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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노무현의 고뇌를 반복할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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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호르무즈 파병? 노무현의 고뇌를 반복할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원동욱의 외교광장] 호르무즈 파병과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

이재명 대통령이 호르무즈 파병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는 "아직 진척된 것은 없다"며 파병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부와 군에서는 P-8A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폭발물처리 전력 등 구체적인 자산이 거론된다. 미국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이 중동에 자원을 전개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기다린다는 말이지만, 사실상 결정을 재촉하는 압박이다.

이 대통령이 처한 곤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불참을 거듭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는데 한국은 왜 이란 작전을 돕지 않느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억해 두겠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이어졌다. 동맹국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목해 부채의식을 자극하고, 다른 통상·안보 현안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심는 전형적인 거래식 압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적 현실주의자다. 명분만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보다 손익과 가능성을 따지는 사람이다. 정면충돌보다 실익 있는 타협을 선호하고, 불리한 힘의 관계에서는 일단 충격을 피한 뒤 기회를 모색하는 판단에 익숙하다. 호르무즈 문제에서도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파병을 거부했다가 트럼프의 보복을 불러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통상협상이나 방위비, 전작권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반대로 파병하면 지지층과 민주개혁 진영이 반발하고 정부의 평화외교 원칙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투함 대신 초계기와 군수지원함을 보내고, '전쟁 참여'가 아니라 '항행안전 기여'라고 설명하면 양쪽을 모두 달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심리를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사용하는 언어와 검토 중인 선택지를 보면, 대통령이 '전면 거부'와 '직접 참전' 사이에서 '제한적 군사기여'라는 절충점을 찾고 있다는 추론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바로 그 절충이 과연 안전한가 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을 떠올린다. 보수 정치권은 "노무현도 파병했다"며 이재명 대통령을 압박한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서희·제마부대를 파견했고, 이어 2004년 자이툰부대를 추가 파병했다.

그러나 "노무현도 했으니 이재명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적 맥락을 지운 폭력적인 단순화다.

2003년의 대한민국은 지금과 달랐다. 출범 직후의 노무현 정부는 제2차 북핵 위기와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동맹의 불확실성, 외환위기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경제 상황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정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정부도 파병의 이유로 세계평화와 재건 지원뿐 아니라 한미동맹의 공고한 발전을 명시했다.

노 대통령의 결정에는 고뇌가 있었다. 그는 유엔과 국제여론, 이라크와 아랍권의 인식, 북핵 문제, 파병 위험, 국익과 국내여론을 함께 검토했다. 미국이 요구한 전투부대의 규모와 임무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아르빌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정했다.

그 선택은 당시의 취약한 국력과 북핵 위기 속에서 한미동맹을 관리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현실적 타협으로 볼 수 있다. 그 맥락을 무시한 채 노무현을 단순한 '파병 대통령'으로 소환하는 것은 그의 고뇌를 모욕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무현의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결국 무너졌다.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파병은 한미동맹을 관리하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었겠지만, 명분 없는 전쟁에 한국이 참여했다는 역사적·도덕적 부담도 남겼다.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익'이라는 포괄적 언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민주주의의 문제도 있었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노무현의 파병 결정 자체가 아니다. 강대국의 요구 앞에서 국익과 평화, 동맹과 자주 사이에서 끝까지 고민했던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넘어야 할 것은 결국 미국의 압력을 거부하지 못했던 당시 대한민국의 한계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2003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 자신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적 경제력과 군사력, 방위산업과 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다. 대통령은 "세계 5위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자주국방을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자주국방은 북한을 상대할 때만 꺼내는 구호여서는 안 된다. 미국의 부당한 군사적 요구에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거부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해야 한다. 자국을 스스로 지키는 군사력은 있으면서 자국 군대를 타국의 강요와 압박에 못이겨 파견한다면, 그것은 결코 자주국방이 아니다.

한반도의 국제정치 현실에서 한미동맹은 아직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동맹은 복종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미국이 요청하면 전쟁의 성격과 국제법적 정당성, 한국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군대를 보내야 한다면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종속이다.

미국은 "한국을 보호해주었으니 한국도 미국의 전쟁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미국이 한국에 베푸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탱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한국은 방위비를 부담하고 기지를 제공하며 미국의 지역전략에 상당한 비용과 위험을 분담해왔다. 트럼프가 동맹을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바꾸려 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왜곡된 장부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호르무즈 해협이 한국 경제에 중요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원유가 그곳을 통과한다는 사실과 한국군이 미국의 대이란 작전을 지원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거대한 논리적 간극이 있다. 한국 선박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은 외교적 통항협상, 오만 등 중재국과의 협력, 국제해사기구를 통한 다자적 안전체계,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 민간선박 구조지원 등 여러 가지다.

