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 관련 3대 요구안을 용산에 공개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실 인적쇄신, 대통령 영부인 대외활동 중단, 각종 의혹사건 진상규명 협조 등이다. 기존에 한 대표가 언론 질의응답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던 내용들이기는 하나, 이를 당 최고위 회의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종합 언급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전날 10.16 재보궐 선거에서의 '금정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대한 압박 수위를 올리는 모양새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전날 10.16 재보궐 선거 결과와 관련 "선거 현장에서의 (국민들) 말씀은 '지금 이대로 가면 너네 다 망한다, 나라 생각해서 너희에게 기회 한 번 줄 테니 너희 한번 바꿔봐라'라는 것이었다. 변화와 쇄신을 하라는 것"이라며 "모든 정치인은 민심을 두려워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민심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저는, 그리고 우리 국민의힘은 민심만을 두려워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를 겨냥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일들로 모든 정치이슈가 덮이는 것이 반복되면서, 우리 정부의 개혁 추진들이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김 전 대표에 대한) 야당의 무리한 정치공세도 있지만, 그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들도 있었고 의혹의 단초를 제공하고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서 민심이 극도로 나빠진 것"이라고 김 전 대표를 직격했다.
한 대표는 △'김건희 라인' 관련 대통령실 인적쇄신 △김 전 대표 대외활동 중단 △의혹 규명을 위해 '필요한 절차'에 대한 김 전 대표의 적극 협조 등 김 전 대표와 대통령실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그는 "첫째, 김 여사 관련 대통령실 인적쇄신은 반드시 그리고 시급하게 필요하다", "둘째 김 여사가 대선 당시 약속한대로 대외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표는 특히 "셋째 나아가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솔직하게 설명드리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명품백·도이치모터스 사건 검찰수사가 무혐의로 결론난 시점이라, '필요한 절차'라는 언급이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을 의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대표는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를 중심으로 불거진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진상이 어떤 것이든 (당의) 부끄러운 모습이나 추한 모습이 드러나더라도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한 대표가 당정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당내 친윤계 측 비판을 겨냥해서도 "변화와 쇄신을 하면 오히려 (야당의) 헌정파괴의 빌미를 주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잘못된 생각"이라며 "(변화와 쇄신) 그것만이 헌정파괴 시도를 막을 수 있다.", "제가 앞장서서 정부와 여당을 쇄신하고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정 승리에…韓 "국민이 마지막 기회 주신 것" vs 친윤 "텃밭에서 이겨놓고 '잘했다'? 오만"
한 대표는 이날 "국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저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라며 거듭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의 의의를 강조했다. 격전이 예상됐던 금정구청장 선거의 낙승을 동력으로 삼아 당정관계에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전날 밤 SNS에 쓴 글에서도 "국민들께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변화하고 쇄신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며 "국민의 뜻대로 정부여당의 변화와 쇄신을 이끌겠다"고 했었다.
친한계에서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신지호 당 전략기획부총장은 이날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금정 보선 결과에 대해 "지난 총선에서는 13% 격차였는데 어제는 22% 격차로 승리를 거뒀다"며 "한 대표의 막판 행보가 주효한 게 아니냐"고 했다. 신 부총장은 "지금 집권세력 지지율이 각종 조사에서 최저치가 나오면서 민심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는데, 한 대표가 이른바 '여당 내 야당' 노선을 공개적으로 명확·선명하게 표방했다. 전통적 지지층도 굉장히 동요·이탈하는 분위기에서 그래도 한 대표의 그런 자구책에 나름대로 마음을 주신 것 아닌가"라고 했다.
