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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최성규 총경 해외도피, 권력층 조직적 개입 의혹

이명재 검찰체제, '권력 내부저항'에 직면했나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인물중 하나인 경찰청의 최성규 총경(52)이 지난 14일 오전 가족까지 데리고 홍콩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최 총경이 최규선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사실이 밝혀진 것은 지난 달 28일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보름여동안 검찰 등은 출국금지 조치 등 가장 기초적인 조치조차 하지 않아 결국은 최 총경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더욱 최 총경은 출국 직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에 권력층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 총경 해외도피를 놓고 이명재 검찰총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검찰을 위시한 권력층 내부에서 이 총장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재 총장체제 출범후 최초로 직면한 저항이자 위기인 셈이다.

***최성규 총경 비리는 보름 전부터 드러났으나...**

문제의 최성규 총경 이름이 세간에 가장 최초로 드러난 것은 지난 달 28일 오후의 일이다.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의 전 운전기사였던 천호영씨가 경실련 사이트에 '최규선의 비리'라는 제목으로 비리의혹을 폭로하면서였다.
이 글에서 천씨는 최 총경의 이름을 두 차례 언급했다.

"2001년 여름경이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 경찰청 특수수사대에서 의약분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규선은 김희완 전 서울 정무부시장에게 부탁을 받아서 서울 C병원 형제들(의사가족)에 비리를 폭로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건네받았고 C바이오텍 주식도 양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특수수사대 최성규 대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성진건설 유XX사장과 건설 일을 봐주기로 한 댓가로 많은 돈을 갈취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 사장님이 최규선이란 사람에게 부탁한 일이 되지 않자 유 사장님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최규선은 경찰청 특수수사대 최성규 대장을 통해서 유 사장이 김홍걸씨 이름을 팔아서 사업을 해왔다고 거짓을 꾸며서 유 사장을 조사한 적도 있습니다."

최 총경 이름은 그후 천호영씨가 지난 8일 최규선과 건설 자재업체 A사 손회장이 지난해 7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최씨 사무실에서 만나 대책회의를 가진 대화내용 녹음 테이프를 공개할 때 또다시 수차례 언급됐다.

이 정도면 당연히 검찰이나 경찰은 최 총경에 대한 수사 및 이에 따른 출국정지 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검찰은 지난 10일 최규선 대표 등 6명에 대해선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으나 유독 최 총경에 대해선 출국정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실수라고 보기엔 너무나 의혹스런 대처였다.

***최 총경 도피, 권력층의 조직적 작품인가**

최총경 도피와 관련, 당연히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의혹은 권력 상층부가 최 총경 도피를 방조 또는 지시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일보는 15일 "본보 취재팀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찰청 특수수사과 최 총경이 지난 11일 오후 4시쯤 청와대로 직접 찾아가 민정수석 비서실 관계자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최 총경은 청와대 방문 다음날인 12일 밤 서울 삼성동 모호텔에서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희완씨 등과 함께 검찰소환을 앞둔 최규선씨와 대책회의를 가진 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에 잠적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 3남 김홍걸씨가 연루된 최선규 게이트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선 권력의 최대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경찰, 검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따가운 의혹의 시선이 던져지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경찰청의 대응은 한마디로 코미디 수준이었다.

최 총경이 가족까지 데리고 홍콩으로 출국한 다음 날인 15일 경찰청은 간부회의를 소집해 "15일 오후 6시까지 최총경이 출근하지 않을 경우 전국에 수배조치하고 정밀 감찰조사에 돌입하는 한편, 직위해제 등 인사조치를 취한다"고 결정했다. 13일 이후 최총경과 연락이 끊겼고 14일 이미 홍콩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차원의 수배조치 운운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검찰 대응도 의문투성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최규선 게이트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10일 최규선 대표 등 6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처를 내렸다. 그러나 유독 최 총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해외도피를 방조한 꼴이 됐다.
최 총경이 사실상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지시를 받는 특권조직의 수장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검찰 내부에도 최 총경의 해외도피를 원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인가.

