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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비리, 회계 제도만 고치면 달라질까?

[복지국가SOCIETY] 보육 문제, 이제 적극적 건강증진으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유치원 원비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거나 성인 용품과 주류를 구매하는 사례들은 그 자체로서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부정 지출된 금액만큼 아이들에게 가야 할 예산들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었다는 뜻이기에 학부모들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버티기?

사실 이번 사안은 당사자인 유치원 원장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촛불 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했음에도 아직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박용진 의원이 개최하는 세미나를 물리력으로 제지하려다가 사건을 키웠고, 이게 국민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만으로도 유치원연합회 관련 지도부가 얼마나 구시대적인 사고 방식과 행동에 매여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너무나 당연한 개혁조차 거부하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회계 비리가 발각된 유치원의 실명 공개를 반대하면서 법원에 명단 공개 취소 가처분 신청을 냈다. 공립 유치원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에듀파인(유치원 전산 회계 시스템)의 사립 유치원 도입을 반대하고, 심지어는 '이런 식으로 압박하면 유치원을 폐원해 버리겠다'고 학부모들을 협박하고 있다. 적당히 협박하면서 시간을 끌면 국민의 비난과 원성이 조용해지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감사 권한이 있는 공무원들에게 골드바를 뇌물로 주거나 지역 정치인들을 압박하여 물 타기와 사건 덮기를 해 왔다고 하더라도, 촛불 혁명을 이루어낸 국민에게 이제 더 이상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통하던 집단적인 실력 행사와 정부 정책에 대한 참여 거부를 통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기 시작한 국민의 분노는 학부모들의 주말 대규모 거리 시위를 통해 적극적 행동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여당인 민주당도 발 빠르게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3법의 당론 발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법안에는 사립 유치원에 주는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명목을 바꿔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원금이 아니라 보조금으로 지급하면 유치원의 부정이 발견될 경우 환수하거나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

유치원만을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 이사장의 경우 유치원장을 겸직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립학교 경영자가 교비 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을 교육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길 예정이다. 보조금 부당 사용 등으로 인해 징계나 중대한 시정 명령을 받은 유치원이 이름만 바꿔 다시 개원할 수 없도록 결격 사유를 명시함으로써 비리 당사자는 관련 업무에서 퇴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또 유치원 운영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를 명확히 회계 프로그램에 기입하는 것도 의무화했다. 민주당이 개별 의원 입법이 아니라 당론으로 발의를 추진하는 이들 3법은 사안의 시급성과 국민들의 분노에 힘 입어 조만간 통과될 것이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발전을 거부하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다.

회계 부정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자, 유치원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에 과일과 식재료 주문이 4배로 늘었다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씁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부모와 국민들의 투쟁의 성과가 직접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 개선'으로 드러나 기분이 좋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은 직접적인 투쟁을 통해 생활 속에서 복지국가를 쟁취하는 훈련을 할 것이고, 이런 승리의 경험은 다른 여러 부문에서도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 지난 21일 오후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비리 유치원 규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사립 유치원 비리 근절과 유아 교육의 공교육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회계 제도만 고치면 유아 교육 서비스 질이 좋아질까?

유치원의 회계가 투명해지고 부정과 비리가 없어지는 것만으로는 유아 교육 서비스와 어린이집의 보육 서비스가 개선되지 않는다. 또한 심각한 저출산 시대는 비리의 근절과 회계 투명화를 넘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가 획기적인 국가 보육 정책을 처음 제안했던 2002년 당시 우리나라의 출생아 숫자는 56만 명이었다. 국가의 육아 지원 정책으로 연간 국비와 지방비가 12조 원이 투입되면서 2004년 2만6903개였던 어린이집은 4만5000개로 늘었다.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아이들만 모을 수 있으면 지원금과 보조금이 나오니, 유치원을 설립한 이후 운영자에게 임대만 해도 수억 원의 보증금에 월 수천만 원의 수입이 보장됐다. 또 어린이집 매매에 아동 한 명 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의 권리금이 공공연하게 시장 가격으로 형성됐던 것도 이번 회계 부정을 계기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올해 출생아는 32만 명으로 예상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 수준이다. 이런 저출산으로 2017년 어린이집 숫자는 4만238개로 지난 4년 동안에만 5000개가 줄었다. 0세부터 5세 아동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먼저 영향을 받기 시작했고, 만 3세부터 취학 전까지 아동이 다니는 유치원의 원아 모집에도 이제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로 국공립 유치원 확충과 공공 어린이집 확대 요구는 더 높아질 것이지만,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 짓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전체 어린이집의 약 50%에 이르는 2만 개 정도의 어린이집이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하고, 유치원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37만 명으로 늘어난 보육교사와 어린이집 종사자들의 대규모 실업이 예견되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이 없고 정치권에서도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앞으로 다가올 대량 실업 사태와 대규모 도산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 앞선다.

