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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전두환 측, 또 '죽은 장인'을 불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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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전두환 측, 또 '죽은 장인'을 불러내다

비리 주역 고 이규동 씨…전재용 씨 사건 때도 돈 출처로 지목돼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전가의 보도'처럼 '장인'의 이름을 들고나왔다. 최근 발견된 30억 원짜리 연금 보험 일부의 출처가 전 전 대통령의 장인이자 이순자 여사의 부친인 고 이규동 씨라는 주장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4일 오전 11시께 이순자 씨 명의의 30억 원짜리 연금 정기예금과 관련해 "이규동 씨에게 10억5000만 원, (이순자 씨) 남동생 이창석 씨에게 15억 원을 받고 나머지 돈은 다른 은행 예금과 채권으로 갖고 있던 것을 모은 돈"이라는 취지의 소명 자료를 검찰 측에 제출하고 압류 해제를 요청했다.

이규동 씨는 전 전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때 빈번히 등장했던 이름이다. 2004년에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는 국민주택채권(무기명 채권의 일종) 167억 원을 외할아버지인 이규동 씨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1911년생인 이규동 씨는 전재용 씨가 수사를 받기 3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세상을 뜬 상태였다. 세상에 없는 사람은 말이 없다.

▲ 1995년 4월 2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 씨 결혼식에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다. 7년 만에 두 전직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앉아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전두환, 이순자, 전기환, 이규동, 노태우, 김옥숙. ⓒ연합뉴스

전두환 일가의 '전가의 보도', 이규동 일가를 둘러싼 의혹들

1980년대 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두환 일가의 비리 의혹은 크게 두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전 씨 일가', 그리고 이순자 여사를 정점으로 하는 '이 씨 일가'다. 전씨 일가와 이 씨 일가의 가계도는 5공 비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중 이순자 씨의 부친 이규동 씨는 이 씨 일가의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거론됐던 5공 실세 중 하나였다.

이규동 씨는 경북 성주 출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가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군 경리관을 지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이했다.1946년, 35세의 늦은 나이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를 2기로 졸업하게 된다. 196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1961년 농협중앙회 이사를 시작으로 이 씨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뛰어든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대한주정협회 회장, 반공연맹 경기도지부장을 지냈다. 이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3공, 유신을 거치면서 군인에서 정치가로 성장하는 데 조언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자 이 씨는 1981년 3월 대한노인회 회장직을 맡게 된다. 이후 이 씨 일가는 5공 체제에서 숱한 이권을 쥐락펴락한다. 1980년대 말, 당시 이 씨 일가의 비리를 다룬 신문 기사는 '악취', '검은손', '부조리' 등의 단어로 점철돼 있다. 이 씨는 대한노인회장 취임 후 '명성 사건'에 연루된다. 명성그룹의 김철호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기부 받고, 명성그룹을 비호했다는 의혹이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지만, 이 사건의 진상은 현재까지도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 씨는 특히 부동산 투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 씨와 이 씨의 일가가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부동산을 집중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 씨 일가의 부동산 매입 종잣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1980년대에 제기된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에서 이 씨 일가의 이름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렸다는 점이다.

이 씨가 1970년대에 사들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노른자위 땅에는 그의 아들 이창석 씨(전두환의 처남)가 세운 창원빌딩이 들어섰다. 현재는 강남의 유명 병원이 들어선 이 땅과 건물을 팔아 이 씨 일가가 남긴 차액은 수백억 원대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창석 씨는 최근에도 전 씨 일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입길에 오르는 유명 인사다.

이규동 씨는 자신이 보유한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땅 500번지 2526㎡를 1985년, 또 다른 사위인 김상구 씨(전두환의 동서)에게 팔기도 했다. <프레시안>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10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이 땅은 여전히 김상구 씨 소유로 돼 있다. 김 씨는 5공 시절 호주 주재 한국대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5공 청문회 당시 호주 등에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의혹, 호주의 기업에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돼 "김 씨가 전 전 대통령의 재산 해외 도피를 도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다. 그러나 김상구 씨 관련 의혹을 포함해 '전두환 비리'를 수사했던 검사 출신 A 씨는 "해외 재산 도피 의혹에 대해서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해외에도 엄청난 재산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김상구 씨가 보유하고 있는 문제의 관양동 땅 인근은 '이씨 타운'이나 다름없었다. 관양동 499-1번지와 2번지 땅은 원래 이창석 씨 소유였는데(일부는 이순자 씨를 거쳐 이창석 씨가 소유), 2004년 검찰이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 열을 올릴 무렵 갑자기 임 모 씨에게 팔아 치웠다. 이 때문에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이 땅 인근에 있는 관양동 산127-2번지는 현재까지도 전 전 대통령의 딸 전효선 씨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효선 씨는 이 땅을 이창석 씨로부터 증여받았다.

이 씨의 둘째 동생 이규광 씨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역시 군인 출신인 이규광 씨는 쿠데타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규광 씨는 12.12 쿠데타 후 반년이 지난 1980년 5월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5공실세로 부상한다. 이규광 씨의 부인은 장성희 씨로 그 유명한 장영자 씨의 언니다. 이규광 씨의 처제인 장영자 씨와 그의 남편 이철희 씨가 연루된 천문학적 규모의 어음 사기 사건은 두말할 나위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규광 씨도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6개월 만에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그는 양회공업협회 회장에 취임하는 등 5공 실세로 기세를 떨쳤다.

이규동 씨를 비롯한 '이씨 일가' 관련 의혹은 5공 청문회 당시 무더기로 제기됐지만 대부분 확인되지 못했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을 잔뜩 안고 이 씨는 2001년 사망한다. 그러나 이규동 이름 석 자는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활자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전재용 씨가 규명되지 않은 무기명 채권의 출처로 이미 작고한 외할아버지를 언급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난감해 했다.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순자 씨 측이 작고한 부친 이름 석 자를 언급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는 이규동 씨, 그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면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새삼 5공 비리의 주역을 무덤에서 불러오는 게 불편하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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