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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사건을 둘러싼 격렬한 '가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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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심재철 사건을 둘러싼 격렬한 '가짜 싸움'

[김성희의 정치발전소] 우리는 이것을 건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집권 여부를 기준으로 여당과 야당을 구분한다. 여당의 여(與)란 '주다', '돕다'의 뜻이다. 여당이란 '정부를 지지하는 한 무리의 정당', 즉 집권당이란 의미로 쉽게 유추된다. 반면 야당의 야(野)는 '들판', '성 밖'등의 의미다. 흔히 쓰이는 하야(下野)는 정치를 떠난다는 의미다. 통상 정당체제를 구성하는 집권당 이외의 정당이란 말로 야당의 의미는 불명료한 측면이 있다.

야당의 정확한 명칭은 반대당(opposition party)이다. 여당, 즉 집권당(ruling party)과 대를 이룬다. 민주주의를 복수의 정당제도로 정의할 때, 야당은 정부를 반대 또는 비판하고, 동시에 정부를 대체하려고 노력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여야간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내일의 여당인 야당 역시 잠재적인 통치자로서 지위가 확고해졌다. 그만큼 통치의 책임성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야당은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와 비판을 조직함과 동시에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할 통치의 능력과 책임성을 함께 키워나가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야당은 반대당(opposition)이자 대안정부(alternative government)이다.

의회가 민주주의의 제1기관인 이유 중 하나도 집권당에 비판적인 다양한 시민들을 무리지어 대표하는 반대당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입법부가 가진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도 의원 개개인에 속한 재량적 권리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입법부 자체에 부여된 '저항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라 할 수 있다.

심재철 의원에 대한 고소-고발과 압수수색을 보며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을 폭로했고 이 문제는 정부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기재부는 심재철 의원이 국가 기밀을 불법적으로 열람하고 유출했다며 고발했고, 검찰은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현역 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일로 회기 중 의원실을 압수수색 당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정부와 집권당은 "심재철 의원의 국가기밀 탈취사건”이라고 했다. 나는 정말 해킹행위가 있었는지, 얼마나 중요한 국가 안보상의 기밀들이 더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공익적 기준에 비춰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집행부의 예산 집행 내역을 공개하고 비판한 행위는 반대당으로서 기본적인 책무에 속한다. 일부에서는 심재철 의원의 과거 행적과 이번 일을 다루는 방식 등을 문제 삼아 그의 행위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원 개인에 대한 도덕적 선호가 정치적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재부가 심 의원을 고소-고발하고 검찰이 의원실을 압수수색한 것도 의원 개인 문제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정부를 견제․감시하는 의원의 권한과 역할은 의원 개개인에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입법부 전체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자료 입수 과정에 중대한 위법이 있고, 수사가 불가피하더라도 이는 우선적으로 사법이 아니라 정치과정에서 다뤄졌어야 한다. 입법부의 권한과 지위에 관한 '민주적 질서'의 문제가 정치적 토론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훼손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동연 부총리만큼 나도 청와대 식구들이 무엇을 먹고 어느 단골집을 이용하는지 등이 포함된 기밀유출로 혹시나 국가안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나 앞으로 행정 권력의 독단이나 강압정치가 나타날 때,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할 입법부 권한과 지위가 관료적 논리와 편의에 의해 쉽게 흔들리게 되는 것은 더 두렵다. 한번 흔들린 지위는 더 쉽게, 더 자주 무너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보고 있다.

때때로 정치는 법조차 침묵시킨다.

추석 직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과거 삼성 X파일을 공개하고 이로 인해 의원직을 잃었던 사례를 들어 "방법과 수단의 적법이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며 "심재철 의원이 자료 접근의 합법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보기)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법을 만드는 의원으로서 법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 것이다. 옳은 말이지만 그러나 정치에는 그가 말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정치에는 다른 전통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 삼성 X파일 문제로 의원직을 잃게 된 노회찬 의원의 강연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회 말미에 한 참여자가 물었다. "(X파일 공개로 의원직을 상실한 것에 대해)후회하지 않느냐,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래전 일이라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노 의원의 답변 요지는 "후회된다면 삼성문제를 더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확실하게 하지 않을까"였다. 노 의원은 삼성 X파일이 적법성에 문제가 있고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적법성과 위험성을 고려해 X파일에 침묵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다루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법의 제약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삼성 X파일을 공개했다.

문제는 노 의원이 의원직을 걸고 제기했던 삼성과 권력의 유착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반면, 당시 정치과정은 자료 공개의 실정법 위반 문제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가리키는 달 보다는 그 손에 묻은 흠집에 더 열중했던 셈이다.

