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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맥주 서울 실종 사건…주역은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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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맥주 서울 실종 사건…주역은 MB?

[맥주 이야기 ①] 국내 대형 맥주 업체들의 '오버'를 경계한다

정작 술집에서는 대동강맥주를 볼 수 없는데 대동강맥주 기사가 났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4일 "입을 얼얼하게 하는 음식, 따분한 맥주"라는 서울발 기사를 통해 "맛없는 김치는 못 참는 한국인들이 왜 따분한(boring) 맥주는 꿀꺽꿀꺽 잘도 마시는지 의문"이라며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고 평가했다.

이전에도 외신들은 이따금 대동강맥주에 관해 보도했다. 그때마다 단골로 비유됐던 게 국내 브랜드 맥주였다. 그러나 관련 보도에 대해 국내 대형 맥주 회사들이 외신에 항의 서한까지 보내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비교 대상인 대동강맥주가 없으니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대동강맥주는 정말 한국 맥주보다 더 맛있는 걸까?


<프레시안>은 맥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따라가 봤다. 맥주에 대해 몰랐던 사실, 한국 맥주 산업의 현주소, 그리고 맥주가 갖는 다양한 의미들을 짚는 기획이다. 시쳇말로 술독에 빠지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많은 이들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맥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적절히 즐기자는 것이 이번 기획의 취지다. <편집자>

"대동강맥주가 이제 수입이 안 돼요. 그동안에는 남은 재고들을 팔고 있었는데, 다 나가고 한 박스 남은 겁니다. 이 마지막 박스는 손님들에게 안 팔고 제가 먹을 겁니다."

서울 시내에서 펍(Pub)을 운영하고 있는 윤봉규 씨(가명)는 약 2년 전쯤 쇼케이스에 진열된 대동강맥주를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대동강맥주를 즐겼다. 그런 즐거움도 이제는 사라졌다. 그는 대동강맥주 수입 중단 사태를 맞이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입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대동강맥주를 한창 찾던 시절에 수입이 중단돼 난감했었다. 다년간 맥주 사업을 한 경험으로 봤을 때, 대동강맥주는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오비나 하이트 맥주보다 맛있었다. 한번 맛을 본 손님들은 꼭 다시 대동강맥주를 찾았다. 그런 손님들은 '신기해서 먹는다'가 아니라 '맛있어서 먹는다'는 말을 했다.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들어온다면 우리 가게에도 꼭 진열해 놓으려고 한다."

서울 시내에도 북한산 대동강맥주를 팔던 곳이 적지 않게 있었다. 관악구에 있는 A 펍, 마포구에 있는 B 펍 등이 그랬다. 그러던 대동강맥주가 어느날 갑자기 서울 시내에서 실종됐다.

서울에서 대동강맥주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대동강맥주는) 인민 생활에 이바지하고 우리 인민들과 더욱 친숙해질 것이다."

대동강맥주 광고에 나오는 문구다. 북한 측에서 제작한 이 광고는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북한에서 제작된 대동강맥주 관련 다큐멘터리도 유튜브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다큐멘터리 '선군길에 꽃피난 사랑' 시리즈 중 한 편으로 제작된 이 동영상에서 대동강맥주 간판이 붙은 펍에 앉아 있던 평양의 한 시민은 "(맥주) 맛이 진한 게 참 좋다. 하루를 끝내고 나면 자연히 이 식당으로 발을 돌린다"고 말한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대동강맥주 공장 내부를 소개하는 장면도 나온다. "선군 혁명 영도의 바쁘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 이 공장을 방문해 "인민들에게 맥주를 많이 공급해야 하고 맛이 좋아야 한다. 맥주의 질을 높이는 게 기본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는 등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북한 측이 대동강맥주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대동강맥주는 "흰쌀과 보리의 혼합 비율에 따라 번호를 붙인 7가지 품종을 생산해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대단한 음료"이며 "2008년 12월 국제규격화기구(ISO9001)의 품질 관리 체계 인증을 받았고 2010년 10월에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식품 안전 관리 체계 인증을 획득"했다. 북한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영국의 맥주 생산 업체인 어셔스가 180년 동안 에일(Ale) 맥주를 생산해냈던 트로브릿지(Trowbridge) 지역의 공장 설비를 지난 2000년 들여왔다. 그리고 200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대동강맥주를 생산했다.

대동강맥주 수입업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동강맥주가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한국에 들어온 시점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통일부의 허가를 받고 직접 수입하는 업체도 있었고, 중국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여오는 업체도 있었다.

