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가자지구 전쟁 즉시 휴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유럽연합(EU)도 즉각적 교전 중단 및 가자지구 남부 라파 침공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며 이스라엘을 전방위로 압박했다.
21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외교관들이 회람 중인 미국의 가자지구 휴전 관련 안보리 결의안 초안을 살핀 결과 가자지구 전쟁에서 "모든 측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필수적인 인도주의적 지원 전달을 허용하며 인도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immediate and sustained cease-fire)이 필수적임을 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휴전"은 미국이 지난달 안보리에 제안한 "실현 가능한 대로 빨리(as soon as practicable)" 임시 휴전을 촉구한다는 표현보다 훨씬 강화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안보리에서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해 채택을 무산시켜 왔다.
신문은 초안에 "라파에 대한 지상 공격이 민간인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히고 이웃 국가로의 이주 가능성을 포함해 더 많은 이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표명돼 가자지구 남부 피난민 밀집 지역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 공격 계획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제시돼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인구 절반 이상인 140만 명이 라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거듭 지상 공격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고 있다.
해당 결의안은 22일 안보리에서 표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알제리가 제출한 "즉각적 휴전" 촉구 결의안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3개국 찬성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통과가 전망되지만 일부 표현에 대한 논쟁의 불씨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은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드미트리 폴랸스키 유앤 주재 부대사가 결의안이 즉각적 휴전을 촉구한다면 "우리는 물론 지지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결의안 초안에서 즉각적 휴전을 "촉구한다(call)"는 직접적 표현 대신 "필수적(an imperative)"이라는 표현을 택한 것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누군가 국제사회와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지 않는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모두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EU 27개국도 "지속 가능한 휴전으로 이어지는 즉각적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내놨다. EU는 성명에서 "이스라엘 정부에 라파에 대한 지상 작전에 착수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이날 정상회의에 앞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스라엘엔 분명 방어할 권리가 있지만 보복할 권리는 없다"고 일침을 놨다.
중동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질 석방과 함께 즉각적, 지속적 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이스라엘에 "라파에서의 대규모 지상 작전은 실수"라고 경고했다. 블링컨 장관은 22일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미국과 유럽이 연이어 압박에 나선 것은 이스라엘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는 라파 침공 의지를 굽히지 않고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협상을 가속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당국자들은 이번 결의안이 하마스에 휴전을 압박하려는 의도라고 말했지만 분쟁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리처드 고완 이사는 결의안이 이스라엘에 적어도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고완 이사는 "미국은 이제 적대 행위 종식을 위한 정치적 틀을 형성하는 유엔으로 가는 문을 열고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이스라엘 의사 결정자들에게 냉담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미국 결의안에 대한 반응으로 보이는 소셜미디어(SNS) 게시글에서 "즉각적 휴전을 위한 공식은 단 하나다. 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고 자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며 싸늘한 태도를 보였다.
휴전 협상은 크게 진전되지 않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21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휴전 협상에 관해 "협상가들이 계속 작업 중이고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면서도 "아직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데이비드 바네아 국장이 이끄는 이스라엘 협상단이 22일 협상을 위해 카타르 도하로 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은 6주간의 휴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인 인질 40명과 이스라엘 내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을 양쪽이 함께 석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1월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을 공격한 뒤 이번주 4달 만에 재공격에 들어가며 이스라엘이 전쟁 목표로 제시한 하마스 완전 해체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은 알시파 병원을 포함해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 세력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고 보고 올 들어 남부 공세에 집중해 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8일 언론 브리핑에서 "하마스가 그 병원(알시파)에서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한 것은 분명하다"며 "이스라엘은 한 번 알시파를 정리했다. 하마스가 알시파로 돌아왔다는 것은 하마스가 재건될 수 없도록, 영토를 탈환할 수 없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군사 작전을 보장하는 방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의 재등장은 이스라엘이 북부 지상 작전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남부로 내려가며 북부에 통치 공백을 남겨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하마스는 전쟁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심각하게 약화됐지만 이후 치안 유지와 원조 분배에 일부 관여하며 통치 능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는 징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후 가자지구 통치에 관해 미국은 두 국가 해법 및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통치를 제시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거부할 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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