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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좌초'로 '기만의힘' 자처한 국민의힘, 미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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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탄핵 좌초'로 '기만의힘' 자처한 국민의힘, 미래가 있나?

[기자의 눈] 한동훈은 회피했고 김예지는 선택했다

누군가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고자 현실 자체를 부정할 때 우리는 그를 새끼 타조에 비유하곤 한다. 상황 직면을 포기한 이들의 어리석음을, 위협을 느끼면 머리를 모래에 파묻는다는 새끼 타조의 습성에 비유하는 말이다. 실제 타조는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니 타조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집권여당과 그 당의 대표가, 추산 15만에서 100만의 군중이 몰려든 상황에 그러한 습성을 내비쳤다. 지난 7일 '탄핵 보이콧'을 감행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무산시킨 국민의힘과 한동훈 대표 얘기다.

한 대표는 12.7 탄핵소추안 무산 사태 이튿날인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공동으로 발표한 담화에서 "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군의 국회 진입 등의 사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반헌법적인 행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판단"이라면서도 "질서있는 퇴진"을 해법으로 제안했다.

대통령의 위헌 행위로 인해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보이콧한 데 대한 사과는커녕, '탄핵 반대'라는 주장을 당당히 내놓지도 못했다. 본인이 주장한 '대통령의 즉각적인 직무정지'는 "대통령은 사실상 직무배제될 것"이라는, 가정형과 미래형을 덧붙인 모호한 언설로 변했다. '탄핵은 혼란이고 퇴진은 질서'라는 논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기 전에, 자당 안철수 의원이 이미 요구한 퇴진 로드맵도 밝히지 못했다.

계엄사태 당일인 3일부터 윤 대통령 거취에 대한 한 대표의 입장은 수없이 변했다. "계엄은 위헌"이라며 "국회로 와달라"던 3일의 한 대표와 "(탄핵안은)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5일의 한 대표가 달랐다. 본인을 포함한 주요정치인 체포조 가동 사실을 입수하자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를 외치던 6일의 한 대표와 대통령 면담 이후 돌연 '탄핵 반대 당론'을 묵인한 7일의 한 대표가 달랐다. 한 대표는 본인이 이 모든 과정에서 "계엄은 위헌"이라는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강변하지만, 그 위헌을 탄핵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눈높이'에 대해서는 이를 악물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동안 한 대표를 집요하게 따라다닌 여당 출입기자들의 1번 질문은 한 대표 본인의 선택이 '국민 눈높이에 맞다고 생각하나'라는 추궁이었다. 그러나 6번 가량 성사된 기자 질의응답 동안 한 대표는 본인이 준비한 모두발언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질문에 침묵하거나 단답형으로 답했다. 의총장 앞에서도 대표실 앞에서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만을 쏟아내면서 빠르게 퇴장했을 뿐, 당원게시판 논란에 격분해 15분간의 '프리스타일 백브리핑'을 쏟아내던 한 대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상황이 엄중한 만큼, 몰려든 수십 명의 기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국민눈높이와 민심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던 이가 70%를 넘어선 탄핵 찬성 여론을 '국민을 위해서'란 말로 부정한다. 그 길을 선택할 수는 있다 쳐도, 그렇다면 '탄핵 반대'라고 당당히 말하고 그에 따른 비판을 감수할 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약속이라면, 입장을 뒤집고 '탄핵 보이콧'을 묵인한 뒤 허술한 논리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 대표의 행보는 본인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한 것조차 아니다.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하며, 어쨌거나 국민을 위한 행보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적 회피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7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귀가하는 차에 올라 한숨을 내쉬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가 상황을 회피하는 사이, 당내에선 친윤계 등을 중심으로 계엄 국면에 대한 본심'이 튀어나온다. "(계엄을) 내용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헌이라고 규정한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권영세), "(계엄을) 내란죄라고 이미 판결을 내리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유감스럽다"(조은희). 이번 계엄이 위헌이라는 가치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자당 의원들의 발언이 한 대표의 회피기동 속에서 이어졌다. 이들은 '박근혜 트라우마'를 강조하며 '계엄 트라우마'에 분노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탄핵에 "대한민국 체제와 우리 후손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윤상현)라는 뚱딴지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계엄 당시 의원들을 당사로 소집한 행위에 대해 야당으로부터 '내란동조' 의혹을 받고 있는 추경호 원내대표였다. 7일 당일 의원총회를 통해 '탄핵 보이콧' 당론을 주도한 추 원내대표는 그 당론으로 인한 탄핵 좌초에 대한 입장은커녕, 계엄 당일 윤 대통령과의 통화사실 등 본인에 대한 새로운 의혹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이 국회를 빠져나갔다. 국회 곳곳에 흩어진 기자들로부터 '추경호가 이미 퇴장했다'는 소식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퍼지는 사이, "민주당의 탄핵 남발도 결코 죄가 가볍지 않다.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것"이라는 그의 의원총회 발언문이 공개됐다.