서울에서 대동강맥주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이유에 대해, 대동강맥주를 수입했던 C사는 "대동강맥주 원가가 너무 비싸 마진이 안 떨어져 결국 수입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수입 중단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문제가 개입돼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대동강맥주를 수입했던 한 업자의 말이다.

"통일부 허가를 받아 대동강맥주를 직수입해서 판매했는데, 2010년 3월에 천안함 사건이 났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의 5.24조치가 있었다. 통일부 측에서는 5.24조치 때문에 대동강맥주뿐만 아니라 일반 북한 상품 수입을 제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도 대동강맥주 수입을 중단했다. 올해 초에는 어떻게 좀 정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했는데, 지금 남북이 처한 상황을 보면 영 힘들 것 같다."

이 업자는 대동강맥주의 맛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분석도 내놓았다.

"북한과 같은 시스템(독재 국가)에서 맥주 맛이 좋은 경향이 있다. 일단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최고의 맥주를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대동강맥주의 원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20년 이상 주류업계에 있었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대동강맥주가 싼 재료로 만들고 비싼 값을 받는 엉터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겠더라."

▲ 유튜브에 올라온 대동강맥주 광고 중 한 장면.

하이네켄, 오렌지족, 그리고 대동강맥주

대동강맥주의 맛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대동강맥주가 더 맛있다"는 식의 대결 구도 때문에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 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사실 국내 브랜드 맥주와 '제3의 맥주'를 비교하는 것은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단골 주제였다. 그것이 북한 맥주라는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궁금증과 결합하면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맥주 논쟁은 비(非) 국산 맥주에 대한 관심과 맥을 함께한다. 해방 후 한국에서 외국 브랜드 맥주가 공식적으로 소비자를 만난 때는 1981년이었다. 동양맥주(오비맥주의 전신)가 하이네켄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하이네켄을 생산하면서부터다. 그 후 1984년 맥주 수입이 개방되면서 수입 맥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수입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던 건 아니다. 예컨대 1960년대에는 미군 부대에서 빼돌린 미국산 캔 맥주가 불법 유통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압구정동 등을 중심으로 '오렌지족'들이 버드와이저나 밀러 병을 들고 서서 마시는 풍경이 신세대 문화로 비치기도 했다. 그 무렵 맥주 애호가들은 서서히 맥주 맛에 눈을 뜨게 된다. 2002년에는 국내에도 이른바 하우스 맥주라고 하는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 파는 펍들이 생겨났다.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토대가 조금씩 마련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억울함을 토로했던 국내 대형 맥주 업체들은 "국산 맥주가 싱겁고 맛이 없다는 인식은 각국 소비자 선호도, 맥주 제조 기법 등을 잘 몰라 생기는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2012년 12월 28일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수입 맥주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맥주 제조 기법 등의 얘기는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국산 맥주에 관한 비판적 인식을 무지의 소산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맥주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국내의 한 맥주업 관계자는 국내 대형 맥주 업체들의 설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습관 때문에 맑고 톡 쏘는 미국식 라거 맥주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도 버드와이저 같은 라거 맥주가 처음 유행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냉장 유통과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였지, 식습관에 따라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냉장 유통과 대량 생산은 시원함과 청량감을 아무 때나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지하게 앉아 맥주 맛을 즐기는 것과 다른 차원의 행위다. 미국인들도 평소 가볍게 분위기를 즐길 때는 버드와이저를 먹지만, 맥주 맛을 즐기고 싶을 때는 크래프트 맥주(소규모 양조장 맥주) 등 다양한 맥주를 소비한다.

두 영역이 다른데, 대형 맥주 회사들은 '우리 맥주가 다른 맥주보다 맛없다고 평가받는 것은 억울하다'고 하면서 이를 취향의 문제로 몰아간다. 인스턴트 맥주는 인스턴트 맥주 스타일대로 즐기는 것일 뿐이다. 소비자는 국산 브랜드 맥주가 맛있어서 즐기는 게 아니다."

국산 브랜드 맥주는 대부분 식당에서 대량 소비된다. 그런 식당에서 소비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별로 없다. 맥주를 정말 즐기려는 사람은 일반 식당에서 마시지 않고 따로 펍이나 바를 찾는다.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크래프트 맥주 중 하나로 분류되는 대동강맥주가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사람들은 오비나 하이트가 더 훌륭한 맥주를 만들 능력이 없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인스턴트 맥주는 인스턴트 맥주의 영역이 따로 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맥주 회사들이 '오버'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덧붙였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논쟁을 정리할 수 있겠다.

국산 맥주의 것은 국산 맥주에게, 대동강맥주의 것은 대동강맥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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