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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 25년, '반서방 블록'이란 착시…중국은 SCO를 지배하는가, 조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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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 25년, '반서방 블록'이란 착시…중국은 SCO를 지배하는가, 조율하는가?

[원동욱의 외교광장] 2026년 비슈케크 정상회의의 성과, 중국의 역할, 그리고 한국의 선택

2026년 9월 1일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는 창설 25주년을 맞은 기구가 어디로 가려는지를 집약해 보여주었다. 회원국들은 '향후 10년(2026~2035년) 발전 전략'을 중심축으로 삼고, 헌장 개정 의정서와 안보 위협 대응 종합센터·마약퇴치센터 조례를 승인했으며, 안보·경제·인문 협력과 조직 정비를 포괄하는 28개 성과 문서를 채택했다. 선언의 문구는 단결과 다자주의를 강조했지만, 회의의 진정한 의미는 수사보다 제도화의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이번 회의는 SCO가 더 이상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경 안정 협의체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동시에 SCO를 곧바로 '반서방 군사블록'으로 규정하는 해석 역시 기구의 복합성과 내부 제약을 놓친다. SCO는 서방 중심 질서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무대이지만, 그 회원국들이 하나의 전략과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동맹은 아니다. 비슈케크 회의는 바로 이 두 얼굴, 즉 확대되는 외연과 제한된 결속력을 함께 드러냈다.

국경 안정 기구에서 유라시아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SCO의 출발점은 냉전 해체 이후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국경 신뢰 구축과 분리주의·극단주의·테러리즘에 공동 대응하려는 실용적 필요였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 벨라루스가 회원국이 되면서 기구의 지리적 범위와 정치적 이질성은 크게 확대되었다. 오늘의 SCO는 세계 인구와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 다층적 협의체다. 회원국 확대는 대표성과 상징적 무게를 키웠지만, 이해관계 조정 비용도 함께 높였다.

'2026~2035년 발전 전략'은 이런 확대를 지속 가능한 제도로 바꾸려는 청사진이다. 안보 협력에 더해 교통·물류, 에너지, 디지털 경제, 금융, 보건, 교육, 문화 교류를 연결하려는 구상은 SCO가 지역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거버넌스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특히 상설 센터의 설치와 규정 정비는 정상들의 선언을 관료적 실행 체계로 옮기는 과정이다. 다만 문서의 수가 곧 집행력은 아니다. 예산, 정보 공유, 공동훈련, 분쟁 조정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향후 10년 전략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중국의 역할: 지배자가 아니라 의제와 공공재의 공급자

중국은 SCO에서 가장 큰 경제력과 광범위한 연결망을 가진 국가다. 비슈케크 회의에서도 중국은 '상하이 정신', 다자주의, 공동 안보, 발전 협력을 결합한 담론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와 규범 외교에 맞서는 단순한 반대 언어라기보다, 주권·내정 불간섭·발전권을 앞세운 대안적 국제질서의 서사에 가깝다. 중국은 이 서사를 일대일로, 육상 교통망, 에너지 협력, 디지털 인프라와 결합함으로써 SCO를 외교적 구호와 물질적 이익이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그렇다고 중국이 SCO를 일방적으로 지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에서 독자적 강대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으며, 인도는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와 일대일로에 경계심을 가진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투자와 시장을 필요로 하지만 과도한 의존은 피하려 한다. 이란과 파키스탄 역시 각각의 안보·경제 이해를 갖는다. 따라서 중국의 영향력은 명령보다 의제 설정, 금융·인프라 제공, 회의체 운영과 같은 '공공재 공급'에서 나온다. 중국의 리더십이 지속되려면 자국의 구상을 공동의 이익으로 번역하고, 작은 회원국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반서방 블록'이라는 해석이 놓치는 것

서방 언론은 SCO 정상회의를 종종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반서방 연대의 확장으로 묘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이란 핵 문제, 벨라루스의 가입을 고려하면 이 관점에는 현실적 근거가 있다. 미국 주도의 제재와 동맹 체제에 비판적인 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요구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SCO는 NATO와 같은 집단방위 동맹이 아니다. 공동의 적을 명시하지 않고, 회원국 사이의 군사적 자동개입 의무도 없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오랜 갈등 관계이며, 중국과 인도 사이에도 국경 분쟁과 전략적 경쟁이 남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도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SCO의 합의제 운영은 다양한 국가를 포용하는 장점이 있지만, 첨예한 사안에서 최소공약수 이상의 결정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SCO의 핵심은 서방을 대체하는 단일 블록이라기보다, 서방 이외의 선택지를 넓히는 '다극적 협상 공간'에 있다.

