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까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무슨 변수들이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를 살펴보았고, 현재의 질서를 대경쟁(Great Competition)의 시대라는 특징으로 요약한 바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은 물가폭등과 인플레이션이란 방식으로 당장 체감되는 것도 있지만, 이제 시작되어 아직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체감하지만 못할 뿐 밑바닥에서의 변화는 시작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변화가 축적될 경우 언제라도 시한폭탄처럼 터져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소한 막지는 못하더라도 위기 경보(Alarm)라도 울리도록 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불가능할까?
고용보험 행정통계 활용
꾸준히 거론해왔던 자동차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한때 전기차·미래차로의 산업전환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되면서 이러한 전환이 고용과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및 대책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물론 지금이야 전환 속도가 늦춰진 상태지만, 또 언제 어떤 변수가 작동하며 가속 페달을 밟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자동차산업 고용 전반에 대한 추적 감시를 해볼 순 없을까? 사실은 강력한 방법이 하나 있다. 일자리에 대한 다양한 통계 수치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고용보험 행정통계를 활용할 수 있다. 이 통계수치는 표본조사에 기반한 추정치가 아니라 전수조사에 가까운 데이터라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여전히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많으며, 이들의 경우 고용보험 행정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단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동차업종의 경우 사각지대가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고용보험 행정통계의 장점을 최적화할 수 있다.
고용행정통계 홈페이지에 접속해 몇 가지 사용법을 익히고 나면 산업 대분류·중분류·소분류에 따른 통계수치에 접근할 수 있다. 자동차업종의 경우 산업 중분류 상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으로 분류되며 4개의 소분류 업종으로 다시 나뉘어진다.
군산공장 폐쇄 당시 분명한 변화 보여
그렇다면 고용보험 행정통계가 일자리·고용의 추세를 제대로 반영한다는 점이 사실일까? 확인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최근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는 사건, 2018년에 벌어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당시의 데이터를 살펴보면 된다.
완성차업체의 경우 산업 소분류 업종 중 '자동차용 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에 속해 있다. 이 업종에는 완성차업체만이 아니라 엔진 제조업체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완성차업체가 차지하는 부분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2018년 군산공장 폐쇄를 전후한 시점, 즉 2016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의 피보험자 수 추이를 표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다.
2년치 데이터를 월별로 뽑은 이유는 전년 동월 수치와 비교하기 위함인데, 대부분의 시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다가 유독 4월과 6월에서 큰 변화가 포착된다. 2018년 4월은 전년 동월(2017년 4월) 대비 피보험자 수가 1574명 줄었고, 2018년 6월에는 3628명이 감소했다. 대체 왜 이런 큰 감소폭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2018년 2월, GM 본사는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6월말에 끝내 폐쇄를 강행하게 된다. 아울러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받게 되며 한국지엠 정규직 약 4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4월과 6월이라는 시점, 그리고 심지어 재직자 축소 규모까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완성차 말고 부품사에서는 변화가 없었을까? 엔진 제조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사가 속해 있는 산업 소분류 업종은 '자동차 신품 부품 제조업'이며, 마찬가지 방식으로 2016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의 피보험자 수 추이를 표로 나타내 보았다.
부품사의 경우 다른 시점에 비해 큰 폭의 변화를 보이는 곳은 없으나 매월 감소폭이 꾸준히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2017년 8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1578명이 늘어난 반면, 그로부터 1년간 꾸준히 일자리가 축소된 탓에 2018년 7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무려 6668명이 감소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완성차에서 4000~5000명의 구조조정이 벌어진 효과는 부품사로도 이어져 6000~7000명의 고용 감소로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한국 자동차산업 일자리 수는 1만여 명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산업 변화에 따른 고용·일자리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통계수치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산업전환에도 고용 규모는 그대로
그렇다면 시점을 최근 5년간으로 옮겨보자. 현재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2023년 12월까지의 월별 통계수치이다. 올해 1월 수치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제공되는 수치는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 그러니까 해당 업종의 사업장에서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노동자의 총 규모를 의미한다. 아울러 피보험자격 취득자·상실자 수도 월별로 확인할 수 있는데, 취득자의 경우 신규채용 또는 휴직에서 복직한 이들을 의미하며 상실자의 경우 퇴사자 또는 휴직을 시작한 이들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휴직자 규모가 아주 큰 숫자는 아닐 것이라 가정하면 피보험자 수는 현재 재직자 규모, 취득자 수는 신규채용 규모, 상실자 수는 퇴직자 규모로 볼 수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 하더라도 추세 변화는 분명히 재직자·신규채용·상실자 수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자동차업종 관련 고용보험 행정통계 최근 데이터를 뽑아보도록 하자.