그런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군사자산부터 꺼내 든다면, '우리 선박 보호'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사후적 명분에 지나지 않게 된다.

더 위험한 것은 국내의 관성화된 맹목적 '친미 압박 장치'다

이재명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국내의 친미 기득권 세력은 미국의 요구를 한국의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만든다.

그들은 미국이 불쾌해할 가능성은 크게 부풀리지만 파병으로 발생할 이란의 반발과 장병의 위험은 축소한다. 파병을 거부해 생길 수 있는 비용은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파병해서 얻을 이익은 언제나 막연한 '동맹의 신뢰'로 포장한다. 미국의 요구에 의문을 제기하면 반미로 몰고, 독자적 판단을 주장하면 안보를 모르는 이상주의라고 비난한다.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보가 아니라 공포다.

"미국에 밉보이면 큰일 난다."

"한국만 빠지면 동맹에서 버림받는다."

"북한이 있는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느냐."

이 공포가 대통령실과 관료조직, 언론과 정치권을 관통하면, 아직 미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했는지조차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먼저 미국이 만족할 선택지를 만들어 바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종속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명령을 직접 받기 전에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극복해야 할 것은 트럼프 한 사람의 압박만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를 국익과 동일시하고, 시민의 반대를 비현실적 감정으로 취급해온 국내 권력구조다.

해법은 시민주권이다

이 압박을 대통령 개인의 배짱만으로 이겨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의 압력에 맞설 가장 강력하고 정당한 힘은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라 시민의 위임이다.

첫째, 미국이 언제, 누구를 통해, 어떤 임무와 자산을 요구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공식 요청이 없었다면 어떤 협의가 진행됐고, 정부가 왜 P-8A와 군수지원함까지 검토하게 됐는지를 밝혀야 한다. 외교·안보라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비밀에 부친 채 결과만 국민에게 승인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둘째, 파병동의안을 제출하기 전에 국회 공개청문회와 시민사회·군사·외교·국제법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검증 절차를 열어야 한다. 장병의 생명과 국가의 전쟁 참여 여부는 대통령과 국가안보실 몇 사람의 판단에 맡길 사안이 아니다.

셋째, 군사적 파병안보다 비군사적 기여안을 먼저 공식 제안해야 한다. 한국 선박 보호를 위한 외교협상, 다자적 항행안전 협의체, 구조·의료·인도적 지원,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 미국과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한다.

넷째, 파병 문제를 통상·방위비·전작권·핵추진잠수함 등 다른 한미 현안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장병의 생명을 관세나 무기협력과 맞바꾸는 순간 국가는 시민을 목적이 아닌 협상수단으로 취급하게 된다.

다섯째, 정부가 끝내 제한적 군사기여를 검토한다면 임무와 금지선을 국민 앞에 먼저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공격작전 지휘체계 편입 금지, 대이란 표적정보 제공 금지, 전투함 탄약 보급 금지, 추가 승인 없는 작전지역 확대 금지, 무력 충돌 시 자동 임무 중단과 국회 재승인을 명문화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인 해법은 분명하다. 지금과 같이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미국의 요구와 파병의 실익조차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군사적 파병 논의를 중단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의 반복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했던 선택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넘어서고 싶어 했던 시대를 완성해야 한다.

노무현의 시대에는 파병을 거절하면 한미동맹과 북핵 관리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국제적 위상도, 시민사회의 역량도 달라졌다. 국력이 달라졌다면 외교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국격은 강대국의 요구를 얼마나 신속히 들어주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당한 요구 앞에서 자국의 원칙과 시민의 생명을 얼마나 당당히 지키는가로 증명된다.

트럼프의 "기억하겠다"는 말이 두렵다고 군대를 보내면, 미국은 한국이 어떤 압박에 굴복하는지를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한 번 통하면 그 압박은 통상에서도, 방위비에서도, 또 다른 전쟁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반대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국회의 동의와 시민의 숙의를 방패로 삼아 "대한민국은 동맹국이지만 미국이 벌이는 모든 전쟁의 자동참전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반미가 아니다. 주권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의 고뇌를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그 고뇌가 생겨났던 대한민국의 취약성을 넘어서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미국과 대통령의 군대가 아니다. 주권자인 시민의 군대다. 누구를 위해, 어떤 명분으로, 어디에서 생명을 걸 것인지를 결정할 최종 권한도 시민에게 있다.

대통령이 진정 대한민국의 달라진 국력과 국격을 믿는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압박이 아니라 시민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호르무즈로 군대를 보내지 말라.

평화를 지키고, 주권을 지키며, 시민의 생명을 지켜라.

그것이 노무현을 가장 정직하게 계승하면서도 노무현의 시대를 넘어서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 초청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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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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