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미국 행정부에서 조선과 직접 협상을 하였거나 조선에 관한 일을 다루었던 전직 관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한 것은 폼페이오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진단했다.
필자도 이들의 진단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핵화'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비핵화'는 조선의 핵무기를 완벽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과 미국은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 할 때 항상 'Denuclearization'과 함께 'of Korean Peninsula'도 같이 적시했다. 즉 비핵화란 조선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를 뜻한다.
한반도 비핵화란 일방적인 조선의 비핵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측에서도 한반도에서의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을 단지 쉬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에서 완패한 패자에게만 요구 될 수 있는 CVID는 조선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다.
CVID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약속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협상과 거래의 대가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강요하기 위해 싱가포르까지 가서 세기적인 만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전시상황(아직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상황)임을 고려할 때,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쪽에서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상대방에서 거기에 호응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대가를 지불해야 해야 하며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보다 높은 단계 협상거래로 넘어가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모두 4항으로 이루어진 김정은-트럼프 싱가포르 합의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 전문 보기)
당시 합의문은 실행 순서대로 기재된 것이 아니라, 중요도의 순서대로 기재됐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 1항은 조선과 미국 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조선과 미국 정상 간에 약속한 것이며 이것이 조선과 미국 정상 간의 합의된 조·미관계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이라고 명시한 2항은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평화조약을 조선과 미국 그리고 이해당사자인 한국과 이해 공유자인 중국 간에 맺는 것을 의미한다.
3항에서는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 (이하 판문점 선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들어 있는가? (☞ 전문 보기)
흔히들 북한의 비핵화 또는 북핵 CVID의 절차(process)로 인식되어 있는 싱가포르 합의문 3항은 통상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민족공조에 의한 자주적인 통일, 상대방 (한국과 조선)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금지,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위해 남북 공동의 노력을 경주(傾注)하자"는 것으로써 여기에 대한 조선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재차 강구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조선의 일방적인 비핵화 또는 CVID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조선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위의 싱가포르 합의문에 명시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사항들에 대해서도 최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을 9월 중 초청한 것에서 보는 것과 같이 조선 측에서 실천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논의된 적도 없고 따라서 합의문에 조차 없는 CVID 또는 FFVD (Final, Fully Verifiable Denuclearization)를 요구하고 있다. 혹자는 CVID와 FFVD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나 어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의미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조선과 합의하지도 않은 CVID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독특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및 거래의 방식(style)과 트럼프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미국 관료집단의 관성,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힘의 한계성이 뒤섞여 일정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조미 싱가포르 회담은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과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면 핵 전쟁을 운운했던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마주앉아 평화와 번영을 향해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필자는 지난 5월 28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북한을 둘러싼 미국-중국의 줄다리기 시작됐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중국이 조선의 생명 줄을 쥐고 있다고 주장하고 조언하는 소위 '북한전문가'들을 따라 중국에게 조선에 대한 제재압박을 요구하였던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조선은 우리의 말도 잘 듣지 않을 뿐더러 조·중 관계가 주종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북핵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 그리고 미국의 최고 지도자인 트럼프 입장에서 가장 경계하고 견제해야 할 국가가 중국인데 중국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라가 조선이며, 조선이 궁극적으로 핵을 개발하는 이유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의 관계정상화 요구를 들어주고 조선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훨씬 더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사업을 하면서 적을 아군으로 만들고 경쟁자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굴복시키는 트럼프로서 아마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이 문제를 푸는데 가장 고질적인 병이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북한 문제'에 대한 무지(無知)를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트럼프가 조선(North Korea)과 김정은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알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North Korea와 South Korea를 구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이후인 지난 6월 14일 발표된 허프포스트/유고브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미 정상회담에 대해 설문에 응답한 미국인 중 61%가 찬성을, 21%가 반대를 표했다. 같은 날 발표된 먼마우스 대학교 조사에서는 미국인 71%가 회담에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는데 큰 문제가 없어야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가 트럼프기업(The Trump Organization)의 회장으로서 즉, 기업의 총수로서 김정은과 합의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의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다.
미국은 삼권분립(Division of Power)이 명확할 뿐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각 부처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나라이다. 싱가포르 조미 합의문 제1항에서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라고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 재무성은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북한에 취해진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며 이들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취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단독으로 두 차례 만나서 그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며 트럼프의 복심이라고까지 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조차 국무성이 일관적이며 전통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조선 핵에 대한 'CVID' 또는 'FFVD' 요구를 꺾지 못하고, 도리어 국무성을 대변하여 조선에 CVID를 강요했다.
조선은 여기에 대해 <메아리>라는 매체를 통해 "공화국이 누차 강조해왔듯이 미국의 강도적인 선비핵화와 대조선 제재는 악랄한 반공화국 압살책동의 일환으로서 우리에게 절대로 통할 수 없다"며 "상대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고 정세변화도 잘 감수할 줄 모르고 헤덤비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책 작성자들이 대조선 제재의 득실관계를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세계 앞에서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의 정신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미 행정부의 신뢰도가 나날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으며, 주변국들도 미국의 강압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제재조치가 현 조선반도 정세흐름에 도움이 되지 않아 그 후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역사적인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자신의 의중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를 다음과 같이 알리고 설명하였다.
"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우리가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또한, 중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우리의 입장이 매우 강경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중국)은 (과거의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과 무역 갈등이 해결된 후에 빠른 시일 안에 조선에 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김 위원장에게 훈훈한 안부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나는 그를 곧 만날 것을 고대한다!"
