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이야기 ① 대동강맥주 서울 실종 사건…주역은 MB? ② 맥주가 없었으면 피라미드도 없었다? |
오비, 하이트,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칼스버그. 값싸고 시원한 맥주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질려버렸다. 어떤 맥주를 선택할까? 수입 병맥주 코너를 기웃거려도 좋지만, 이럴 때 크래프트 브루어리(Craft Brewery, 전통 방식 양조장)에서 만드는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에 눈을 돌려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른바 프리미엄 맥주 시장으로 불리는 영역이다.
한국의 맥주 시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먼저 브랜드 맥주 시장이다.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 양사는 2013년 2월 현재 출고량 기준으로 전체 맥주 시장의 53.6%, 42.8%를 차지한다. 맥주 시장의 96.4%를 두 거대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수입 맥주 시장은 약 3.3%다. 나머지 0.3%는 뭘까. 크래프트 맥주다.
국내에서는 최근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유명 크래프트 맥주들 수입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펍에서는 한 병에 1만 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애호가들은 즐기는 데 부담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하우스 맥주로 알려졌던 국내산 크래프트 맥주들이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A펍(Pub). 이곳에서는 독특한 이름의 맥주를 판다. 백두산 헤페바이젠(Hefeweizen), 남산 퓨어 필스너(Pure Pilsner), 한라산 골든 에일(Golden Ale), 북한산 페일 에일(Pale Ale), 금강산 다크 에일(Dark Ale), 지리산 인디언 페일 에일(Indian Pale Ale, IPA), 설악산 오트밀 스타우트(Oatmeal Stout). 이들은 경기도 가평에 있는 카파 브루어리에서 직접 만든 크래프트 맥주다. 라이트(light)한 스타일의 천편일률적인 인스턴트 맥주와 달리 다양하고 진한 맛이 일품인 맥주들이다. 도수도 5~6도로, 묵직한 감을 느낄 수 있다.
천편일률적인 인스턴트 맥주와는 차원이 다른 크래프트 맥주
▲ 서울의 한 펍에서 판매하는 '한라산 골든 에일' ⓒ프레시안 |
첫째, 소규모일(Small) 것. 구체적으로 연간 생산량이 7억 리터 이하여야 한다. 참고로 미국 맥주 생산 랭킹 2위인 SAB-밀러의 연간 생산량은 218억 리터다. 사무엘 아담스 맥주 브랜드로 유명한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 랭킹 1위 보스톤 비어의 연간 생산량은 3억 리터다. 이와 달리 한국 오비맥주의 연간 생산량은 13억 리터에 달한다. 크래프트 맥주의 기준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둘째, 독립적일(Independent) 것. 독립 자본으로 경영함을 원칙으로 하며 외부 자본 비율은 25% 미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례로, 크래프트 브루어리였던 시카고의 구스 아일랜드가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버드와이저 맥주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맥주 회사)에 매각된 후, 구스 아일랜드의 맥주는 더 이상 크래프트 맥주로 불리지 않는다.
셋째, 전통적일(Traditional) 것. 즉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제품이 올몰트비어(다른 첨가물 없이 물, 보리, 호프로만 만든 맥주)이거나, 풍미를 위해 첨가물을 넣더라도 그 양이 매우 적은 맥주의 판매 비율 합이 50%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공장에서 최신 공법으로 값싸게 생산돼 대중적으로 널리 팔리는 맥주와 다르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ABA는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정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규정해 놓고 있다.
첫째,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소규모 브루어리다. 둘째,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특징은 혁신에 있다. 전통적인 맥주 스타일을 개성 있게 해석해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개발한다. 셋째, 크래프트 브루어(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사람)는 자선 활동, 기부 및 자원봉사, 행사 스폰서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넷째, 크래프트 브루어는 특색 있는 방식으로 고객을 대하며 고객 하나하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섯째, 크래프트 브루어는 자신들이 만드는 맥주와 경영상 독립에 의해 진실성을 지킨다. 크래프트 맥주가 아닌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
▲ 미국의 대표적인 크래프트 맥주인 사무엘 아담스 ⓒ사무엘 아담스 홈페이지 |
한국에서 고전하는 크래프트 맥주
서울 시내에는 이른바 하우스 맥줏집이 있다. 매크로 브루어리(Macro Brewery, 대형 맥주 양조장)에 대비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 Brewery)로도 불린다. 양조장 겸 펍인 셈이다. 이들 양조장도 넓게 보면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한다고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허가가 났는데, 당시에는 "영업장 내에서 만들고 영업장 내에서 직접 음용하는 고객에게만 판매할 수 있다"는 까다로운 규정이 적용됐다. 외부 반출·판매가 금지됐던 것이다.
강남역 인근에서 헤르젠이라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를 운영했고, 현재 전라북도 순창에 500만 리터 생산 규모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양조장 기공식을 앞두고 있는 장앤크래프트브루어리 장창훈 대표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맥주 관련법 시행으로 맥주 시장이 오비, 하이트 외의 사업자에게 처음 개방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괜찮은 맥주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국에 150곳이 오픈했다. 그런데 사실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독일에서 기술자도 부르고, 기계도 수입해야 한다. 맥주를 만들어 매장에 손님을 꽉 채워 팔아도 버티기 힘들었다. 지금은 40개 정도만 남아 있다. 매장 하나에서 아무리 팔아봐야 수지가 안 맞는다."
이처럼 한국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장앤크래프트브루어리가 순창 물로 만들 계획이라는 순창 맥주뿐만 아니라, 제주도 맥주 제스피도 6월 출시될 예정이다.
외국은 어떤 상황일까. 일본은 한국보다 8년 정도 먼저 법이 바뀌었다. 지금은 200개가 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내놓고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맥주 하면 두 종류의 맥주만 생각나지만, 일본 맥주 하면 수백 가지 맥주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다.
언제까지 한국 맥주는 외국 맥주에 치이고 대동강맥주에 비교를 당해야 하는 걸까. 한국에 수백 가지의 고유 브랜드 맥주가 존재했다면 '한국 맥주는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다음 편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짚어볼 예정이다.)
▲ 맥주 양조장 모습 ⓒ사무엘 아담스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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