비슈케크 선언의 성과: 제도화와 기능화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안보 위협 및 도전 대응 종합센터와 마약퇴치센터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점이다. 테러, 극단주의, 초국경 범죄, 마약, 사이버 위협은 중앙아시아의 취약한 국경과 아프가니스탄 정세를 매개로 서로 연결된다. 여러 기능을 상설기구로 묶는 것은 SCO가 '정상외교의 사진 촬영장'이라는 비판을 넘어 실무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경제·인문 분야의 성과 문서도 중요하다. 안보만으로는 회원국의 장기적 참여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통 회랑, 통관, 에너지, 산업협력, 인적 교류가 시민과 기업이 체감할 성과로 이어질 때 기구의 정당성이 생긴다. 다음 순회의장국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거대 담론보다 합의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복 사업을 조정하며, 이행 상황을 공개하는 실무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러나 SCO의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회원국의 국내 정치와 경제 상황이 크게 다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구분을 넘어 국가 역량, 법제, 시장 개방도, 대외제재의 수준이 제각각이다. 공동사업은 선언보다 금융 조달과 규정 조화에서 자주 막힌다.

둘째, 중국의 경제적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은 추진력인 동시에 불신의 원천이다. 공동기금과 사업이 중국 기업·금융기관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협력이 비대칭적 의존으로 인식될 수 있다.

셋째, 회원국 사이의 분쟁을 해결할 강제력 있는 장치가 약하다. 합의제가 갈등의 공개적 폭발을 막아주기는 하지만, 갈등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넷째, 인권·법치·투명성에 대한 낮은 기준은 단기적으로 회원국의 참여 문턱을 낮추지만 장기적으로 기구의 국제적 신뢰를 제한할 수 있다. 대테러 협력이 반대세력 억압과 혼동되거나, 안보 명분 아래 시민적 자유가 축소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이번 회의가 보여준 세계질서의 변화

비슈케크 정상회의는 국제질서가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제도와 네트워크가 중첩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도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기구에 참여한다. 튀르키예가 정회원 가능성을 거론하고, 걸프와 동남아 국가들이 다양한 협력체에 동시에 접근하는 현상은 '편 선택'보다 다중 정렬이 확산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 변화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즉시 붕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달러 금융, 미국의 군사동맹, 서방의 기술력과 시장은 여전히 막강하다. 다만 비서방 국가들이 제재 회피, 개발금융, 에너지 거래, 안보 협력을 위한 별도의 제도적 통로를 늘리면서 서방의 규칙 설정 독점은 약화되고 있다. SCO의 영향력은 회원국 간 무역 비중이나 공동기관의 집행력보다 정치적 상징에서 더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세계가 서방과 반서방으로 완전히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질서가 경쟁하고 겹치는 복합 다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SCO를 가치 외교의 반대편에 놓인 낯선 블록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중앙아시아는 공급망, 핵심광물, 에너지, 원전, 철도·물류, 디지털 협력에서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다. SCO의 제도 변화는 이 지역의 규범과 사업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기구의 선언과 사업을 면밀히 추적하고, 회원국별 이해관계를 구분하며, 가능한 분야에서는 보건·기후·재난·교육 같은 비전통 안보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원칙과 실용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테러 협력의 인권적 통제, 제재 준수, 투명한 금융, 채무 지속 가능성은 포기할 수 없는 기준이다. '참여냐 배제냐'의 이분법보다 사안별 관여가 현실적이다. 한미동맹과 규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다변화 요구를 존중하는 세밀한 외교가 필요하다. SCO를 과대평가하면 중국의 선전 논리를 따라가게 되고, 과소평가하면 변화하는 유라시아의 제도 지형을 놓친다.

SCO의 미래는 중국의 힘보다 '조정 능력'에 달렸다

25주년 비슈케크 회의는 SCO의 성장과 불완전성을 동시에 확인했다. 장기 전략과 상설센터, 28개 성과 문서는 기구가 기능적 협력을 심화하려는 증거다. 그러나 선언을 실제 정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회원국 간 갈등, 자금 조달, 제도 투명성, 중국에 대한 경계라는 난제를 넘어야 한다.

중국의 역할도 같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경제력과 외교적 존재감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리더십을 만들 수 없다. 중국이 회원국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동이익을 생산하며 분쟁을 절제하는 조정자가 될 때 SCO는 유라시아의 실질적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기구가 대미 경쟁의 도구나 중국 중심 질서의 외피로 인식된다면, 외연의 확대는 오히려 내부 결속의 약화를 낳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SCO가 서방을 대체했다'는 선언이 아니다. 비서방 국가들이 더 많은 제도적 선택지를 만들고 있으며, 국제질서의 규칙을 둘러싼 경쟁이 안보에서 개발·기술·물류·금융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SCO의 다음 10년은 규모가 아니라 실행, 반대가 아니라 조정, 구호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 2026년 9월 1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플러스' 회의에 앞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주최한 환영 만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단체 사진 촬영에 참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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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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