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도 폭염 속에서 일하다 쓰러진 쿠팡 노동자들 소식이 전해졌다. 쿠팡 배송캠프 온도는 40도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최저가를 내걸며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을 보장한다는 쿠팡이 성장의 이유로 내세워온 '스마트 혁신'은 노동자와 입점업체를 쥐어짠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쿠팡이 쓴 국내 유통업계 1위의 기록은 약탈과 착취가 쌓여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간 누적된 쿠팡의 문제에 작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또 다른 국면을 연 듯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에야말로 쿠팡 문제를 바로잡을 것처럼 의지를 내보였지만, 정작 엉뚱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
새벽배송 허용해 줄 테니 쿠팡과 경쟁하라?
쿠팡에서 야간노동 중 사망한 노동자가 작년에만 최소 8명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방지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를 꾸렸다. 하지만 노동자 건강과 안전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사라지고, 쿠팡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며 대형마트 온라인 영업 규제를 완화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대형마트 규제로 쿠팡만 키웠다"는 경제지의 말을 그대로 가져와 쓰면서 당정청은 지난 2월 회의에서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합의했다. 대형마트의 심야영업 규제완화, 의무휴업 자율화, 온라인 기반 새벽배송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다른 사업자의 영업 자유를 키워 쿠팡과 경쟁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쿠팡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연료로 삼을 수 없도록 야간노동을 규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야간노동을 확대하면서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쿠팡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문제라고 하면서 또 다른 쿠팡들을 만드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 것일 뿐이다. 바꿔야 할 것은 유통업계 1위의 기업 이름이 아니라 약탈과 착취의 구조 자체여야 한다.
플랫폼 '갑질'을 방지할 온라인플랫폼법은 멈춰
작년 11월 쿠팡에서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쿠팡은 유출 대신 '노출'이라 표현하고, 피해 규모를 3000건으로 줄여 발표하고, 증거자료를 무단 삭제하며 조사를 방해하고, 알량한 보상책을 내놓았다. 사태를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쿠팡에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탈팡' 흐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쿠팡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두고 미국 정부와 의회는 쿠팡의 입장을 그대로 옮겨와 한국정부가 '미국기업' 쿠팡을 차별한다며 왜곡했다. 미국의 반발에 정부와 국회는 주춤하며 한발 물러섰다.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확산하며 플랫폼 업체들이 급성장했다. 수수료 인상, 납품단가 인하, 광고료 부담 등 부당한 요구를 하는 '플랫폼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거래관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취지로 2021년 문재인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고 국회에도 유사한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부처 간 갈등과 업계 반발 속에 무산됐다.
'자율규제' 기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를 지나 현재에 이르는 동안, 온라인 시장에서 쿠팡의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2021년에서 2025년까지 온라인 플랫폼에서 불공정 거래로 인한 분쟁 조정 신청이 가장 많이 접수된 업체는 쿠팡이다.쿠팡의 '갑질'이 드러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도 반복됐다. 올 2월 공정위는 쿠팡이 입점업체에 단가 인하와 광고비 부담을 강요하고 상품대금을 정산기한보다 늦게 지급하는 등의 이유로 22억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2024년에는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체 브랜드인 PB상품과 직매입한 상품을 검색 순위에 올리고, 임직원을 동원해 허위 구매 후기를 작성하게 한 행위로 160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문제를 사후적으로 적발해 제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을 사전에 방지하는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에서 오랜 시간 온라인플랫폼법을 요구해온 이유다. 계약서 교부 의무화, 대금 정산주기 단축, 수수료 상한제 도입 등으로 플랫폼의 일방적인 요구를 제한하여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노출이 곧 매출로 이어지는 만큼, 플랫폼의 알고리즘 설명 의무로 투명성을 높이며 축적된 데이터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자사우대 같은 행위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체협상권 보장으로 입점업체가 플랫폼의 부당한 요구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온라인플랫폼 관련법이 19건 발의되어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핑계로 관련 논의를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국가가 거대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을 규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도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과 불공정 거래를 규율하는 법제화가 추진됐다. 미국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의 반독점 개혁 법안 패키지가 추진되고 있으며, 빅테크기업의 독점을 둘러싼 소송들이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이 일상 모든 영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시대,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미국을 핑계로 댈 게 아니라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플랫폼의 운영 규칙을 확립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일이다. 그 기준을 세우는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플랫폼 노동자 권리를 바로 세우는 것
매년 매출 고공행진을 찍어온 쿠팡의 성장의 한축에 입점업체에 대한 약탈이 있다면, 다른 한축엔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있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지상명령으로 삼는 쿠팡을 위해 일하다가 수많은 노동자가 죽었다. 새벽배송하던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반복될 때 쿠팡은 이들이 '자유롭게' 일하는 개인사업자라며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어왔다. 쿠팡 택배노동자는 형식적으로는 대리점과 계약을 맺었지만, 어플을 통해 사실상 쿠팡으로부터 물량과 속도를 통제 받는다. 쿠팡은 배송 수행률을 평가해 구역을 회수하는 '클렌징' 제도로 택배노동자에 상시 해고와 같은 위협을 가하며 노동강도를 높여왔다.
