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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통행증, '학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학벌지상주의, 어떻게 해결하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통행증, '학벌'

한국은 유난히도 노동시장에서 불평등이 심한 나라이다. 국세청에서 발표한 2016년도 근로소득 자료를 보면 근로자의 절반은 월 소득이 200만 원 미만이었고, 10명 중 3명은 당시 최저임금 수준인 126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고 있었다. 반면 상위 1% 근로자의 월 소득은 2031만 원, 상위 10%는 899만 원이었다.(헤럴드경제, 2018.4.8.) 생계를 유지하기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반면, 최상위 10% 근로자들은 연봉 1억 원 이상의 소득을 벌고 있다.

불평등한 노동시장 구조 하에서 상위층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이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신호’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좋은 학벌을 갖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명문대 졸업장은 그 사람의 능력을 보증해주는 신호이자,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증해주는 증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 저러한 자료들을 통해 우리의 직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6년 10월 기준 ‘고위공무원단’ 1411명 중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은 780명으로 전체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48%에 비해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이 2016년도에 신규 임용한 경력 법관 가운데 84%, 20대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 가운데 48%가 이 3개 대학 학부 출신자들이다. 또 500대 기업 최고 경영자의 절반이 이 3개 대학을 나왔고(2015년 기준), 4년제 대학 총장의 30% 이상이 서울대 졸업자다(2009년 기준). (한겨레신문, 2016.11.3.) 기업들이 신규사원 채용 시 지원자의 학벌을 중요시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채용비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시중은행들에서 SKY 대학 출신자를 선발하기 위해 점수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적나라한 모습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13년 신입 행원 채용의 실무 면접에서 합격권 점수를 받은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 6명을 탈락시키고 불합격권이던 다른 특정대학 출신 지원자 6명을 대신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은 2016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11명의 합격자를 뒤바꾸었다.(한겨레신문, 2018.6.17.) 어찌 하나은행뿐이겠는가. 신입사원 채용 시에만 학벌이 중요하겠는가.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학벌 사회의 한 조각이 드러난 것일 수 있다. 이러니 사람들은 학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4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학벌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은 좋은 일자리, 높은 임금, 행복한 결혼 생활 등 인생의 주요 변곡점마다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됐다.(한국일보, 2014.12.8.)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전문적인 능력을 향상을 위해 학습하는 장소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는 그 사람의 노동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와 사회적으로 어떠한 대우를 받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벽의 좁은 문을 통과하여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학벌을 가져야 한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왜 그래야 하는지 더욱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자녀만큼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장벽 안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하고, 이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 수능 1점 차이로 대학 당락이 결정되고 인생이 바뀌는 현실에서, 대학 입학시험의 기준이 어떻게 정해지는가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다. 대학입시에서 수능과 내신의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혹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채점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평가로 채점할 것인지, 어찌 보면 이처럼 단순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전직 대법관까지 위원장으로 모셔서 치열하게 논의를 해야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든 지원자들의 성적이 우수하다고 한들, 그리고 대학입시의 기준이 어떻게 바뀐다고 한들, 명문대 입학 자격이라는 ‘포상’은 한정된 소수의 학생에게만 주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적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상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치열한 순위 경쟁에서 승리해서 명문대 입학이라는 학벌을 거머쥐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학생들일까?
누가 성공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학생들의 학업성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의 가정배경이다. 1966년에 발표된 미국의 ‘콜만 보고서(Coleman Report)’는 학업성적 격차의 원인을 분석한 고전적인 연구다. 4000개 학교의 60여만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증분석을 실시한 결과 흑인 학생은 백인 학생에 비해 학업성적이 뒤쳐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어린 시절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Coleman et al., 1966)

엔트위슬(Entwisle) 등이 주장하는 ‘수도꼭지 이론(faucet theory)’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들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학기 중에는 가정환경이 좋은 학생이나 어려운 학생이나 학업성적의 향상이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방학이 지나고 나면 가정환경에 따라 성적 향상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Entwisle et al., 1997) 모든 학생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교육 자원이 고르게 제공되는 학기 중에는 누구나 학업성적 향상을 이룰 수 있다. 반면 방학이 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교육의 수도꼭지가 잠기게 된다. 가정에서 제공되는 교육 자원은 빈약하고, 좋지 못한 이웃의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에 반해 가정환경이 좋은 학생들에게는 가정에서 제공되는 교육 자원의 수도꼭지가 방학 기간에도 열려 있고, 이 기간 동안에도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방학기간을 경과하면서 가정환경에 따른 학생들 간 학업성적의 격차는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생들의 교육성과에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연구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정환경이 학생들의 학업성적에 미치는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방학기간은 물론 학기 중에도 학교에서 제공되는 공교육 외에 학원이나 과외 등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도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OECD 국가의 만 15세(중2)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 3년마다 학업성취도 측정을 하고 있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Assessment) 조사에서 학생들의 학습시간에 관한 자료를 보면, 한국 청소년의 주당 학습시간은 49.4시간으로 다른 국가 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긴 ‘장시간 학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학교 밖에서 사교육을 받는데 사용한 시간은 4.7시간으로, 이 역시 조사대상 국가들 중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학생들의 평균 주당 사교육시간은 1.1시간이었다.

