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의 회동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권 내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이번 회동이 '윤-한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당내 친한계와 친윤계 간의 이견도 여전한 상태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언론 공지에서 "윤 대통령은 21일 오후 4시 30분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대표와 면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면담은 오찬이나 만찬 등 식사를 겸한 자리가 아닌 차담 형식으로 진행되며, 두 사람만의 독대가 아니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 발표 직후 박정하 당대표비서실장을 통해 "변화와 쇄신 필요성, 그리고 민생현안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정부와 여당을 대표해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이니 배석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짧고 건조한 양측의 입장 표명이지만 행간에는 팽팽한 기싸움이 묻어 있다는 풀이가 나왔다. 대통령실이 회동 일시를 월요일 오후 4시30분으로 잡은 것은 회담의 형식에서 격을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정계나 외교가의 관례는 통상 '만찬-오찬-차담-접견' 등의 순으로 중요도·친밀도에서 높은 순위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대통령실은 대화가 길어지더라도 차담이 만찬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예정이라고 일부 언론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난 전례를 봐도 식사 자리가 아닌 차담 형식으로 진행된 경우는 드물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에는 한동훈 지도부와 만찬을, 전당대회 이튿날인 7월 24일 한동훈 지도부 인사들 외에 전당대회 낙선자들도 불러 만찬을 했고, 올해 1월 29일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를 대통령실에서 만났을 때는 2시간 동안 오찬을 하고 이후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37분동안 추가로 차담을 했다.
한 대표 등판 이전에도 작년 10월 18일 당시 김기현 지도부와의 회동은 오찬 형식이었고, 2022년 11월 25일 정진석 비대위와도 만찬 회동을 했다. 김기현 전 대표는 지난해 초 전당대회 당시 "수시로 티타임도 하고 몇 시간씩 얘기도 했다"고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으나, 전대 선거운동 차원에서 한 얘기임은 차치하더라도 당시는 김 전 대표가 당 대표가 되기 이전 시점이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은 지난 4월 29일 오후 2시부터 차담 형식으로 2시간여 동안 진행했다.
한 대표 측이 요구한 '독대'가 아니라 정진석 실장이 배석하는 3자 회동 형식이 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대표가 박정하 실장을 통해 "배석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고 밝힌 것 자체가, 대통령실이 이같은 형식으로 회동을 추진한 데 대한 불편함 심경을 반증한다.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한 대표의 말이 일견 선전포고처럼 들린다는 평도 있다.
당내 친윤계에서는 한 대표에 대한 견제성 메시지가 다양한 수위로 쏟아져 나왔다. 한동훈 지도부 일원이기도 한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면담 이후 당정이 다시 하나되는, 국민이 우려할 당정의 모습이 아닌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아마 면담 자리에서 여러가지 민생 현안에 대해 폭넓게 대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분이 여러 사안에 대해 폭넓게 말씀하지 않을까"라며 다만 "남북회담이 아니고 언제든 여러 얘기를 포괄적으로 할 수 있지 않나. 1년에 1번 있는 게 아니니까 언제든 공개·비공개 형태로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추 원내대표는 한 대표의 최근 언행에 대해서는 "대표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셔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걸로 알고, 그것에 대해 (내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하면서도 "당직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언행에 대해 지금 우리 지지자들이나 국민들이 굉장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경고성을 발하기도 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용산·친윤계 비판 목소리를 활발히 내고 있는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등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이날 SNS에 쓴 글에서 더 직접적으로 한 대표를 압박했다. 김 지사는 "그간 한 대표가 독대를 요구하고, 그것도 언론을 통해서 (요구를) 하는 것은 자기 정치나 대통령과의 차별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신뢰의 기반이 없는 독대는 독대가 아니라 하극상이나 담판"이라고 직격했다.
김 지사는 "아무리 좋은 의도의 독대라도 양날의 검과 같고, 더더욱 독대를 언론 플레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과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언론을 통해서 대통령 인사권까지 거론하면서 할 얘기 다 해놓고 만나서 무슨 할 얘기가 더 남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 지사는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대통령을 밟고 재집권한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검찰스러움, 순발력 있는 말솜씨와 가벼움, '관종'같은 행동이 아니라 진중하고 미래를 통찰하고 준비하는 당 대표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국민의힘 총선백서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규 서울 성북을 당협위원장은 이날 SNS에 쓴 글에서,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 패배 및 한 대표와 친한계의 대통령 부부 겨냥 언행 등을 이유로 한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반면 친한계는 그간 '김건희 리스크' 극복을 위해 대통령실 인적 쇄신 등이 단행돼야 하며, 이런 민감한 사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만의 독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정부가 출범하고 이제 반환점을 돌아갈 시기가 다 돼간다. 2년 6개월이 다 돼가는데 그 기간 내내 김 여사 문제로 인해서 당이 질질 끌려다니고 국정 전체가 혼란에 빠지지 않았나.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 있겠나"라며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최고위원은 "(10.16 재보궐) 선거 민심도 한 대표가 김 여사 부분에 대해 굉장히 강한 목소리를 내온 데 대한 평가 아니겠느냐"면서, 한 대표 측의 독대 요구에 대해 "대통령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의 해법을 내주십시오' 이렇게 요청드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동 형식은) 대통령실에서 신중히 생각을 할 것이고, 저희는 심도 높은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두 분의 단독 만남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고 했다.
신지호 부총장도 지난주 여러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 본회의 재의결 시의 이탈표 전망에 대해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독대 회동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한 대표가 공표한 세 가지 요구사항에 대해서 대통령실에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에 따라서 상당히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용산을 압박했다.
신 부총장은 10.16 재보선 결과에 대해 "집권세력 지지율이 각종 조사에서 최저치가 나오면서 민심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는데 한 대표가 '여당 내 야당' 노선을 공개적으로 명확·선명하게 표방했다. 한 대표의 그런 자구책에 나름대로 마음을 주신 것 아닌가", "'여당 내 야당' 노선에 대해서 시민들이 분명하게 인지를 하시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셨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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