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은 방송의 날이었다. 한국방송협회가 주관하는 63회 방송의 날 행사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방송의 날이 행사에 초대된 사람들만 자축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제로 방송을 만드는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날이기를 바랐다.
방송의 날에 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출근하지 않는다. 단체협약상 유급휴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채우는 프리랜서 비정규직은 유급휴일이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 어렵다. 정규직이 쉬는 날 출근했다가 불 꺼진 사무실을 마주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해마다 들려온다. 그래서 방송의 날은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서글픈 날이다.
우리는 서울드래곤시티 방송의 날 행사장 앞에서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외쳤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건물을 나와 걸어가는 중 경찰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이에 불응하자 공무집행방해라며 12명을 연행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경찰의 폭력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함께 있던 동료를 바닥에 내리꽂고 무릎으로 목을 조르며 수갑을 채웠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또한 경찰은 고통을 호소하며 구급차를 기다리던 그에게 "쇼한다"고 말하며 조롱했다.
경찰의 폭력을 보며 방송사가 수십 년째 가하고 있는 폭력과 차별에 대해 생각했다.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구조적 폭력은 갑자기 달려들어 무릎으로 목을 조른 물리적 폭력만큼 잔혹하다.
연출, 촬영, 편집, 기획, 음향, 미술, 작가, 아나운서 등 수많은 직군의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권리를 빼앗긴 채 일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쉽게 쓰다 버리려고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최저임금, 연차, 퇴직금, 4대 보험 등 기본적인 노동권에서 배제되어 왔다.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개편 시즌이 오면 아무런 예고도 보상도 없이 내쫓기는 일이 관행처럼 반복되었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괴롭힘과 보복이 따라왔다.
한 방송사에서 5년을 일해도, 10년을 일해도 마찬가지였다. 불법 부당한 일들을 시정하라고 했더니, 반성하기는커녕 2년이 되기 전에 다 잘라버리고, 그게 회사 방침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방송 현장의 잔혹사는 이렇게 수십 년을 이어왔다.
우리가 만난 수많은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너무나 소진되어 있었다. 방송이 좋아서,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버텼지만, 불안한 일상과 노동, 공기처럼 흐르는 위계와 차별을 견디지 못한 채 방송 현장을 떠나가기도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2025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직업만족도 관련 가장 만족하는 항목 1위는 '성취감'이었는데 만족하지 않는 항목들은 '복리후생' '작업환경의 안정성' '고용의 안정성'이었다. 2021년 같은 실태조사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내 분야에서 가치 있는 일들을 이루어왔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 하는 일로 인해 완전히 탈진되었다고 느낀다'고도 했다.
누구보다 방송을 사랑했고, 자기 일에 열심이었으며, 힘들지만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었던 이들에게 돌아온 건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당한 일에 항의할 통로를 차단해 온 구조적 폭력이었다.
그래서 목소리 냈다. 근로기준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안전장치 없이 낭떠러지에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프리랜서들의 간절한 요구를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이렇게 인권유린과 폭력을 당할 일인가? 수십 년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를 지워왔던 방송사의 폭력, 그 목소리를 지우려 목을 짓누른 공권력의 폭력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해당 경찰에 대한 징계, 용산경찰서장의 사과가 필요하다. 용산경찰서가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개탄스럽다. 한국방송협회가 기자회견을 진행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뒤늦게 전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방송사의 구조적 폭력은 오랜 시간 아무 제지 없이 유지되어 왔는가? 그리고 왜 그 침묵을 깨려는 목소리는 물리적 폭력으로 돌아와야 했는가? 방송사들이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고용구조를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며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경찰도 폭력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모든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것이다. 오는 12일 노동법 밖 노동자들의 1차 행진이 열린다. 노동법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 이주노동자가 함께 목소리 내며 세상을 바꿔나갈 행진에 함께 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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