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진통 끝에 관련 법안을 2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해 일부 보수 언론은 "국회의 직무유기로 많은 대학생이 피해를 떠안았다"며 맹공격을 하고 있다.
▲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프레시안 |
여야, 진통 끝 '등록금 상한제' 합의…야당 '승리'로 일단락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가 지난 연말 국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던 이유는 바로 이 제도가 "무늬만 등록금 후불제"라며 상정을 거부했던 교과위 야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으로 꼽히는 이 제도는 6퍼센트 안팎의 높은 이자율과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책정된 상환 기준 소득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오히려 불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더구나 일부 대학생들은 "1000만 원대까지 치솟은 등록금에 대한 제재 장치가 필요하다"며 교과위원장실을 점거, 등록금 상한제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교과위 이종걸 위원장 역시 등록금 상한제 없이는 법안을 상정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지난 31일 교과위는 전국 대학에서 등록금 상한제를 시행할 것과 폐지됐던 저소득층 무상 장학금을 다시 복원할 것을 전격 합의했다. 한나라당이 타협안으로 제시했던 국·공립대의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등록금 액수 상한제'가 합의된 것. 이로써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야당의 '승리'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관련 기사 : 지는 추미애, 뜨는 이종걸)
교과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1학기 시행 무산 발표
난항 끝에 극적으로 성사된 여야 합의였지만, 교과부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2학기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교과부는 6일 "애초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를 올 1학기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가 늦어지면서 2학기로 연기했다"며 "2학기에 새 학자금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행정적인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1학기에 받았던 기존 학자금 대출을 새 학자금 제도로 전환할 수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교과부의 이 같은 발표에 일부 언론들은 "법안 상정을 거부한 야당의 발목 잡기로 많은 수의 학생들이 새 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문화일보>는 6일자 보도에서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의 올 1학기 시행이 끝내 무산된 것은 결국 정치권의 직무유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의 '발목잡기'식 투쟁 방향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역시 7일자 사설에서 "국회의 소모적 정쟁이 결국 서민 가계의 주름을 더 늘리고 대학생들의 희망마저 꺾은 것"이라며 "야당은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들이 이 제도로 혜택을 본다면 집권당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는 모양"이라며 민주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서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시행 연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6일 "(이 제도의 시행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아주 클 것"이라며 "대학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1학기 시행 무산으로 많은 수의 학생들이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사실이다. 당장 이 제도의 시행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금융 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대학생 2만여 명은 등록금 마련의 길이 막히게 됐다.
교과부는 오는 1학기에 기존의 학자금 대출 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고 이를 위한 재원으로 4500억 원을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대학생들은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졸업 직후부터 대출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
정치권 책임 공방…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논란 '2라운드' 시작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야당의 책임 공방도 확산되고 있다. 당장 정부와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는 사람은 이 제도의 전면 수정을 주장했던 교과위 이종걸 위원장. 이 위원장은 이미 관련 법안의 상정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당으로부터 '불량 상임위'라는 질타를 받아 왔다.
▲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종걸 위원장(민주당). ⓒ프레시안 |
이 자리에서 이종걸 위원장은 "정부가 지난해 7월 새 학자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놓고, 11월 말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했다"며 "정부가 4개월에 걸려 만든 법안을 국회에 고작 한 달을 주며 처리해 달라고 요구해놓고, 이제 와서 야당 탓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서 "교과위원장의 상정 거부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발표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교과부의 '짝퉁'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애쓴 많은 사람들의 공을 칭찬하기는커녕, 그것을 폄하하고 흠집을 내는 교과부의 얕은 수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1학기 도입 무산에 대한 대학생의 성토도 이어졌다. 성신여대 정진경 총학생회장은 "지난 연말, 여야 의원들이 등록금 상한제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며 "등록금 인하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에 드디어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데, 갑자기 이를 2학기부터 시행한다는 것은 대학생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총학생회장은 이어서 "당장 대학생들은 정부의 외면 속에 400~500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한 때 반값 등록금 공약으로 대학생을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가지고 대학생을 무시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종걸 위원장과 등록금넷이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1학기 시행 무산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프레시안 |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법안 통과가 안 돼서 시행을 미룬다는 것은 누가보아도 설득력이 없다"며 "이 제도의 시행이 미뤄진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여당이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종걸 이원장은 "여야가 합의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법안이 2월 1일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시행령이 발표되면, 대학의 등록 기간이 3월말까지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1학기 도입이 가능하다"며 "야당 의원들이 정부가 발표한 시행 방안에 대해 이것저것 따진 것이 불편했던 심사가 아니라면, 갑자기 2학기부터 하겠다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야당과 등록금넷은 재학생의 경우 3월말까지 등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시행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고, 신입생에 대해서도 대학들이 입학금 및 등록금 납부 연기 조치를 취해주면 제도의 시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학생 단체, 등록금 인하·등록금 상한제 촉구 공동 행동 시작
한편, 이날 오전 전국 10여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2010년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지역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는 교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록금 상한제 입법을 통한 대학 등록금 인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여야의 등록금 상한제 관련 합의는 대학생의 절박한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며 "정부와 국회가 이 약속을 파기한다면 많은 대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며, 이는 다가올 지방 선거에서 냉정하게 심판받을 것"이라고밝혔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등록금 인하를 위한 대토론회와 '전국 대학생 교육 공동 행동' 등을 오는 2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 각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서울지역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교과부 앞에서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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