자당 대표도 '위헌'이라고 규정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적어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민주당 측 활동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것이다. 그는 물론 이 같은 본인 입장에 대해서도 질문은 받지 않았고, 곧바로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계엄 당일 본인의 행위에 대해 '출입통제를 고려했다'는 취지의 건조한 설명을 제외하고는 5일 내내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한 대표가 끝없이 상황을 회피한 끝에 윤 대통령에게 국정운영 권한을 "일임" 받는 등 본인의 정치적 입지 상승을 이뤄냈다면, 추 원내대표는 자신의 모든 권한도 의무도 내팽개친 채 정국 자체에서 도주해버렸다.

친윤계에서는 의총을 통해 원내대표를 재신임해, 법적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을 이어받겠다'는 국민의힘이 이 와중에도 내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추 원내대표의 당직 사퇴가 '용단'이나 '희생'이 아닌, '도주'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말문이 막히는 아귀다툼이다. 추 원내대표는 측근들에게 친한계 측의 비판에 대한 '심적 부담'을 토로했다고 한다. 당장 국회 밖에 모인 100만 인파의 원성에서는 도망치면서, 고작 당내 계파갈등에 대한 '심적 부담'을 토로하는 장면 역시 자기기만의 일종으로 보인다. 계엄 국면 5일 만에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렇게 '기만의 힘'을 자처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운데), 신동욱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그 속에서도 빛나는 '선택'은 있었다. 107명의 동료 의원들이 모두 국회 본회의장을 나가는 순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안철수 의원, '보이콧 의총장'에서 공개적인 탄핵 찬성 의견을 호소하고 회의장으로 복귀한 김예지 의원, 당론에 따라 반대를 표결했지만 보이콧을 거부하고 "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단언한 김상욱 의원. 보이콧으로 표결 자체를 회피한 국민의힘에서 세 사람만은 본인의 향후 정치적 명운을 걸고 '선택'을 했다. 벌써부터 '박근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는 당내 여론이, 앞으로 그들에게 물을 '책임'이 바로 그들만이 회피가 아닌 '선택'을 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히 비례대표 재공천을 이유로 정치권에서 친한계로 분류돼온 김 의원의 선택은 놀라웠다. 총선 당시부터 '2연속 비례대표 공천'이라는 이유로 친윤계의 공격 빌미가 됐던 김 의원이었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앞으로 정치활동이 가능할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계파의 당론을 거부'한 김 의원의 선택은 파격적이었다. 김 의원은 앞서 이준석 전 대표에 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지지했고, 당내 대다수 의원들이 반대하는 의제인 임신중단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일관된 신념. 개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국민을 '비례 대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바라는 대로 "탄핵만은" 막았지만, 국민의힘이 이번 계엄 사태로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것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10년은 '내란당' 딱지가 붙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당내에선 원내대표 재신임 여부를 두고 한동훈파와 추경호파가 또 다시 분란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보수를 재건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의 분기점에서 회피와 도주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과한 무대다. 단언한다.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된 보수에 필요한 것은 한동훈도 추경호도 아니다. 보수에 최소한의 희망이 남아있다면 김예지일 것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안철수일 것이고, 최소한의 품격이 남아있다면 김상욱일 것이다. 12월 7일의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선택'과 책임의 가치를 아는 여당 의원들은 그 정도였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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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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