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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통령ㆍ국회ㆍIOC 위원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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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통령ㆍ국회ㆍIOC 위원의 침묵

러시아는 대통령ㆍ의회가 합심해 미국에 항의

"미국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이번 대회 심판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앞말은 러시아의 슬리스카 하원 제1 부의장의 말이고, 뒷말은 쥬가노프 공산당위원장의 말이다.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오염시키고 있는 미국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을 놓고 지금 러시아가 얼마나 격분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 의회와 한국 의회의 차이**

러시아 의회인 듀마는 22일 러시아 선수단이 솔트레이크 폐막식에 불참토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는 찬성 3백59표 대 반대 3표. 듀마가 생긴 이래 가장 압도적 표차의 결의안이었다.

이날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날 결의로 솔트레이크 사태는 '정치문제'로 한단계 레벨업됐다.

러시아가 이처럼 격노하고 있는 것은 22일 IOC의 실수로 러시아가 금메달이 기대되던 여자 크로스컨트리 4X5km 계주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리사 라주티나 등 러시아 선수 2명이 혈액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IOC가 제때 통고해주지 않아 선수교체 시기를 놓침으로써 대회에도 나가보지 못하고 금메달을 빼앗긴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러시아 의회는 즉각 비상회의를 소집해 러시아 선수단의 폐막식 불참을 결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같은 러시아 의회의 신속한 대응은 한국 의회와 여러모로 대비가 되고 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 사건이 발발하면서 전국민의 분노여론이 비등했던 21일 국회조차 열지 않고 장외에서 '진흙탕 폭로전'만 벌였다. 한나라당은 아태재단의 비리의혹을,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의 세풍 비리 의혹과 방미기간중 술자리를 폭로하며 이전투구를 벌였다.

22일 사흘간의 공전을 마치고 연 국회에서도 '솔트레이크 사태'는 아예 관심사밖이었다. 이날도 의원들은 이회창총재 장남의 주식투자 의혹 등을 문제삼으며 하루내내 입씨름으로 소일했다.

여러모로 러시아 의회와의 현격한 수준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러시아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의 차이**

러시아와의 수준차는 국회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22일 즉각 IOC를 성토하고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선수단이 객관적이지 못한 선입견이 개입한 판정을 받았다"고 IOC를 정면공박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팀도 부당하게 금메달을 제한받았다"며 "러시아, 한국, 우쿠라이나, 중국이 불공정 판정의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또 "심판이 유례없는 미디어의 압력을 받고 있다"며 "올림픽 정신에 반하는 과도한 상업화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번 대회가 미국 미디어의 쇼비니즘 횡포로 크게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러시아 팀은 푸틴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솔트레이크 폐막식에 불참하는 것은 물론이고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까지도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푸틴과 러시아 팀이 이렇게 세게 치고 나오자, IOC가 크게 당황했다. IOC의 자크 로게 위원장은 즉각 러시아 관리들과 만나 문제점을 협의했고,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시시비비를 가려 잘못이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IOC가 이렇게 납작 엎드리자, 푸친은 한 걸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며 폐막식 및 하계올림픽 불참 의사를 철회했다. 한차례의 치열한 파워게임끝에 외교적 승리를 거둔 셈이다.

이같은 푸틴의 '고공외교'에 반해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직접 공개비판까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의 비공식 유감표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푸틴의 고공외교를 지켜본 이들의 탄식어린 바람이다.

***김운용은 한국편인가 IOC편인가**

러시아와는 달리 국내의 지원사격이 없는 한국선수단은 '외로운 철새'였다.

한국선수단은 22일 박성인 선수단장의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폐막식 불참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하루만인 23일 대한체육회의 김운용 회장은 성명을 통해 "한국 선수들은 폐회식에 동료선수들과 함께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번 동계올림픽의 대미를 축하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불참 카드를 철회했다. 힘없는 선수단은 대한체육회장 지시에 따라야 했다.

IOC의 2인자인 김회장의 성명은 여러모로 문제투성이였다. 그는 이번 동계올림픽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진 올림픽"으로 정의내렸다. 편파 판정을 사실상 승인하는 꼴이었다. 당연히 일각에서는 김회장이 한국선수단 입장이 아닌, IOC 편에 선 게 아니냐는 신랄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회장이 이처럼 저자세로 나가니 문제가 제대로 풀릴리 만무였다. 국제빙상연맹(ISU)는 22일 집행위원회에서 "한국선수단의 항의를 검토했지만 경기규칙의 위반과 관련된 어떤 항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정, 이 내용을 서한으로 통고했다.

이로써 모든 게 끝이었다.

국가들이 경합을 벌이는 올림픽은 본질적으로 외교행위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한국은 또한차례 외교에서 여전히 '열등국가'임을 스스로 폭로했다. 이런 열등외교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솔트레이크 사태는 계속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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