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숫자는 경제 주체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숫자는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한국에서 최저임금은 뉴스에 많이 나오고 최저임금 개선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뉴스에 잘 나오지도 않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도 소수다. 하지만 이 두 숫자에는 몇 가지 공통점도 있다.
첫째, 둘 다 최저선의 목표를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가이드라인의 목표가 되곤 한다. 최저임금은 어떤 노동자라도 동일한 시간의 노동에 대해 받아야 할 최저선의 임금 수준을 규정하여 그 이상의 임금 상승과 경제구조 개편을 목표로 하는 제도이지만, 대다수의 저임금 부문 사업장에서는 그 수준만큼만 지불하도록 고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국제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산업혁명 이후 평균기온 상승을 2도 또는 1.5도 수준으로 묶어두기 위해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그 이하로 제한하기 위함이지만,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자국이 설정한 배출목표만큼 배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게다가 최저임금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둘 다 적용 예외 부문, 감시와 모니터링의 사각지대 같은 제도적·기술적 허점이 많아서 그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둘째, 둘 다 현실적 조건을 이유로 숫자를 끼워 맞추곤 한다. 최저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노동자의 최저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임에도, 경제 성장률, 노동생산성, 산업 피해, 기업의 지불능력 등이 논의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이는 노, 사, 공익 3자 구조의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그랬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구간설정위원회 방식이 도입될 경우 더욱 그런 경향을 가질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역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와 화석연료 소비량이라는 아주 객관적인 핵심변수가 있음에도, 각국이 목표를 설정할 때는 경제 구조, 산업 영향, 정치 상황, 여론 등에 근거하여 거꾸로 실현가능한 숫자를 도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둘 다 애초의 취지와 목표는 망각되거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셋째, 둘 다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는 협상장에 들어가지 못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긴 하지만 최저임금 숫자에 직접 영향을 받는 알바 노동자, 취약 부문 노동자들의 대변성이 보장될 장치는 없다. 심의 과정에서 노동자 대표들의 퇴장과 회의장 바깥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농성이 낯익은 풍경인 이유였다.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도 모든 나라의 대표들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핵심 논의 과정은 온실가스 다배출 선진국들이 주도하며 기후 취약 도서국과 제 3세계 나라들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 역시 회의장 바깥에서 시위를 하고 호소를 한다.
넷째, 그럼에도 둘 다 우리의 삶에 엄청나게 큰 차이를 가져오는 지렛대다. 그래서 최저임금 심의가 그렇게 소모적으로 진행되는 걸 알면서도 노동계는 이를 포기할 수 없으며, 더 많은 경제 조건 향상과 개혁의 매개가 되기를 바란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의 틀거리도 교토, 발리, 파리를 거치면서 일정한 진전을 만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 목표와 이행 수단은 기후변화를 늦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매년의 협상도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염려하고 또 피해를 절감하고 있는 이들에게 유엔 기후협약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수단이 되고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나오미 클라인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했던 것처럼, 경제와 정치,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이 두 숫자의 난맥상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한국의 노동운동도 '최저임금 1만원'이 전면적 구호가 되기 전에 중위임금 대비 2/3 또는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자동 결정되게 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소모적인 협상을 할 필요도 없고 숫자의 객관적 근거도 확보되며 노동자의 상대적 삶 향상이라는 의미도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해서 기후정의 운동에서는 미래의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규범적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그 수단을 강구하는 '백캐스팅(backcasting)' 기법이나 각국의 배출량에 강력한 한도를 설정하고 감축 책임을 나누는 '총량설정 및 감축배당제(cap and dividend)' 같은 제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를 객관화하여 공유하기도 어렵고, 실행 수단의 효과를 담보할 수도 없다는 고민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두 아이디어와 제안 모두, 지금의 힘센 논의 주체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올해에도 소모적인 협상과 눈물겨운 시위가 예상된다. 제도와 정책의 원래 취지를 돌아본다면 두 숫자 모두에 대해 다른 발상과 과감한 제안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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