우선 매년 1월을 기준점으로 하여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를 산업 소분류 4개 업종을 대상으로 하여 지난 5년치 데이터를 위와 같이 표로 나타내 보았다. 올해 1월 데이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니 2023년 12월 수치를 대신 넣었다. 우선 지난 5년 동안 피보험자 수에 큰 변동이 없거나 심지어 조금씩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우리 추정대로 피보험자 수가 재직자 규모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결과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산업전환의 가속화로 자동차산업 일자리와 고용이 대폭 줄어든다는 얘기가 수년 전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1월을 기준으로 한 탓일까 싶어 각 월별 데이터를 모두 대조해 보았으나 눈에 띄는 변화를 포착할 수 없었다.
믿기 힘든 데이터지만 사실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통계수치는 표본조사를 통한 추정치가 아니라 실제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하기에 전수조사 통계치이다. 매우 정밀한 수치를 다루고 있으며 작은 변화까지도 포착할 수 있는 수치인데도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동안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일자리 축소가 좀 심한 '공포 마케팅'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완성차 사업장 고령화로 인해 매년 수천 명의 정년퇴직자가 나온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고용보험 행정통계 자료 중에서 '취득자'와 '상실자' 규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완성차 부분만 살펴보면 되니까 '자동차용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 항목에서 지난 5년간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자와 취득자 수의 추이를 표로 나타내보면 위와 같다. 상실자 수가 퇴사자 규모를 나타낸다고 얘기했는데, 과연 이 수치는 2019년 6694명에서 3년간 줄어들긴 했으나 지난해 1월에 8418명으로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된다. 정년퇴직자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년 12월에는 상실자 수가 어째서 794명밖에 되지 않을까? 이는 대부분의 한국 완성차 사업장에서 정년퇴직자의 퇴직시점이 모두 12월말로 정해져 있어서 이들의 피보험자격 상실신고가 다음해 1월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1월 통계치가 나오게 되면 상실자 수는 다시 큰 폭으로 상승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신규입사자의 대부분이 포함된 취득자 수 역시 놀랍게도 상실자 수 못지않게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표만 봤을 때엔 상실자 수가 취득자 수에 비해 2000~3000명씩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매년 1월에 상실신고가 대규모로 이뤄지는 정년퇴직과 달리 신규입사의 경우 1년 전체에 걸쳐 골고루 흩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각 월별 취득자 수, 상실자 수를 모두 합해 연간 데이터를 뽑아서 표로 정리해보면 위와 같다. 신기하게도 매년 합계와 2년간 합계에서 취득자 수와 상실자 수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다시말해 한국 완성차 사업장에서 정년퇴직자 수가 상당히 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신규입사자 수 역시 그만큼 많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업장별 경보(Alarm) 시스템 도입
자,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이 정도의 추적이 가능한데 이 통계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 기관의 경우는 훨씬 많은 고급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고용보험 행정당국(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등)의 경우 업종 분류에 따른 수치만이 아니라 개별 사업장 수치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자동차업종 사업장 전체를 놓고, 이를테면 전년 동월 대비 피보험자 수가 ±5% 이상의 변동을 보이거나, 전월 대비 피보험자 수가 ±3% 이상의 변동을 보일 경우 경보(Alarm)를 울리도록 하는 시스템은 지금 당장이라도 구축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은 수많은 일자리 정보를 담은 일자리 상황판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했던 IT 강국인데 말이다.
경보가 울리면 직접 그 사업장에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여 고용(일자리) 규모가 어떤 이유로 변동한 것인지 이유를 파악하면 된다. 이런 작업을 매월 해나간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에서 일자리(고용)에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어떤 정도의 일자리 변동이 벌어지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업종 구분과 분류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경우(조선업 등), 또는 특정 기업군을 지정할 수 있는 경우(석탄화력발전 등)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산업전환이 고용 및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영향력을 가진 강력한 변수와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며 따라서 대응과 대책 마련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그러나 인간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미래차·전기차로의 전환이 고용·일자리를 어마무시하게 줄일 것이라는 예측은 실제 통계치로 입증된 주장이 아니다. 그저 공포 마케팅이었을 뿐 실제 어떤 변화가 벌어지고 있는지는 지속적인 조사와 통계수치 확인을 통해 밝혀낼 과제이다.
하지만 지난 <인사이드경제>에서 얘기한 것처럼,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산업전환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보호무역과 역(逆)세계화 경향이다. 그동안 수출로 먹고 살아온 한국 자본주의 경제에 수출장벽이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장벽이 높아질수록 국내 제조업 생산절벽이 심해지기 시작할 것이고, 이 변수가 어떻게 작동되며 어느 정도의 무게로 다가올 것인지는 고용보험 행정통계 등의 수치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하다.
데이터 더미도 갖고 있고 그걸 처리할 전문적인 행정기관도 지정되어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소관의 '산업전환·고용안정 지원법'이 제정되었고,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의 '미래차특별법'도 만들어졌다. 챗GPT에게 물어보면 이걸 분석하기 위한 애플리케이션까지도 만들어주는 시대인데, 인간을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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