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가 부끄럽지, 우리가 부끄럽나!"
평생 시골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이 옷을 벗었다. 손주뻘 경찰, 용역들 앞에서. 초고압 송전탑 예정지에 구덩이를 파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누웠다. 경찰이 사지를 들고 끌어내기 시작했다. 비명이 난무하고 몸부림치던 할머니들이 실신한다. 경찰에 이미 제압당한 할아버지들은 이 충격적인 모습에 울부짖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아온 아내가 젖가슴을 드러낸 채 짐짝처럼 끌려간다. 단발마적 비명이 산골짜기를 가로질러 표창처럼 날아다닌다."할멈!" "야 이놈들아!"
2005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밀양 송전탑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격렬하고 참혹했던 공공 갈등 사례다. 노인들의 처절한 저항이었고 명백한 국가폭력이었다. 울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려다 벌어진 비극이다.
보상 때문이라고? 2012년 74세 이치우 어르신은 "나 하나 죽어야 이 철탑이 멈추겠느냐"며 분신 자결한다. 새까만 시신에 이불을 덮어놓았는데 달려온 부인이 이를 부여안고 울부짖는다. 97세 노모는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며 드러누웠다. 그럼에도 이듬해 정홍원 총리가 공사 강행을 결정한다. 철탑이 들어서면 가축을 키울 수 없다며 괴로워하던 71세의 또 다른 어르신이 음독자살한다.
마을 사람들은 보상받고 끝내자는 찬성파와 무슨 낯으로 조상님을 보겠냐는 반대파로 갈라졌다. 송전탑이 들어서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인사를 않는다. 그놈의 송전탑이 마을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한전은 공사 지연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농성에 참여한 70~80대 어르신들은 재판에 넘겨져 무더기로 전과자가 됐다. 극심한 우울증과 벌금폭탄은 덤이다. 날벼락이라고 들어봤는가. 이게 날벼락이다. 주민 동의? 밀양 같은 촌구석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그런 건 고매한 인재가 많은 판교 이북에만 존재할 뿐이다.
국가 전력망 사업은 온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신통력이 있다. 2003년의 부안 사태. 전북 부안군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유치하려다 공권력과 주민이 충돌했다. 민란이었다. 방폐장이 들어서면 '청정 부안'의 수산업과 관광업이 망할 게 뻔한 부안군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부안에서도 주민 동의 같은 건 없었다.
초·중·고등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했고 연일 수만명의 군민들이 촛불집회에 나섰다. 독단으로 방폐장 유치 신청을 했던 부안군수는 군민들에게 폭행당했다. 경찰이 진압에 나섰지만 부안은 노인들만 사는 밀양 산골짜기와는 달랐다. 교복 입은 학생, 유모차 끄는 젊은 엄마, 피켓 든 어르신, 죽봉 들고 경찰과 맞선 어민들까지, 공동체의 생존 투쟁이었다. 결국 정부는 계획을 백지화하고 공모사업으로 전환해 방폐장은 경주로 갔다. 부안 사태는 노무현 정부가 국정 동력을 상실하는 첫 계기가 됐다. 밀양 사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안기면서 민심 이반을 가속화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해법 없는 최악의 결정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논란이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는데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관료들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용인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 네 명이 공무원들 팔 비틀고 협박했나?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천하의 멍청이들이다. 전력 공급이 안 되는데 공장을 어떻게 돌리나.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지방의 전력을 용인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산천을 뒤덮은 수많은 송전탑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오직 한 곳을 향한다. 서울이다. 그런데 천 개쯤 더 박아야 한단다. 지금 용인에 필요한 전력 수요는 약 15GW다. 감이 안 잡힌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전력량의 20%로 원전 15기가 생산해야 하는 엄청난 양이다. 반도체 산단 한 곳에 서울시 전력 소비량의 세 배가 필요하다.
결국 부산, 울산, 경주, 울진, 영광 등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충청도를 뚫고 수도권으로 진격한다. 동네마다 초고압 송전탑이라는 폭탄을 투하한다. 2차 대전 때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으로 도쿄를 불바다로 만들었듯 전국을 초토화한다. 경기도는 무사할까. 안성, 평택, 용인, 여주, 하남, 광주 등 인구 밀집 지역도 대공습을 피하지 못한다. 농지, 축사를 가로지르고 아파트단지를 끼고 학교를 지나간다.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르고 송전탑 인근은 거래조차 끊긴다. 수많은 지역이 수도권의 풍요와 호사를 위한 식민지가 되었다.