트럼프가 폼페이오의 방북 하루 전에 이를 취소시킨 것을 두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안개속에 빠졌다는'는 등 부정적인 견해가 분분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번 트웟은 매우 우회적으로 자신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알리고 두 번째로 좋은 것 (second best)을 기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는 위의 트윗에서 "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우리가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위의 트윗에서 분명히 '우리'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는 '미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한 합의를 이행하는 데에서 미국이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예전처럼 한반도의 비핵화 과정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폼페이오가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해결되면 다시 조선을 방문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미·중 무역 갈등은 갈등을 넘어 전면전(all-out war)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19년 중반께나 이 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들의 예측이 맞다면 폼페이오의 방북은 적어도 앞으로 일 년 후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미국 측에서 긴 시간동안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싱가포르 합의문을 미국 측에서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다시 조선과 미국은 무력충돌 또는 핵전쟁으로 가는 것일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은 핵 실험장을 폐기하였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능력 또한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과 여전히 전쟁 중인 미국에게는 매우 큰 위협이며 이러한 위협이 해소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미국은 조선을 선제공격하는 등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서 안타깝지만, 중국이 조선과 협력적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묵인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용인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조선에서 이른바 '구구절'이라고 하는 오는 9월 9일 조선로동당 창건일 축하행사에 초청받아 조선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조선 방문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올해 들어 불과 3개월 만에 세 번의 만남을 가졌으며 조·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6월 19일 회담에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국제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조·중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확고한 입장과 조선 인민에 대한 우호,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위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즉 조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여기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확고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경제적인 지지를 뜻한다.
결국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서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조선에 대한 경제지원, 협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가 대 전망 (National Grand Vision)이라고 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일대일로의 동쪽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을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조선로동당 창건일인 구구절에 조선을 방문하는 것은 시-김 3차 회담에서 시 주석이 국제관계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조·중관계의 밀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미중 간에 무역 분쟁이 해결된 이후에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조선을 방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결국 과거 서방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마지막으로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한 것과 같이 (아쉽지만) 조선과도 (중국보다는) 한 발자국 늦게 협력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트윗의 요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미국전반의 처지는 이렇지만, 즉 아직까지도 미국은 반(反)조선적이지만 자신은 김 위원장과 약속은 지키고 싶다는 의지를 자신의 트윗 마지막에 표현했다. (In the meantime I would like to send my warmest regards and respect to Chairman Kim. I look forward to seeing him soon!).
중국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칠 수 없는 조선으로서 매우 심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의 국제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결코 조선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과거 중·소 갈등 (The Sino-Soviet Conflict)에서 그렇게 하였듯이 미·중 (US-China)이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중·소 갈등시대와 다른 점은 조선의 갖고 있는 축의 무게가 중소갈등 시대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여, 조선은 수세적이거나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반도의 정세가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등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이 아무리 조선을 경제적으로 압박한다고 하여도 중국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중국은 조선 무역 총액의 약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도 조선 경제에 큰 레버리지를 갖고 있지 않다. 조선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선 국가(또는 국민)총수입 (National Income)의 20%가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의 경제제재가 유명무실화되고 조중간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조·미간의 정전이 종전으로 매듭지어 지고 평화조약이 채결되지 않았어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실질적(de facto) 평화가 정착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한국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시점을 조절하겠다는 매우 비주체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판문점 선언에서 한국에서 주동적으로 실현한 것은 아직까지 전무하다.
판문점 선언 제1항에는 분명히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여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하였으나, 한국은 문제인 대통령의 방북의 일정까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에나 미국의 말을 듣고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정의하는 '자주통일'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근혜' 적폐 정권을 촛불의 함성과 대오로 물리치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에게 묻고 싶다. 매우 취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취해진 5.24조치는 왜 철폐되지 않는가? 국정농단의 주역이라는 한 여인의 한 마디에 의해 폐쇄됐다는 개성공단은 왜 재개되지 않는가?
최근 미국과 터키의 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터키의 모습은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은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있는 터키 내 소수민족 쿠르드 조직을 지원한 혐의로 가택 연금돼 있는 미국인 브런슨 목사의 석방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터키는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브런슨 목사의 재판을 오는 10월에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터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브런슨 목사를 매우 불공정하게, 매우 나쁘게 다루고 있다. 우리 행정부는 결코 이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터키가 미국산 자동차·쌀·주류 등에 최대 140%의 보복관세를 부과한 결정에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은 8월 10일 터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기습적으로 2배 인상했다. 이에 따라 터키 리라화 가치는 하루 만에 18%, 연초 대비 45% 폭락하였으며 터키는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외환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동맹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굴복' 대신 '항전'으로 미국에 대항하고 있다.
여기서 터키가 동맹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을 두고 혹자는 러시아가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는데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을 사 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밖에 없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이 가장 경계하고 견제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만약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경고와 같이 터키가 동맹을 미국에서 다른 나라(중국)으로 바꾼다면 미국으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지정학적(geopolitically)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터키가 실제로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동맹을 바꾼다면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지키기 어려워지며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에르도안은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초강대국인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엄포를 놓으며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게 다시 묻고 싶다. 판문점 선언의 실천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 회담의 합의문에도 명시되어 있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는가? 민족공조는 단지 허울 좋은 정치적 수사(修辭)였을 뿐인가? 무엇이 민족과 한국의 이익이 되는지 직시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이제 한국이 나설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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