을 제거해야 하고 기금고갈불안감을 제거하려면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순환논리에 갇혀있다. 그러나 언론은 순환논리에 빠져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순환논리의 어느 한 요소만 꺼내서 이를 연금비난에 활용한다. 그래서 재정안정론에 입각한 연금개혁을 하려면 보험료를 올리든지 급여를 내려야 하는데 보험료를 올리려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비판하고 급여를 내리려 하면 또 그것도 비판한다. 이런 보도가 공적연금의 건전한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더욱이 최근에 언론은 세대형평론까지 들고 나오면서 재정안정론을 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대형평론 역시 문제가 많다. 그것은 결국 낸 만큼 받아가야 한다는 수익비 개념을 세대로 확장한 것으로 현세대는 현세대가 받아갈 만큼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대형평론은 우선 세대의 개념이 불분명하다. 현재의 50대 이상은 아마도 보험료 증액에 동의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2,30대도 50대 이상과 자신을 같은 세대라 생각하여 보험료 증액에 동의할 것인가? 아마 현재의 2,30대는 50대 이상에 대해 자신들을 미래세대라 생각할 것이다. 또 세대형평론은 세대를 강조한 나머지 계층을 간과하고 있다. 같은 세대라도 공적연금의 부담은 계층 간에 균등하지 않다. 이는 현세대도 미래세대도 마찬가지다. 공적연금재정의 핵심은 노후보장을 위한 사회적 자금의 공평한 확보이고 이를 위해서는 계층간 공평한 부담제도가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플랫폼경제, 급속한 인구고령화, 장기적 저성장 등으로 무언가 큰 변화가 있을 것이지만 그 결과가 정확히 어떨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중에 새로운 형태의 결정론, 즉 신결정론이 등장하고 있다. 기술결정론과 인구결정론, 재정결정론이 그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의 변화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인간노동력에 격변이 온다거나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다거나 그로 인해 재정적 지속가능성도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 이들 신결정론의 핵심내용이다.
이런 신결정론은 국민연금에서는 40~50년 후 기금고갈과 필요보험요율 30%라는 수치에 과장된 확신을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결정론자들은 기금고갈이 증명된 사실인 것처럼 전제하고 정부더러 솔직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인인구가 40%인 사회,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된 사회, 플랫폼경제가 지배하는 사회, 공유경제가 본격화한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4,50년 후의 기금고갈 역시 증명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추정일 뿐이다. 수치로 제시되어 확실한 것처럼 보일 뿐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똑같이 불확실한 수치를 분명한 것처럼 놓고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미래사회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4차 산업혁명이나 플랫폼경제 역시 기존의 자본주의 이해관계의 틀을 전제로 해서 전개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현재 자본주의의 개념적 도식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이윤창출처와 노동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 지금의 개념도식으로 잡히지 않는 이윤창출처와 노동이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이 현재의 자본주의적 역관계와 어떤 연관을 맺으며 전개되어나가는지를 파악해내고 그런 이윤창출처와 노동을 포착해낼 수 있는 개념적·제도적 도식을 만들어내어 노후보장에 필요한 사회적 자금을 확보할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노력 대신 민간연금식의 수익비 개념을 내세워 기금고갈 운운하고 나아가 현 세대가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갈될 연기금에 보험료를 더 내라고 주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래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세대갈등과 제도불신만 조장할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기다 돈을 더 내라고 하면 누가 더 내고자 하겠는가? 기금이 고갈될 것이지만 현세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하니,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우리 국민들은 그러면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강제가입에서 빼 달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제도불신은 수익비를 내세운 재정안정론이 빚어내는 필연적인 그러나 불행한 결과일 뿐이다.
재정안정론은 공적연금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재정안정론을 따르는 언론은 연금에 대해 진퇴양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스스로는 순환논리에 빠지는 것이다.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국민들은 필요하면 보험료를 더 낼 것이다. 그런 신뢰를 만들려면 기금고갈 후 필요보험요율이 임금의 30%라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험료율 30%라는 것이 GDP 대비로는 9%이며 노후보장에 필요한 이 GDP 9%(혹은 그보다 좀 더 많을 수도 있다)의 사회적 자금을 임금만이 아니라 다양한 원천에서 공평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적연금은 공포가 아니라 신뢰 속에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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