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없는 윤석열 시대를 끝내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그동안 어려움을 견뎌 온 농민들이 사회 개혁을 요구하며 트랙터를 이끌고 지난 16일 서울로 행진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끝끝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경찰은 21일 남태령에서 이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차벽을 세우고 트랙터를 고립시키며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고립되지 않았다. 남태령에서의 대치 상황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여들었다. 농민들이 외롭지 않도록,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외친 감동적인 연대의 순간이었다. 이 연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도 시민이라 외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투쟁에 함께 하는 물결로도 이어졌다.
연대는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농민들이 겪고 있는 농업 소득 감소, 생계 불안정, 농업 관련 자재비 증가 등의 어려움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우리는 농업 정책과 식량 주권의 방향성을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까? 오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동기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를 소개하려고 한다. 메릴린 스텍클리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은 최근 아이티의 변화된 식량 주권 정책이 과거 접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목하였다(☞논문 바로가기: 건강, 농업, 성평등을 위한 식량 주권: 아이티의 급진적 의의).
연구진은 2010년 대지진 이후 사회 재건 과정에 있는 아이티의 새로운 식량 주권 정책과 기존 식량 안보 중심 정책과의 차이를 비교했다. 주요 분석 자료는 아이티 정부가 2018년에 채택한 '식량 주권, 안보 및 영양 정책'(PSNSSANH)과 지진 이후 발표된 다른 정책 문서들 간 비교로 구성되었다. 연구진은 식량 주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농업, 건강, 영양, 성평등 정책이 통합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 탐구하였다.
연구 결과, PSNSSANH는 농업 현대화와 수출 위주의 기존 시장 중심적 접근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정책은 소규모 농민과 전통 음식을 중심으로 농업 정책을 재구성하고, 관세를 인상해 국내 식량 생산을 보호하며, 전통 식단 복원을 통해 건강과 영양을 개선하고자 한다. 특히, 이전과 달리 여성 유통업자들을 식량 시스템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이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조했다. 또한, 농업 생산 과정에서의 식품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적 지원과 표준화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PSNSSANH가 단편적인 시장 중심 접근을 넘어, 농업과 건강, 영양, 무역, 성평등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농민과 여성의 권리와 역할을 강조하면서,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식량 주권이 단순한 정책 방향이 아니라, 농민 보호, 생태적 지속 가능성, 건강 형평성, 여성 농업인의 권리 강화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민주적인 개념임을 시사한다.
즉, 식량 주권은 농업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 개혁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것이다. 이 사실은 남태령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연대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농민들의 투쟁과 시민들의 연대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식량과 농업,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방향성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재구성해가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식량과 농업 체계에서의 민주, 평등, 지속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으면 온전히 구현될 수 없다. 오늘날 시민들의 연대가 이러한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한 여정의 위대한 시작이길 희망한다.
*서지 정보
Steckley, M., Steckley, J., Osna, W., Civil, M., & Sider, S. (2023). Food sovereignty for health, agriculture, nutrition, and gender equity: Radical implications for Haiti. Development Policy Review, 41(6), e1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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