아동 당 보육 교사 수를 늘려야 한다. 5세 아동의 경우 OECD 국가의 평균이 아동 5명 당 교사 한 명인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20명까지가 법적으로 허용된다.

복지국가를 위한 유치원과 어린이집 개편 방안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최근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육아 지원 정책을 제시했다. 출생아 수의 감소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인정하고, 이를 국·공립 비율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즉, 기존의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 유치원을 인수하거나 매입해서 공공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관련 기사 : 출생아 감소, 오히려 '보육 혁신' 기회 될 수도)

또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소규모 가정형 어린이집에 대한 대안으로 현재는 제공되고 있지 않은 '가정 보육모' 제도의 확대를 제안했다. 유럽 국가들이 하고 있듯이 집에서 가까운 곳의 보육모가 한두 명의 아동을 맡아 돌봐주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준공무원으로 고용해 가정 보육모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는 제도를 통해 부모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육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10월 17일에는 남인순 의원 및 육아정책연구소와 함께 '지역 사회 양육 및 보건의료기관 협력 체계 구축 방안'을 주제로 국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여기서 보육과 유아 교육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영유아보육법에는 아동에 대한 예방 접종 여부의 확인(제31조 3항), 건강 진단과 질병 발생에 대한 치료와 예방 조치(제32조)만 명기되어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평가인증 사업의 지표에도 청결과 위생(8개 항목), 질병 관리(2항목), 급식과 간식(2항목), 시설 안전(5항목), 영유아의 안전 보호(5항목) 등 소극적인 안전과 질병 관리 부분만 반영되어 있다.

법이 이러하다 보니, 현실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 교사의 연락을 받은 엄마가 회사에서 조퇴를 해야만 한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위한 급식이 따로 제공되지도 못해서 언제 위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고,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나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조기에 발견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아동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맞추어 '교사 대 아동의 수'를 줄여서 양질의 보육과 유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의 육아지원센터나 보육정보센터, 또는 거점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건교사를 추가로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1명의 보건 교사가 5개 정도의 어린이집을 직접 다니면서 손 씻기와 올바른 칫솔질 방법, 식품 5군에 따르는 음식을 골고루 먹기 등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어린이집의 보건의료 문제를 직접 지원하자는 것이다.

출생아의 감소로 이미 생산 가능 인구는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구가 부족해지는 현실을 인정하고, 출생아들이 양질의 인적 자원과 고급 노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재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건강 관리 서비스와 건강증진 서비스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부터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통해 부가적으로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 유치원에 대한 상시적인 외부 감시도 가능해지고, 현재는 생각도 못하고 있는 아토피 아동의 관리에서부터 발달 장애 아동의 조기발견과 치료, 그리고 적극적 보건 교육과 학부모에 대한 육아 상담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 아동 수가 감소하는 만큼 예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용의 유지와 더불어 신규 전문 인력의 추가적 배치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더 제공함으로써 보육과 유아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자.

촛불 혁명은 복지국가의 확대와 더불어 우리 사회 전체의 공공성 강화와 투명화에 대한 요구를 "시대 정신"으로 만들었다. 사립 유치원의 회계 부정 사태는 지금까지 자녀를 볼모로 붙잡히고 있어 말도 못하고 있었던 학부모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비리 근절과 관련된 법안의 국회 통과는 생활 정치의 영역에서 복지국가를 이루어가는 또 하나의 국민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그치지 말고 더 나은 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공시지가 인상되면 건강보험료도 공평하게 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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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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