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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생맥주 한잔이면 다음 날 화장실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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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생맥주 한잔이면 다음 날 화장실도 즐겁다

[맥주 이야기 ⑥] 브루마스터 송훈과 함께 맥주 만들기

"최고로 꼽히는 카스파 슐츠(Kaspar Schulz) 사의 양조 기계로 맥주를 만드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맥주 전문가가 소개해 준 곳은 잠실 롯데호텔 지하의 크래프트 맥주 펍 '메가씨씨'였다. 이곳은 맥주 양조장을 갖고 있는 일종의 '브루펍'인데, 총 820평이며 600여 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브루펍'이라 불릴 만하다. 영업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 오전 10시 무렵, 양조 탱크 사이로 두 사람이 물탱크를 청소하는 게 보였다. 계기판을 보며 능숙한 솜씨로 양조 기계를 다루고 있는 사람은 이곳의 브루마스터(맥주 장인)로, 보리알 빻는 것부터 맥주 맛을 내기까지 맥주 양조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송훈 과장(40)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맥주 전문가인 송 과장은 스타일리시한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맥주 양조 경력은 독일 뮌헨 공대 재학 시절까지 치면 15년 가까이 된다. 송 과장에게서 맥주 비법을 들을 수 있었다. 양조장 옆에 자리한 바(bar) 뒤편에는 커다란 구릿빛 탱크(구리조) 두 기가 서 있는데 송 과장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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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마스터 송훈 과장 ⓒ프레시안(최형락)

국내 유일, '송훈표 맥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송 과장은 "이 기계는 엿기름을 만드는 것이다. 즉 맥즙(몰트)을 만든다. 와인으로 치면 포도즙을 생각하면 된다. 보리를 압착하고 으깨는 일을 하는데 구리조, 담금조, 당화조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메가씨씨에서는 바이젠(Weizen), 둥켈(Dunkles), 필스(Pils) 3종류의 프리미엄 크래프트 맥주를 제공한다. 바이젠은 독일 뮌헨 지역의 대표 밀 맥주다. 다른 모든 하우스맥주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즉석에서 만들어 판매되므로 효모가 살아 있다. 맥주 전문가들은 "잘 만든 맛있는 생맥주를 마시면 그다음 날 화장실 가는 게 즐거워진다"고 말한다. 둥켈은 구수한 맛과 은은한 향이 일품인 일종의 흑맥주다. 필스는 체코 프라하 서쪽 필젠에서 만들어지는 맥주인데, 일반적인 라거 맥주와 비슷하다.

이처럼 다양하고 맛있는 이곳 '송훈표'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맥아를 선택해야 한다. 국내산 맥아보다는 유럽 맥아가 맥주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송 과장은 직접 맥아를 선택하고, 몇 종류를 블렌딩(맥주 맛을 내기 위해 다른 품종의 맥아를 섞는 것)한다고 말했다. 보통 2가지에서 4가지 종류의 맥아를 적당히 섞는다고 한다. 어떤 맥아를 다른 어떤 맥아와 섞는지, 어떤 맥아의 비율을 높여 섞는지 등에 따라서 맥주 맛은 달라진다. 한 달 전에 먹은 맥주와 오늘 먹은 맥주의 맛이 똑같아지려면 블렌딩 과정부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가 내일 술을 만든다고 합시다. 일반적으로 전날 보리를 빻습니다(밀링 작업). 술을 한 번 만들 때 만드는 양이 1000리터 정도 되는데, 그러면 약 180킬로그램의 보리를 빻게 됩니다. 밀링 기계의 톱니 간격에 따라 곱게 빻고 거칠게 빻는 게 있는데, 적당히 조절합니다. 거칠게 빻으면 여과는 좋은데 효율이 안 나고, 곱게 빻으면 효율은 좋은데 여과가 잘 안됩니다. 그리고 담금조에 물을 넣고 빻은 보리를 넣어 끓입니다. 이 과정을 당화(맥즙을 내는 일)하고, 여과(찌꺼기를 거르는 일)하고, 자비(끓이는 일)한다고 말하죠. 그리고 홉을 넣습니다. 여기까지 과정에 약 8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맥즙은 관을 통해서 발효조로 가게 되는 것이죠."

▲ 송 과장이 발효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발효조 속에서 발효가 시작되면서 거품이 올라오고 있는 맥즙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송 과장은 홀에 전시된 담금조에서 뻗어 나온 길다란 관을 가리켰다. 이 관은 양조장으로 연결돼 있다. 맥즙은 양조장에서 효모와 섞이게 된다. 술이 될 준비를 마친 액체가 발효조에 가득 차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9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후 맥즙의 당분을 효모가 분해하면 알코올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

술 빚는 날, 오전 9시에 일과를 시작하면 저녁 7시 무렵 끝난다. 청소까지 마무리하면 저녁 8시 반이 된다. 술 빚는 날은 고된 날인 셈이다. 이후 맥주가 발효되고 숙성돼 저장조로 들어갈 때까지 3주에서 4주 걸린다. 송 과장은 "쉽게 말해, 오늘 한잔 마시는 술은 제가 한 달 전에 만들기 시작한 술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브루마스터, 맥주 제조의 마법사

맥주에 들어가는 홉도 모두 수입한다. 어떤 홉을 얼마나 쓰느냐 역시 맥주 맛을 결정하는 요소다. 송 과장은 "맥주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물, 효모, 홉, 보리 네 가지다. 물 빼고는 다 수입한다. 효모는 검증된 효모를 쓰는데, 덴마크나 독일에 효모 은행이 있다. 거기에서 효모를 사와서 배양한다. 외국 대형 맥주 회사는 자기들만의 효모를 개발해서 쓰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형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홉과 효모를 넣었다. 이제 발효 과정을 살펴볼 차례다.

