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나는 아이돌 음악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에이치오티, 젝스키스, 핑클, 에스이에스를 비롯해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세상을 뒤덮을 때, 나는 다른 음악을 찾아듣기 일쑤였다. 당시 수많은 음악 팬 중 하나일 뿐이었을 내가 록을 최고로 여기는 록 마니아여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 그즈음 등장했던 유앤미블루나 삐삐밴드 등의 신곡에는 금세 귀가 열렸지만,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너무 10대 취향이거나 전형적이라고 느껴져서인지 좀처럼 끌리지 않았다. 끌리지 않는 음악을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어쩌면 20대 중반을 넘어가던 내 감성이 10대를 겨냥한 아이돌 음악과 어긋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사방에서 들리는 음악에 완전히 귀를 막기는 불가능했다.
아이돌 음악이 음악시장을 주도하는 분위기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막강해졌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2NE1 등으로 이어진 2세대 아이돌 음악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나도 뭔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듣기에도 음악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을 뿐 아니라 퍼포먼스의 질과 개성이 확연하게 올라갔다. 아이돌 음악이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을 정도로 음악 전문가들 또한 아이돌 음악의 음악적 완성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열어가며 급성장했다. 더 많은 아이돌 음악인이 등장했고, 다양한 조합과 도전이 벌어졌다. 바야흐로 음악 전문가라면 아이돌 음악을 외면하면 안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아이돌 음악 산업 시스템을 이해해야 했고, 대중문화산업의 흐름을 연결해 읽을 줄 알아야 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어지간한 아이돌 음악인의 신곡은 반드시 찾아 듣는다.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인이 생겼으며, 아이돌 음악인의 콘서트에 여러 번 가보기도 했다. 대표적인 연예기획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도 있다. 4세대에 이른 한국의 아이돌 음악은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중심을 차지할 만큼 국내외를 아우르는 제작시스템과 팬덤을 구축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기록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일일이 이야기하기 어렵고, 더는 놀랍지 않을 정도다. 현재 케이팝이 생산하는 결과물들은 장르와 메시지가 다양하고, 노래/춤/연기 등의 퍼포먼스 실력이 탁월하다.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통해 발표하는 콘텐츠 기획력도 발군이다. 국내외의 음악인을 연결해 작업하는 방식은 다른 나라 현지에서 제작할 정도로 진화했다.
AI를 활용하는 경우도 여럿이다. 특히 걸크러쉬한 걸 그룹의 모습은 속 시원하고 매혹적이다. 케이팝은 세상의 변화를 즉시 수용해 활용할 뿐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다. 아직 연예기획사가 공개하지 않은 놀라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케이팝은 단지 인기 있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물이 아니라, 인기를 만들어 내고 이어가며 확장할 수 있을 만큼 기획하고 제작해 내는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놀라운 대상이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 음악의 인기가 곧 꺾일 거라 예상했던 이들의 판단이 틀린 셈이다. 케이팝은 한국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제 케이팝의 시대가 저물 거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케이팝에 일방적인 찬사와 환호만 보내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열렬한 팬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케이팝을 들을 때마다 어떤 결과물도 특정 시대, 특정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한다. 국경을 넘나들고 시대를 초월해 작업하는 것처럼 보이는 창작물이라 해도 한국 사회의 문화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지독한 훈련 과정, 여성 아이돌 음악인에게 쏟아지는 불평등한 편견과 폭력적인 압박,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삶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케이팝이 현재의 한국산 제품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꾸준히 케이팝을 챙겨 듣고, 케이팝이 거두는 성과에 주목하면서도 열렬히 열광하고 옹호만 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음악에서 퍼포머와 창작자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는지 아직 완벽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고, 상품으로서의 가치와 창작물로서의 가치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 중이다. 음악이 좋고, 인기를 끌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주체성과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가치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 주장을 하는 이들의 의견이야말로 나이브해서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케이팝은 내게 계속 질문을 던지며 답을 요구하는 존재다.
다른 장르의 창작물이 그러하듯 음악 역시 팬의 마음으로 감상하고 향유하면 그만인 결과물이 아니다. 케이팝이 드러내는 현실, 케이팝을 통해 드러나는 현실은 청자로 하여금 한 사람의 음악 팬인 동시에 시민으로서 음악을 대해야 한다고 계속 신호를 보낸다. 케이팝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세상이 달라지는 만큼 케이팝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케이팝 음악인들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걱정하고, 해외 투어와 음반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자는 팬들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케이팝의 결과물과 생태계에 여전한 차별과 편견을 인지하고 비판하는 의견에 케이팝 팬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대규모 자본으로 대규모 자본을 위해 해내는 작업에는 조금 냉정하고 예민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 즐거움이 올바름을 만나고, 즐거움과 올바름이 서로를 더 맑고 깊어지게 할 때 맘 편히 케이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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