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자 미국 내 대표적 이스라엘 지지자인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스라엘에 "새 선거"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교체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정책에 대한 반대가 대선 경선에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슈머 원내대표는 14일(이하 현지시간) 상원 회의에서 평화 및 두 국가 해법에 관한 연설을 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최선의 이익보다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우선하며 길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네타냐후 연정은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의 필요를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 이후 세계는 급격히 변했고 이스라엘 국민은 과거에 갇힌 통치 비전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며 "많은 이스라엘 국민이 정부의 비전과 방향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이 시기에 새 선거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건전하고 열린 의사 결정 과정을 허용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나는 이스라엘 대중 대다수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할 것이라 생각하고 전쟁이 단계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할 때 치러지는 새 선거가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의 전후 미래에 대한 비전을 표현할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그(네타냐후 총리)는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과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과 같은 극우와 연정을 꾸렸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의 지지를 사상 최저치로 떨어뜨린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을 지나치게 용인했다"고 비판하고 "(국제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면 이스라엘은 생존할 수 없다"고 짚었다.
또 "네타냐후 총리가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세계 무대에서 이스라엘의 신뢰를 보존하며 두 국가 해법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및 주권 구상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두 국가 해법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그(네타냐후)는 스모트리히 장관과 벤그비르 장관 및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며 라파에서 민간인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군사 작전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전쟁 이후 가자지구 계획에 대한 논의에 책임감 있는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이전에도 사법부 장악 시도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평화를 위한 길을 닦는 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슈머 원내대표는 "물론 미국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없으며 그런 시도를 해서도 안 된다"면서도 "만일 전쟁이 축소되기 시작한 뒤에도 네타냐후 총리의 현 연정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며 미국의 기존 지원 기준을 시험하는 위험하고 선동적인 정책 추구를 계속한다면 미국은 현재의 노선을 바꾸기 위해 우리의 영향력을 활용해 이스라엘 정책을 형성하는 데 더 적극적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연설이 "바이든 대통령과 슈머 원내 대표와 같은 (이스라엘에) 동정적 인물조차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다는 신호"이자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의 "공개적으론 포옹하고 사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이 끝났다"는 점을 알린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유대인 정치인이자 전형적인 이스라엘 지지자인 슈머 원내대표가 이러한 연설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비판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청신호가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라파 침공에 반대하고 가자지구 인도주의적 지원 부족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어조를 점차 날카롭게 바꾼 것이 이번 연설이 가능했던 배경이라고 짚었다. 바이든 정부의 가자지구 전쟁 정책에 대한 반대는 민주당 경선에서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 기표 운동이 확산되며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공화당과 이스라엘 쪽은 연설에 즉각 반발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스라엘 지도자 제거 요구"는 "기괴하고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민주당은 반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명) 문제가 아닌 반이스라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마이클 헤르조그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스라엘은 주권 민주주의 국가다. 이스라엘이 대량 학살 테러 조직인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동맹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1200명을 죽이고 240명 이상의 인질을 가자지구로 끌고 간 뒤 벌어진 전쟁 자체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지지는 여전히 높지만 하마스 습격을 막지 못한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지지는 낮다.
<로이터> 통신은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인질 협상을 촉구하는 수천 명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초정통파 유대인에 대한 병역 면제를 중지해야 한다는 시위가 열리며 이스라엘의 사회·정치적 분열이 커지고 있다고 통신은 짚었다.
한편 14일 <로이터>는 팔레스타인 보건부 당국자들이 가자지구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29명이 숨지고 150명이 다쳤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중부 알누세이라트 난민촌 구호품 배분소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으로 8명이 숨졌고 가자지구 북부에선 구호 트럭을 기다리던 군중에 이스라엘군이 발포해 최소 21명이 죽고 150명이 부상당했다는 것이다. 단 이스라엘군은 해당 주장은 "거짓"이라고 부인했다.
이번 보도는 지난달 29일 가자지구 북부에서 구호 트럭으로 몰려든 팔레스타인인 100명 이상이 사망한지 2주 만에 나왔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군중이 몰리며 압사가 발생했다고 밝혔고 의료진 등은 총상 환자가 많았다고 언론에 증언하며 이스라엘 발포가 참사의 주된 원인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3만 1341명이 죽고 7만 3134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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