한국의 사교육은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느 나라나 가정형편이 좋을수록 자녀의 사교육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를 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두 변수 간의 상관성이 높다. 학업성적이 높을수록 사교육시간이 길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유독 강하게 관찰되는 특이한 현상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교육이 학업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이 이를 보충하기 위한 ‘치료전략(remedial strategy)’ 차원에서 이용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성적을 더 높이기 위한 ‘강화전략(enrichment strategy)’ 차원에서 사교육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방학 기간은 물론 학기 중에도 학교 외에 가정의 수도꼭지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교육자원의 양이 막대하다.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일수록 학업성적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그런 학생일수록 사교육도 더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정환경의 차이가 자녀의 학업성적에 미치는 효과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음을 시사해준다.

한국에서 가정환경이 좋은 학생일수록 교육성과도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는 무척 많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고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학 성적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며(Byun and Kim, 2010), 4년제 대학 진학률도 높아지고(구인회·김정은, 2015; 김영철, 2011), 수능 성적도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최필선·민인식, 2015). 서울대 진학 확률도 높아진다(김세직, 2014; 김세직 외, 2015).

학벌에 따른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사회 전반의 차별이 극심한 상황에서 자녀의 교육에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 구조, 이로 인해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고 이에 대한 투자 정도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한국에서 명문대에 진학하여 장벽을 넘어서는 것은 학생 본인의 노력 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처한 가정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장벽을 올라가는 사다리는 사람마다 다르게 놓여 있다.

부채질하기 바빴던 정부 정책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사회적 불평등 정도가 심하고 사교육의 영향으로 가정환경이 자녀의 교육성과에 미치는 효과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정부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왔을까? 물론 해방 이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육을 급속히 확대시키고, 1970년대에는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를 통해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학원과 과외 금지 조치를 통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교육을 통제하려고 시도했다. 당시의 상황에서 의미 있는 정책들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소위 ‘수월성 교육’이 강조되면서,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독자적인 학생선발권을 갖는 과학고나 외고와 같은 엘리트 고등학교가 설립되고, 급기야 MB시절에는 자사고가 대규모로 인가를 받음으로써 고등학교 단계 평준화 제도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2000년 과외금지 조치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은 이후 정부는 사교육 확대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거의 포기한 상황이다. 대학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만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설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까지는 학교 교육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양호한 상황이다. 대학부터는 교육이 시장에 거의 방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4년제 일반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중 국립대학 재학생의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의 경우 국립대학 재학생 비율은 겨우 2%에 머물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OECD 국가의 평균적인 국립대학 재학생 비율은 일반대학 85%, 전문대학 80% 수준이다. 대학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맡기는 것은 발전된 국가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

대학 교육을 국가가 아닌 시장이 담당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걸까? 국립대학 체제에서는 대학마다 거의 균질적인 교육이 제공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립대학의 경우 재단의 특성에 따라 대학마다 교육여건이 다르고 교육의 질이 차별적일 가능성이 높다.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인데 학교마다 교육여건이 서로 다를 수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평판이 좋아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일수록 교육의 질도 높은 경향이 있다면, 이 문제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음 그림은 우리나라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각 대학의 입학성적(경상계열 학과의 수능등급)과 해당 대학의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의 로그값을 도표화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수능등급이 낮을수록, 즉 입학성적이 높은 대학일수록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증가하는 추세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사교육의 영향 등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일수록 학업성적이 높고, 이로 인해 우수한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면 교육투자도 더 높아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학 단계에서도 능력 향상의 불평등은 더욱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이 그림은 시사해준다.

< 대학 입학성적과 학생 1인당 교육비 간의 상관성 >
주: X축은 각 대학의 경상계열 학과의 수능등급, Y축은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의 로그값
자료: 남기곤(2017)

사실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건 정부다. 사립대학들 간 교육비 격차가 나타나게 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정부의 재정지원 정책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교육부가 각 대학에 지급하는 재정지원액은 1조5000억 원에 달하는데, 대부분의 지원액은 소위 ‘선택과 집중’ 방식에 따라 배정이 이루어진다. 지원 사업에 신청한 대학들 중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대학에 예산이 지원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미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대학에 정부의 재정지원도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대학일수록 기본적으로 교육여건이 더 좋은데, 정부는 이러한 대학에 더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 온 것이다. 대학 간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채질하기 바쁜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희망은 없을까?