앞으로 이명재 검찰총장이 검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호남 출신, 정권교체후 핵심요직에 중용**

이번 최 총경 도피 의혹과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그가 경찰청 특수수사대 과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수수사대란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간단히 말해 지난 2000년 10월 해체된 '사직동 팀'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특수수사대는 지난 72년 6월 당시 김현옥 내무부장관 지시로 치안본부에 설치됐다. 주된 활동영역은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 비리 수집이었다. 74년 6월 조직이 특수수사 1대와 특수수사 2대, 둘로 나뉘어졌다. 이 중에서도 특수수사 1대는 고위층 비리 등 청와대 특명사건을 전담하게 됐다. 1대는 82년 12월 사직동 소재 3층 건물로 이사하면서 '사직동 팀'으로 불리게 됐다.

사직동 팀은 김대중정부 출범후인 2000년 10월 해체됐다. 9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 정국을 뒤흔든 'DJ비자금 사건'을 준비한 사실이 드러난 데다가 '옷로비 사건'에도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사직동팀은 그후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흡수됐다.

문제의 최성규 총경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현 정부 출범후 특수수사과로 자리를 옮기면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수수사과는 역대 정권의 출신지역 인사들이 차지하던 자리였다. 때문에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그의 발탁에 큰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0년 1월 그는 이무영 당시 경찰청장에 의해 특수수사과장으로 전격 발탁된다. 이 청장 역시 전북 전주라는 특정지역 출신으로, 권력의 핵심멤버중 하나였다. 이 청장은 99년 11월 경찰청장이 된 후 후속인사를 하면서 특정지역 출신인 최성규를 특수수사과 과장으로 중용한 것이다.

2000년 10월 사직동팀이 해체되면서 특수수사과에 친인척 및 고위층 내사기능이 부여됐다. 최 총경은 사실상 과거 사직동팀의 최고책임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사직동 팀 해체후 대통령 친인척 비리는 특수수사과의 주요 업무중 하나이며, 특수수사과장은 때때로 청와대와 접촉을 갖는다"고 전하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 자신이 감시해야 할 대통령 3남 김홍걸씨 및 그의 측근들과 밀착, 각종 비리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자신이 맡은 임무와 정반대 일을 한 셈이다. 특정지역 출신만을 선호한 인사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다. YS정권때와 마찬가지로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 것이다.

***이명재 검찰, 정면돌파해야**

지난해부터 불거진 일련의 의혹들 가운데 주범의 해외도피로 수사가 좌절된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 예가 고위 권력층 개입의혹을 사고 있는 한국전자복권 김현성 사장의 중국 도피행이다. 한국전자복권의 전자복권 사업에 아태 재단 이수동 이사, 우근민 제주지사 등이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해 9월 김현성 사장은 중국으로 달아났다. 그후 차정일 특검은 더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고, 이 사건을 이명재 검찰에게 넘겨야 했다. 같은 사건이 미묘한 시기에 또 일어난 것이다.

최총경 해외도피는 그 안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가 간단치 않다. 보기에 따라선 권력층의 조직적 사건 진실 은폐 기도로도 해석할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총경이 출국전 청와대 비서실측과 접촉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일파만파의 정치적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 총경 해외도피를 이명재 검찰총장과 연결시키는 시각은 없다. 이명재 총장이 지금 얼마나 공격적으로 권력층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가를 잘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내 일부 인사들이 여기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배제치 않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 총장이 검찰 조직 전반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즉 일부 권력형 라인이 검찰내에 잔존해 있으며, 이들이 물밑에서 작동해 최 총경 출국정지 같은 검찰의 기본적 조처를 방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명재 총장의 검찰은 지금 출범후 최초의 좌절이자 시련을 맞고 있다. 이같은 시련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이번 최규선 비리의혹의 실체를 만천하에 명명백백히 밝히는 것이다. 이 길만이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선 국기를 바로세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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