이를 보고만 있을 우리 국민이 아니다. 송전망 건설 예정지 주민들이 나섰다. 충청(대전, 세종, 천안, 공주, 금산, 영동)과 호남(정읍, 고창, 부안, 완주, 임실, 무주, 진안, 장수, 장성, 김제, 광양, 남원, 순창)의 지역민들이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추진, 건강권 및 재산권 피해를 들어 반대 운동에 나섰다. 송전탑만 문제가 아니다. 몰려드는 전력을 받아넘길 변전소조차 짓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만 해도 용인, 하남, 안성이 그러한 경우다. 주민뿐 아니라 시장, 군수, 의회도 결사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이 쓰지도 않을 전력인데 사방으로 전자파 내뿜는 초고압 송전선로만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에 누가 동의하겠는가.
청와대 대변인은 "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엄청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데 이걸 어떻게 기업이 판단하나. 특히 밀양 사태와 구조적으로 판박이인데 규모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고 곳곳에서 민란 수준의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공권력 투입'이 불가피한데 주민은 목숨 걸고 투쟁할 것이고 국가폭력 비난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국정 동력 상실은 당연하다. 매몰 비용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걸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지금 매몰하는 게 낫다.
'지금 매몰'이 현명한 판단
방향이 중요한가, 속도가 중요한가. 당연히 방향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은 애초에 잘못 설계된 것이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 없다. 그런 방법 없다. 용인에 원전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면.
대안은 과거 SK하이닉스 유치전에서 용인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구미 또는 원전이 있는 울진이나 울주·기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울진의 한울 원전은 총 설비 용량 약 9GW로 최대 원전이다. 울주의 새울 원전은 막바지 시운전 중인 3호기와 계획 중인 4호기가 완공되면 한울 원전에 맘먹는 생산력을 갖게 된다. 지척에 기장 고리 원전도 있다. 구미는 낙동강, 울진과 울주·기장은 동해안에 있어 양질의 용수 공급도 가능하다.
부지도 충분하다. 공장뿐 아니라 반도체와 AI 분야의 연구소, 데이터센터 수용도 가능하다. 관련 분야 대학이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서울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관이 서울대 관악캠퍼스다. 공대 등 전력 소비량이 많은 단과대학과 카이스트, 포항공대의 관련학과와 연구소를 함께 집적하면 세계적 경쟁력의 연구 및 생산단지가 될 것이다. 균형발전에서 100점짜리고 정치적으론 만점짜리다.
"남쪽은 인재를 구할 수 없다?" '서울주의자'들의 국민에 대한 모욕
기사와 자료를 종합해 보면 반도체 산단이 용인으로 결정된 가장 큰 이유가 '인재 확보'였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인재 확보의 남방 한계선은 판교라고 주장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뭐 하나 양보하기 싫은 '서울주의자'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곳곳에는 국내외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교수들이 있고 훌륭한 학생들이 있다. 사투리 쓰는 사람이 그냥 싫은 거다.
서울 같은 대도시 직장인들에게 회사가 멀리 있는 중소도시로 간다고 설문조사를 하면 당연히 반대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에게 중소도시에 있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겠냐고 물으면 당연히 찬성이 많을 것이다. '남방한계선 판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사실 20여년 전부터 기흥이라는 말이 있었다. 왜? 당시 기업인들이 주말에 골프 치러 가면 기흥이 가장 먼 거리였다는 추론이 있다. '서울에서 출퇴근 가능한 거리'가 이렇게 생겨났다. 지금은? 경기도 끝 평택에 삼성전자. LG전자, 현대모비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제철이 들어섰다. 그렇다면 지금 남방한계선은 평택인가?
얼마 전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했는데 많은 이들이 '인재 유출'을 걱정했었다. 결과는? 전입 희망자가 오히려 더 많아 전출자 수를 다 채우고도 60여 명의 대기자가 생기는 인기 부처가 됐다. 정부의 정착 지원이 주효했고 부산의 우수한 주거 환경도 작용했다. '인재 확보 남방한계선 판교'는 남쪽의 국민들을 모욕, 멸시하는 몰지각한 발언이다. 지방 거주 국민들은 불가촉천민인가.
서울과 수도권의 기득권은 용인 반도체 산단을 밀어붙일 기세다. 판교 이남 사람들을 길거리 개, 고양이쯤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번 해 보기 바란다. 이번엔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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