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동 씨는 전 전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때 빈번히 등장했던 이름이다. 2004년에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는 국민주택채권(무기명 채권의 일종) 167억 원을 외할아버지인 이규동 씨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1911년생인 이규동 씨는 전재용 씨가 수사를 받기 3년 전인 2001년 9월 11일 세상을 뜬 상태였다. 세상에 없는 사람은 말이 없다.
▲ 1995년 4월 28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 씨 결혼식에 노태우 전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다. 7년 만에 두 전직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앉아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전두환, 이순자, 전기환, 이규동, 노태우, 김옥숙. ⓒ연합뉴스 |
전두환 일가의 '전가의 보도', 이규동 일가를 둘러싼 의혹들
1980년대 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두환 일가의 비리 의혹은 크게 두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전 씨 일가', 그리고 이순자 여사를 정점으로 하는 '이 씨 일가'다. 전씨 일가와 이 씨 일가의 가계도는 5공 비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중 이순자 씨의 부친 이규동 씨는 이 씨 일가의 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거론됐던 5공 실세 중 하나였다.
이규동 씨는 경북 성주 출생이다. 일제 강점기에 가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학교를 졸업한 후 만주군 경리관을 지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이했다.1946년, 35세의 늦은 나이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육사를 2기로 졸업하게 된다. 196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뒤 1961년 농협중앙회 이사를 시작으로 이 씨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뛰어든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대한주정협회 회장, 반공연맹 경기도지부장을 지냈다. 이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3공, 유신을 거치면서 군인에서 정치가로 성장하는 데 조언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자 이 씨는 1981년 3월 대한노인회 회장직을 맡게 된다. 이후 이 씨 일가는 5공 체제에서 숱한 이권을 쥐락펴락한다. 1980년대 말, 당시 이 씨 일가의 비리를 다룬 신문 기사는 '악취', '검은손', '부조리' 등의 단어로 점철돼 있다. 이 씨는 대한노인회장 취임 후 '명성 사건'에 연루된다. 명성그룹의 김철호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기부 받고, 명성그룹을 비호했다는 의혹이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지만, 이 사건의 진상은 현재까지도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 씨는 특히 부동산 투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 씨와 이 씨의 일가가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부동산을 집중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 씨 일가의 부동산 매입 종잣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1980년대에 제기된 각종 권력형 비리 의혹에서 이 씨 일가의 이름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렸다는 점이다.
이 씨가 1970년대에 사들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노른자위 땅에는 그의 아들 이창석 씨(전두환의 처남)가 세운 창원빌딩이 들어섰다. 현재는 강남의 유명 병원이 들어선 이 땅과 건물을 팔아 이 씨 일가가 남긴 차액은 수백억 원대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창석 씨는 최근에도 전 씨 일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입길에 오르는 유명 인사다.
이규동 씨는 자신이 보유한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땅 500번지 2526㎡를 1985년, 또 다른 사위인 김상구 씨(전두환의 동서)에게 팔기도 했다. <프레시안>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10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이 땅은 여전히 김상구 씨 소유로 돼 있다. 김 씨는 5공 시절 호주 주재 한국대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5공 청문회 당시 호주 등에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의혹, 호주의 기업에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돼 "김 씨가 전 전 대통령의 재산 해외 도피를 도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다. 그러나 김상구 씨 관련 의혹을 포함해 '전두환 비리'를 수사했던 검사 출신 A 씨는 "해외 재산 도피 의혹에 대해서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해외에도 엄청난 재산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김상구 씨가 보유하고 있는 문제의 관양동 땅 인근은 '이씨 타운'이나 다름없었다. 관양동 499-1번지와 2번지 땅은 원래 이창석 씨 소유였는데(일부는 이순자 씨를 거쳐 이창석 씨가 소유), 2004년 검찰이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 열을 올릴 무렵 갑자기 임 모 씨에게 팔아 치웠다. 이 때문에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이 땅 인근에 있는 관양동 산127-2번지는 현재까지도 전 전 대통령의 딸 전효선 씨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효선 씨는 이 땅을 이창석 씨로부터 증여받았다.
이 씨의 둘째 동생 이규광 씨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역시 군인 출신인 이규광 씨는 쿠데타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규광 씨는 12.12 쿠데타 후 반년이 지난 1980년 5월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하면서 5공실세로 부상한다. 이규광 씨의 부인은 장성희 씨로 그 유명한 장영자 씨의 언니다. 이규광 씨의 처제인 장영자 씨와 그의 남편 이철희 씨가 연루된 천문학적 규모의 어음 사기 사건은 두말할 나위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규광 씨도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6개월 만에 그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그는 양회공업협회 회장에 취임하는 등 5공 실세로 기세를 떨쳤다.
이규동 씨를 비롯한 '이씨 일가' 관련 의혹은 5공 청문회 당시 무더기로 제기됐지만 대부분 확인되지 못했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을 잔뜩 안고 이 씨는 2001년 사망한다. 그러나 이규동 이름 석 자는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활자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전재용 씨가 규명되지 않은 무기명 채권의 출처로 이미 작고한 외할아버지를 언급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난감해 했다.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순자 씨 측이 작고한 부친 이름 석 자를 언급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언급되는 이규동 씨, 그의 '유산'이라고 주장하면 면죄부가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새삼 5공 비리의 주역을 무덤에서 불러오는 게 불편하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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