자유 경쟁 체제 하에서 어느 정도의 노동시장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누구나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 또한 통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쟁에서 가정형편이 좋을수록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장기적인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동질적인 교육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완전히 관련성이 없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부모의 영향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정부는 이미 교육성과가 우수한 학생들에게 교육투자가 집중되는 지금의 역진적 투자 행태부터 시정할 필요가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에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집결하고, 상대적으로 보다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입학성적이 좋은 대학일수록 교육여건도 더 양호해지는 현재의 대학 구조와 이를 부추기는 정부 정책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학생들에게 정부가 동일한 수준의 균질적인 교육 투자를 실시한다고 해서 교육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다리는 이미 비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차별시정 정책(affirmative action)’이 불가피하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학업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의 성과를 끌어 올릴 수 있도록 이 부문에 보다 많은 자원이 배분되고 정책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 방안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뚤어진 사다리에 막혀 있는 학생들을 보다 빠른 우회로로 인도하고, 기초 학습 부족으로 좌절하는 학생에게 어느 단계에서나 ‘제2의 기회(second chance)’가 제공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개혁 대상은 대학이다.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노동시장 성과를 결정해 버리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어느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대학에 재학한 기간 동안 본인이 노력한 정도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쟁은 대학 입학 단계가 아니라 대학 진학 이후에 치열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학 간 교육여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학’ 보다는 ‘졸업’이 어려운 평가 방식의 도입 또한 필요하다.
하위 성적 계층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전문대학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편도 시급하다. 사실 2~3년 이후부터는 대학 입학생이 대폭적으로 감소될 예정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전문대학들이 입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전문대학 교육의 방향 전환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나의 대안은 전문대학을 미국의 커뮤니티 컬리지처럼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을 전담하는 교육·훈련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누구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양질의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이를 전문대학이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물론 이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받아 교육비용을 충당하는 지금과 같은 사립의 구조로는 불가능할 수 있다. 현재 2% 수준인 전문대학의 국공립 비율을 적어도 OECD 평균 수준인 80%대로 증가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하위 성적 계층 학생들의 능력 향상에 보다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특히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의 내실화가 시급하다. 실업계고에서 전문화고로, 그리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로 고등학교 명칭만 바꾸는 정책에서 탈피하여, 이들의 실제 기초 역량을 향상시키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정부들에서 추진되어 왔던 선취업-후진학 시스템이 과연 이들의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남기곤, 2018)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학교가 평준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 하위 서열의 학교에는 주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집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학교일수록 보다 우수한 교사를 투입하고 양질의 교육여건을 만들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엄격한 평가와 치밀한 관리를 통해 학생들의 능력 향상이 극대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뒤떨어진 학생들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상향평준화'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교육정책의 방향이라 믿는다.

<참고문헌>
구인회·김정은(2015), 「대학 진학에서의 계층 격차: 가족 소득의 역할」, 『사회복지정책』, 42(3), 27-49.
김세직(2014),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 『경제논집』, 53(1), 3-20.
김세직·류근관·손석준(2015),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 『경제논집』, 54(2), 357-383.
김영철(2011), 『고등교육 진학 단계에서의 기회 형평성 제고 방안』, 한국개발연구원.
남기곤(2008), 「사교육시간과 학업성적과의 관련성: PISA 자료를 이용한 국제비교 분석」, 『한국경제학보』, 15(1), 55-90.
남기곤(2017), 「교육 불평등의 현실과 정책 대안」,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편,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경제정책』, 한울.
남기곤(2018), 「‘제2의 기회’가 열려 있는 교육 시스템」, 다른백년 편집부 편, 『한국보고서』, 다른백년.
최필선·민인식(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연구』, 22(3), 31-56.

Byun, Sooyong and Kyungkeun Kim(2010). “Educational Inequality in South Korea: The Widening Socioeconomic Gap in Student Achievement,” Research in Sociology of Education, 17, 155~182.
Coleman, James S., Ernest Q. Campbell, Charles J. Hobson, James McPartland, Alexander Mood, F. D. Weinfeld, and R. L. York(1966).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Entwisle, Doris R., Kark L. Alexander, and Linda Steffel Olson(1997). Children, Schools, and Inequality. Boulder, Colorado: Westview Press.
OECD(2013), Education at a Gla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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