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함께 추정 치매환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서 공동으로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보고서>(2023)에 의하면 전국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2020년 약 84만 명, 2021년 약 89만 명, 2022년 약 94만 명으로, 해마다 5만 명씩 늘어나고 있다. 치매 관리비용 역시 막대한 수준으로, 환자 1인당 연간 비용은 약 22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직접 의료비를 비롯해, 간병비용, 교통비, 보조용품구입비, 시간비용, 장기요양비용, 간접비(환자 생산성손실비용)가 포함된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의 어려움은 단순히 비용적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과 전문 돌봄 제공자 모두에게 큰 어려움을 안기고 있다. 특히 요양보호사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런데 지금까지 돌봄 제공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주로 노동 조건에 관한 문제로 다뤄져 온 탓에 그들의 직무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오늘은 치매 환자 돌봄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실천적 문제를 살펴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연민적 기만: 덴마크 요양원에서 치매 환자를 돌볼 때 의료 전문가와 가족 구성원이 거짓말을 하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문화기술지 연구).
이 연구는 덴마크의 요양원 두 곳에서 6주간의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수행된 문화기술지 연구로, 치매 환자 돌봄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돌봄 전략과 윤리적 딜레마를 '연민적 기만(compassionate decep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 연민적 기만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선한 의도를 기반으로 연민, 공감, 타인의 필요에 대한 주의 깊은 배려와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 연구는 치매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환자의 안정과 복지를 위한 선의의 행동일 수 있는 동시에, 일상적인 돌봄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쁜 돌봄 제공자들이 선택하는 실용적인 조치라는 점을 드러낸다.
연구진은 치매 환자들이 자주 과거의 기억이나 현실과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관찰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현재 요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믿고 집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그리고 요양원을 탈출하려고 하거나 이미 사망한 배우자를 찾는 경우가 빈번했다. 또 로봇 고양이를 실제 고양이로 착각하면서 간식을 주고 돌보기도 했다.
이때 돌봄 제공자들은 약물 복용, 목욕 등 기본적인 돌봄 행위에서 환자의 감정과 인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들의 현실 속에서 소통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잠시 이웃집에 있다고 설명한다거나, 사망한 남편을 찾는 환자에게는 점심 식사 후에 어디 있는지 찾아보자고 하는 경우, 또 머리 감기를 거부하는 환자가 요양원 입소 전에는 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돌봄 제공자가 자신을 미용사라고 소개한다거나, 향정신성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이것이 칼슘제라고 설명하는 경우 등이 그 예다. 이것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달랐다. 환자의 과거 생활습관을 고려하여 이들이 경험하는 불안감을 줄이고 효과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방법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연민적 기만이라는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치매 환자들을 돌볼 때 거짓말과 기만적 실천이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의미 있는 돌봄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돌봄 제공자들은 치매 환자들이 경험하는 주관적 현실을 인정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그들의 돌봄 의무를 이행할 수 있었다.
한편 이 개념은 비판 장애학 연구자인 카터(Matilda Carter)가 제시한 '평행적 주체성(parallel subjectivity)'에 착안한 것이다. 이는 각 주체가 특정한 사건과 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이와 다른 관점을 가진 주체들과 평행적 관계를 맺으며 공존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치매 환자가 언뜻 잘못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들이 바라보는 세계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세계에 대한 공통된 이해 없이도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요양원의 본질적인 가치이며, 이때 연민적 기만 전략은 치매 환자의 존엄성을 높이고, 진실이 가져올 수 있는 고통과 슬픔을 줄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이 연구가 연민적 기만 개념을 이용하여 거짓말에 대한 돌봄 제공자의 관점을 보여주었다면, 치매 당사자의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도 있다(☞관련 논문: 바로가기). 당사자들은 '최선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이라면 대부분 수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거짓말이 발각되었을 때, 특히 가까운 사람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자기 경멸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오늘 소개한 연구와 마찬가지로, 돌봄 과정에서의 거짓말을 단순히 '윤리적/비윤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같은 돌봄 제공자와 당사자 양측의 경험과 해석은 거짓말과 관련된 윤리적 딜레마의 본질이 '진실 대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는 돌봄 현장에서 치매 환자를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즉, 치매 환자를 주관적 현실과 경험을 지닌 주체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치매 환자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 볼 경우,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세계와 원하는 돌봄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국공립 요양원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데, 예컨대 입소 정원이 150명인 서울요양원의 지난해 2월 입소 대기자는 1379명이었다. 민간 요양원에서 학대 사례가 간간히 보도되는 것과 달리, 국공립 요양원은 수익성보다는 환자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상대적으로 더 인간적인 대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보호자들은 요양원을 평가할 때 주로 의료진과 요양보호사의 친절함, 쾌적한 환경, 안전한 식사와 복약지도, 비용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들이 치매 환자들의 실제 필요와 바람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바라는 친절함이란 단순히 말투나 태도보다는, 그들의 세계가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과 불일치하더라도 여전히 존중해주는 태도일지 모른다. 쾌적한 환경도 먼지 한 톨 없이 정돈된 공간이 아닐 수 있다. 덜 정돈되어 보일지라도 자신이 과거에 살던 집처럼 친숙한 느낌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안전한 식사와 복약지도 역시 여러 영양 성분의 균형이 고려된 식단과 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먹게 하는 행위로 축소될 수 없다. 당사자에게는 평생 지켜온 식습관을 지키거나, 때로는 영양보다도 기분과 취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식사하는 것이 더 큰 바람일 수 있다. 현실에서 시설, 인력, 제도 측면에서 가능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치매 환자들이 느끼는 세계와 원하는 돌봄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더 나은 요양원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치매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그들의 의견이 돌봄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서지 정보
Skov, S. S., Jensen, A. M., Rasmussen, G., Folker, A. P., & Lauridsen, S. (2024). Compassionate deception: An ethnographic study of how and why health professionals and family members lie when caring for people with dementia in Danish nursing homes. SSM-Qualitative Research in Health, 6, 10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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