플랫폼 중개를 통해 노동을 제공하고 소득을 얻은 플랫폼 노동자가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플랫폼 기업의 구체적인 지휘·감독 하에서 종속되어 노동을 수행하고 있지만, 중개할 뿐 직접적 근로계약관계가 아니라며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해왔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일의 배분과 수행방식을 좌우하는 플랫폼 업체에 책임을 물으며 오랜 시간 싸워왔고, 계약의 형식이 아닌 근로 제공 관계의 실질에 주목하면서 2024년 차량호출서비스 '타다'의 운전기사에 이어 지난 7월 배달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라이더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국제사회에서도 플랫폼 노동과 같이 노동의 디지털 전환으로 변화한 일의 세계에 대응하는 논의가 이어져왔고, 지난 6월 ILO(국제노동기구)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은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플랫폼노동자에 대해 보편적 노동기본권을 보장을 원칙으로 세우고,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 AI 등 자동화된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해온 전통적인 노동기준을 현대화하면서, 플랫폼 노동의 특성을 이유로 배제됐던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보장하여 그간 플랫폼 경제에서 결핍되어온 양질의 노동을 촉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환기했다.
쿠팡은 2021년 미국증시에 상장하며 제출한 신고서에 "쿠팡 플렉스·이츠 배달원을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는 것이 법령과 법적 해석에서 어려워진다면 이를 방어·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사의 사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쿠팡 스스로 밝힌 것처럼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쿠팡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협약 비준 요구에 검토해가겠다는 유보적인 입장 속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에 근로기준법 적용이 아닌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별도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이라는 분명한 답을 어떻게든 피하면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별도 범주를 만들어 다른 방식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기본법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들을 나열할 뿐, 이를 강제할 규정이 없다. 명시된 권리를 사용자의 책임으로 분명히 하지 않고 '사업주'의 노력에 맡기면서 실효성 없이 명분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는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비전형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예외지대에 계속 두면서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지난한 소송의 시간을 개별적으로 떠넘겨왔다. 노동자의 권리는 전시하기에 좋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바꿔갈 규범이자 힘이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없이 쿠팡은 바뀔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플랫폼 노동협약을 비준하고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예외 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며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쿠팡의 약탈과 착취 구조를 바꿔야
지난 봄 쿠팡 산재노동자 유가족모임이 꾸려져 물류센터를 순회하고 고용지청 앞 1인 시위를 이어가며 싸우고 있다. 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과로로 사망한 고 장덕준 님에 대해 당시 김범석이 "시간제가 열심히 할 리가 없다"며 산재은폐를 지시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용노동부가 기획감독에 착수했지만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다. 쿠팡을 위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가족들이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로사 없는 쿠팡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쿠팡 문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무색하게 정부와 국회는 정작 해야 할 건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건 밀어붙이고 있다. 또 다른 쿠팡을 만들 게 아니라, 쿠팡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힘을 만들어야 한다. 온플법으로 플랫폼의 지배력 남용을 규율하고,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쿠팡에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쿠팡을 바꾸는 것은 쿠팡이 지탱되어온 약탈과 착취의 구조를 부수는 일이다. 다시 거리로 나선 쿠팡 산재노동자 유가족들의 투쟁은 그 균열점을 내는 투쟁이다. 그 곁에 함께 서며 더 큰 균열이 나도록 해야 한다. 반복된 쿠팡의 문제를 이번에야말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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