몇 년 뒤 견제되지 않았던 삼성과 권력의 유착 문제는 결국 임기 중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사적 비극으로 이어졌다. 우리 정치가 X파일 문제의 절차적 합법성을 따지는 데 기울였던 관심의 일부를 노 의원이 지적하고자 했던 삼성과 권력의 유착 문제를 다루는 데 썼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정치는 법 이상의 일이다. 때로는 법, 나아가 헌법조차 침묵시킨다. 정치는 공익적 기준에 입각해, 설사 법을 어기고 국가 기밀을 공개하더라도 그 사회적 편익이 법을 지켜 침묵하는 것보다 크다면, 때로는 법을 넘어서는 결정과 행위를 '해야만 하는' 특별한 영역이다. 노회찬 의원 사례는 법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정치인의 책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개가인 남북관계가 그렇다. 북한은 단순히 법에 의존할 경우, 헌법상 미수복지역에서 국가를 참칭하는 괴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국가의 수반으로 회담할 수 있는 것도 법이 아니라 정치가 가진 책임성을 기반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한 것이다.

가짜 뉴스보다 가짜 싸움의 해악이 더 크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정파적 배경을 가지고 실제가 아니라 '카더라'에 기초를 두고 음모론을 부추기는, 이른바 B급 뉴스라는 '가짜 뉴스' 문제가 있었고, 그 해악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가짜 뉴스의 피해는 선별적인 반면 실제를 다루지 않는 정치의 '가짜 싸움'은 그 해악이 보편적이다. 정치적 싸움의 결과는 법과 규범으로 시민에게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영향을 준다. 또 정치가 실제로 다뤄야할 중대 이슈를 피하고 변죽만 울린다면, 정치로 시민의 삶이 개선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가짜 뉴스의 해악을 지적한다면, 가짜 싸움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정치의 중심 문제인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나 '시민의 사회경제적 이익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도 그랬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정부는 의회, 야당에 대해 시종일관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1차 정당회담 당시, "왜 야당 대표는 오지 않았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한 쪽은 북한이었다. 3차 회담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장이 프레스룸에서 야당 정치지도자들에게 '쿨'하게 초대장을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처럼 사회경제적 이익의 진퇴 문제, 즉 진지하고 치열한 싸움이 필요한 문제는 여야가 쿨하게 손을 잡고 사회적 합의과정을 건너뛰었다. 중요한 문제들이 상응하는 무게감과 책임성을 갖고 "진짜로" 다뤄지지 못했다.

심재철 의원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은 격렬할지는 몰라도 이 역시 진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정부가 진짜 국가기밀의 유출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이를 해결하려 했다면, 싸우는 방식이 달라졌어야 한다. 문제 해결이 절실한 정부와 여당이라면 입법부 전체와 제1야당을 부정의한 범죄자 취급하면서 사법부와 여론을 동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좋은 해결책이 정치에 있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었다. 우선 집권 초에 잘할 수 있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한 야당은 인수위도 없이 어렵게 출범하는 정부라는 것을 이해했다. 정부 준비에 필요한 시간과 돈에 대해 야당에게 요청하고 입법부의 동의를 구했으면, 당시 이를 마다할 정당은 없었을 것이다. 입법을 통해서건 정치적 양해를 통해서건 예산 집행의 편법 여부가 논란이 될 만한 이런 문제쯤은 충분히 해결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심재철 의원의 폭로가 있은 후에도 의회에서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다면 상황은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 운영위를 통해 집행내역을 따져 청와대가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피치 못했던 것은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었다.

야당도 잠재적인 통치자이다. 공개 되서는 안 될 중요한 기밀이 있다면 타협을 통해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청와대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묶어두고 있는 불필요한 제한도 조정될 수 있었으며, 청와대 권력독점 문제도 입법적 해결책을 찾았을 수 있었다.

길을 찾고자 한다면 정치는 더 지혜로운 해결책을 산출할 수 있다. 입법부의 권위를 흔들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까지 훼손하면서 싸우고 공박해야할 일이 아니었다. 정치가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사법화하는 것은 소란스러울 뿐, 문제의 '진짜' 해결은 요원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이번 일이 과연 청와대 문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도한 정부 대응을 불러왔겠는가라는 의문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2년째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적폐청산', '직접민주주의', '기무사 문제', '남북관계' 등 거의 대부분의 정치쟁점은 예외 없이 청와대 발이었다. 청와대가 정치의 중심에서 정치 의제와 기준을 제시하는 정치. 청와대의 '하교'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정부와 집권당, 그리고 이에 대한 도전은 격렬한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아마 우리의 정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묘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청와대를 빼고 정치를 말할 수 없다면, 청와대를 중심으로한 싸움이 정치가 다뤄야할 실제 과제를 잠식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과연 건강한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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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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