"발효 과정에서는 감이 중요합니다. 대기업 맥주 회사의 경우 중간 중간 발효 속도 등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훌륭하게 돼 있는데, 여기는 연구소가 아닙니다. 경험으로 하죠. 당도, 온도 정도를 체크합니다. 술은 효모가 당을 분해하도록 해서 알코올을 만드는 것인데, 원하는 만큼 당을 끄집어내는 게 중요하죠. 보리를 조금 쓰면 당이 적어지고, 많이 쓰면 당이 많아집니다. 술을 만들 때 알코올 도수를 신고하는데, 4.5도 술이면 거기에 맞게, 5.0도 술이면 거기에 맞게 보리를 쓰고 당을 끄집어내는 것이죠. 그러면 열이 납니다. 온도도 체크해야 합니다. 발효가 진행될수록 당은 감소하고 알코올은 늘어나겠죠. 그랬을 때 어느 시점까지 발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 탄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압력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발효가 완전히 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톡 쏘는 탄산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보통 발효 단계에서는 발효조를 밀봉하지 않는다. 당이 완전히 분해되기 전에 밀봉하는데,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CO2), 즉 탄산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잔당(남은 당)이 분해되면서 생긴 탄산은 맥주의 청량감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발효 방식에 따라 라거와 에일 맥주가 탄생한다. 둘은 발효 온도부터 다르다. 라거는 저온에서 발효시킨 것으로 '하면 발효 맥주'(가라앉은 효모로 발효시킨 맥주)라 불리고, 에일은 상온에서 발효시킨 맥주로 '상면 발효 맥주'(효모가 떠 있는 채 발효되는 것)라 불린다. 전자는 발효 기간이 길고, 후자는 발효 기간이 짧다. 그 외에도 발효 방식, 온도, 기간에 따라 맥주 맛은 모두 다르다. 양조 과정의 수많은 변수들 틈바구니에서 맛있는 지점을 잡아내는 사람이 바로 브루마스터다.

송 과장이 커다란 탱크에 돼지꼬리 모양으로 생긴 가느다란 호스를 꽂아 작은 맥주잔에 방금 숙성이 완료된 맥주를 따라 건넸다. 톡 쏘는 시원함과 알싸한 맛이 어우러진 일품 맥주였다.

▲ 숙성 마지막 단계로 저장조에 들어가 있는 바이젠 맥주 ⓒ프레시안(최형락)

화려한 브루마스터? "한국에서 인정받고 살기 어렵다"

송 과장은 "최근 한 방송국에서 브루마스터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준비한다면서 저를 인터뷰하겠다고 연락해 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뒤로 소식이 없네요. 바리스타 드라마도 있고 소믈리에 드라마도 있는데 브루마스터는, 글쎄요…." 말꼬리를 흐리는 송 과장의 표정에 브루마스터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브루마스터가 되더라도 취업할 수 없는 국내의 열악한 현실이 화려한 드라마와 어울리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정부는 크래프트 맥주 생산과 관련된 규제를 푸는 추세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단 대형 회사를 제외하면 만들어진 맥주를 팔 수 있는 유통망은 전무하다. 송 과장은 양조장 한쪽에 있는 캐그(생맥주통) 주입기를 가리켰다. 그는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케그에 맥주를 주입하면 뭐하나. '제가 만든 맥주가 맛있습니다'라며 많은 사람에게 맛보이고 싶지만, 외부 펍에 반출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 상태"라고 말했다.

"브루마스터 후배들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유학을 간 때가 1999년입니다. 당시에는 2002년에 하우스맥주 관련 규제가 풀릴 것을 예상도 못했었죠. 그래서 하우스맥주를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을 하고 간 것은 아니었어요. 독일에 있는 친척과 지인을 통해 어렵사리 뮌헨 공대 양조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뮌헨 공대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맥주 양조장 실습 경험, 그리고 어학이었죠. 오비맥주에 있는 분 중에 뮌헨 공대 출신이 있는데 실습과 관련해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학이 부족해서 당시 1년 어학을 하고 입학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같이 수학을 했던 한국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제가, 따지고 보면 맥주 양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세대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후배들이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제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취업할 때 스타트(출발선)를 잘 끊으라'고 합니다. 맥주만 만들어서는 한국에서 살기가 어렵습니다. 직접 사업도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미리 충고합니다. 그만큼 브루마스터가 한국에서 인정받고 생계를 유지하며 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오늘 마시는 맛있는 맥주의 뒤편에는 국내 맥주업계 종사자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셈이다. 최근 민주당 홍종학 의원실이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 대한 주세율을 낮춰주는 법안을 냈다. 대형 맥주 회사 두 곳이 국내 맥주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맥주 민주화' 법안으로 불릴 만하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맥주 관련 직업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대우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송 과장의 주장이다.

"다음에 맥주 빚는 날 놀러오세요. 국내에서 가장 맛있다고는 말 못하지만, 아주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겁니다."

▲ 송 과장이 갓 뽑은 맥주를 시음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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