신 부총장은 "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의 그런 입장에 대해서 '야당의 탄핵 공세에 밑밥을 깔아주는 것 아니냐', '해당행위 아니냐' 이런 식의 지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이번 선거를 통해서 입증됐다"며 "'여당 내 야당' 노선에 대해서 시민들이 분명하게 인지를 하시고 거기에 힘을 실어주셨다. 그러니까 저희는 변화와 쇄신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윤계의 반응은 온도차가 컸다. '원조 친윤' 권성동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화와 금정은 전통적으로 우리 당의 텃밭"이라면서 "다만 정부·여당 지지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뭔가 이변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었는데,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잘 했고, 또 당 지도부도 나름의 역할을 해서 방어를 잘 했다"고 했다. 권 의원은 다만 "
권 의원은 "방어를 잘 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패배했으면 비판이 나올 수 있었는데 그걸 봉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대표한테 유리한 국면"이라고 하면서도,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지 묻자 "지역 선거, 지방 일꾼 뽑는 선거 아니냐. 국회의원 선거도 아니고 행정기관장 선거였기 때문에 중앙 정치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권 의원은 "지금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다. 정부도 변해야 되고 당도 변해야 한다"며 "변화를 하는 데 있어서 그 변화의 방법을 한 대표가 잘 찾으면서 지혜를 발휘해야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정치적 문제 중에 공론화해서 해결될 문제가 있고 물밑에서 설득·조율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며 "언론이나 당 지지자들이 '김 여사 활동 자제', '여사 라인 교체' 이런 걸 주장할 수 있지만 한 대표나 그 측근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개적 비판보다는 직접 만나서 설득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었겠느냐"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특히 한 대표가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한 데 대해 "소위 친한계 인사들이 용산에 간신이 몇 명 있네, 한남동 7인회니 십상시니 하면서 일부 유튜버나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그대로 인용해 용산을 비난했는데, 7인회로 지목된 사람 중에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는 김 여사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더라"며 "선거 때 캠프에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들, 그리고 후보 부부를 직간접적으로 도왔던 사람들이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아니냐. 모든 후보들이 다 그렇게 했고, 과거 김영삼·김대중 때도 '가신'이라는 분들이 다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제가 캠프의 좌장 역할을 했지 않느냐"며 "역할을 안 하고 (대통령실에) 들어간 거면 문제가 있겠지만, 제 나름 역할을 다 했던 친구들이 지금 용산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까지 했다. 그는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 받은 63% 지지의 뜻은 한 대표가 대통령과 맞서서 싸워라, 차별화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대통령과 함께 정부와 당을 바꿔달라는 의미"라며 "그 길로 가는 방법이 뭔지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권 내 친윤 인사인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텃밭을 지킨 결과 자체에 크게 만족을 하거나 대단한 의미 부여를 할 수는 없다"며 "선거 결과 앞에서는 승패를 떠나서 겸손해야 하는데, 금정구라는 국민의힘이 그동안 거의 뺏긴 적이 없는 굉장한 보수 강세 지역, 텃밭을 이겨놓고 '누구 때문에 이겼다', '우리가 잘했다'고 하는 건 국민들 보시기에 매우 오만해 보일 것"이라고 한 대표 측을 직격했다.
장 전 최고위원은 "금정이라는 좋은 지역에서 결과가 나빴다면 그건 한 대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고, 국민들이 정부 일하라고, 탄핵하지 말라고 텃밭을 지켜주셨다면 더 낮은 자세로 정부와 협조하면서 당정갈등보다는 어떻게 당정의 신뢰를 회복할까 고민해야 한다"며 "텃밭 수성을 계기로 당정갈등을 더 심화시키려 든다면 오히려 국민들의 매서운 채찍질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한 대표는 국민의힘 소속 문헌일 구로구청장이 170억 원대 주식을 백지신탁할 수 없다며 사퇴한 데 대해 "죄송하다. 이런 공적 마인드 부재에 대해 참담하다"고 사과했다. 한 대표는 "앞으로 우리 국민의힘에선 이런 사람이 절대 공천되는 일 없도록 하겠다. 공직을 부업으로 여기는 이런 사람은 국민의힘에선 없어야 한다"며 "백지신탁 사전 약속하는 등의 제도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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