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면 출산율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요즘 갖게 된 질문이자 최근 뉴스를 보고 독자들과 나눠보고 싶은 토론거리이다. 언론은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또 한 번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고, 출생아 수도 처음으로 23만명대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미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이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일각에선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마저 나온다.
저출산 대책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주제넘게 위의 질문을 던진 이유는 현행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병폐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저출산 문제도 포함된다.
저출산이 한국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고 그래서 종합적인 대책을 요한다면, 병역제도의 혁신도 공론화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궁금한 마음에 '챗GPT'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모병제와 출산율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출산율을 높이려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모병제로의 전환이 우리사회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이것이 출산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 설계를 잘하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일단 필자가 주장하는 모병제의 골격은 이렇다. 도입 시기를 2026년으로 가정할 경우 총 정규군 수는 30만 명으로 하고, 이후 안보환경 및 병력수요, 인구감소, 기술발전, 사회경제적 여건 등을 두루 고려해 점차적으로 줄여나간다. 사병과 간부의 비중은 절반 정도씩으로 하고, 직업 사병의 근무기간은 24개월로 한다. 직업 사병의 월급은 300만 원이며 간부는 근무기간을 마친 직업 사병을 대상으로 충원해나간다.
혹자들은 모병제로 전환하면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 등 모병제를 도입한 타국의 사례를 보면 그럴 리도 없지만, 그래서 뭐가 문제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기실 징병제에 따른 기회비용은 빈곤층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병역에 따른 생계·부양·학업의 손실적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빈곤의 대물림도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인들은 가난의 고리를 끊어주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희망고문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병제가 빈곤층에게 '계층 상승의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 있는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모병제가 가져올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지위 향상이다. 이는 직업 군인 청년과 일반인 청년 모두에게 해당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인 기준중위소득은 약 195만 원인데, 필자가 모병제 도입 원년으로 잡은 2026년에는 약 230만 원이 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산층 기준을 중위소득의 75~200%라고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직업 사병의 소득 수준은 중산층 수준이 될 수 있다. 또 모병제는 군대에 가지 않는 청년에게도 더 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일반인 청년의 경력 단절이 최소화되고 사회 진출 시기가 2년 정도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핵심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청년 세대의 불안한 경제적 지위에 있다. 그런데 상기한 것처럼 모병제는 전체 청년 세대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병제 도입에 따른 또 하나의 기대효과는 젠더 갈등 완화에 있다. 한국은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를 발간하는데, 2023년 한국의 젠더 격차 지수는 전체 146개 국가 중 105위를 기록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수준은 세계 최저라는 뜻이다.
동시에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매우 강하다. 그 주된 원인이 바로 남성만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에 있다. 성차별과 징병제가 부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젠더 갈등이 심해지고 있고, 이것이 혼인율과 출산율을 저하시키는 중요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거꾸로 모병제를 도입하면 젠더 갈등이 크게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모병제하에서는 원칙적으로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청년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모병제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2년 정도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으며 젠더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 또 청소년과 청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변화가 혼인 및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인구 감소 추이를 감안할 때 징병제는 지속가능한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면 모병제는 시기상조라는 말을 20년 넘게 반복하면서 실기를 거듭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제도 설계에 나서는 게 어떨까?
한 가지 크게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 바로 북한이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모병제는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한 사이에는 원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전쟁이 터지면 상대방을 무력으로 점령해 무력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이 남북관계 악화의 숨어 있는 결정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병제 도입을 통해 정규군 규모를 30만 명 이하로 감축하는 선택은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동시에 모병제는 '관리형 군대'에서 직업 정신과 전문성을 갖춘 '정예 군대'로 발전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모병제로 전환해도 대북 억제력을 충분히 유지·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은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여건도 안 된다. 올해 군사력을 포함한 전쟁수행능력이 남한은 세계 12위(2017년)에서 5위로 올라서고, 북한은 18위(2017년)에서 36위로 떨어졌다는 평가는 하나의 예시다. 북한에 의한 한국소멸론은 과도한 피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의식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인구 감소에 의한 한국소멸론을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까닭이다.
물론 모병제가 저출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내포하고 있다. 또 있다. 바로 저출산에 따른 인구 급감 사회에서의 '적응'이다.
인구는 급속히 감소하는데 대규모 병력 유지를 전제로 한 징병제를 고수하면, 노동가능인구의 급감과 사회경제적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50만 명이 군대에 있을 때와 50만 명 가운데 30만 명은 군대에, 20만 명은 사회에 있을 때에 차이를 떠올려보면, 병력 감축을 전제로 한 모병제 도입이 왜 인구 급감 사회의 유력한 적응책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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