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기 교사는 (교무실에 책상이 없어) 운동장이나 옥상을 배회하는 인격 모독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제보자들에게 울타리가 돼주고, 책상이 돼주고, 의자가 돼주자는 취지에서 (일광학원을) 고발했습니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2024. 1. 17. 일광학원 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고발 기자회견
공익제보 교직원을 괴롭혀온 사학재단 일광학원을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참여연대가 직접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우촌초등학교 최은석 전 교장과 이양기 전 교감 등 공익제보자 6명을 5년째 괴롭히고 있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현직 이사장 2명. 이들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셜록>과 참여연대는 17일 오전 11시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견 직후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은 2001년 학교 법인을 인수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일광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임기를 마친 후에는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기고, 이사회도 자신들의 측근들로 구성해왔다.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소재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 2019년 기준 우촌초의 이월금은 약 50억 원으로, 관내 다른 사립초의 이월금 평균이 약 2억 1000만 원 수준인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은 금액이다.
2019년 공익제보의 발단은 이 회장의 '스마트스쿨 사업' 지시였다. 이 회장은 학교 운영에 권한이 없는 '전' 이사장이었지만 지속적으로 학교 운영에 개입해왔다. 구속 수감돼 있는 상태에서 교직원에게 편지로 '옥중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스마트스쿨 사업은 통상 3억 원 정도의 비용이면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회장은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범행을 모의한 A 업체가 입찰에 선정되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A 업체에 용역대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리려 시도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처조카이자 행정실 직원인 유현주 씨에게 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결정권자인 당시 최은석 교장과 이양기 교감도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이들은 내용도 절차도 잘못된 사업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9년 5월 최은석, 이양기, 유현주 등 공익제보자 6명은 서울시교육청에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폭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고,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공익제보자들에게는 곧장 '칼날'이 돌아왔다. 이들을 향한 학교 법인의 괴롭힘은 5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먼저 학교 법인은 최은석, 유현주 등 공익제보자 4명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공익제보자 4명은 복직을 위한 소송을 아직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유현주 씨
2019년 학교 법인은 공익제보자들에게 해임 등 중징계를 내렸다. 공익제보자를 향한 보복성 징계. 서울시교육청,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중앙 노동위원회 등의 구제 조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학교 법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관련기사 : '방산비리'·'모델 성희롱' 이규태 회장, 공익제보자에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국민권익위원회의 신분보장 등 조치 결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법인 일광학원은) 현재까지 그 일부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광학원의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악랄한 보복 조치를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공익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신분보장 조치 등 결정 불이행을 각각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범준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실행위원, 2024. 1. 17. 일광학원 고발 기자회견
2022년 10월 이양기 교사는 학교로 돌아갔다. 해임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약 2년 8개월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였다. 다시 학교에 돌아간 공익제보자는 6명 중 2명. 하지만 복직한 이후에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이 교사는 복직 이후 과학전담교사를 맡았다. 학교는 교무실에 그의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과학실은 다른 교사도 수업을 하고 방과후교실도 열리는 '공용 공간'이라 자리를 비켜줘야 할 일이 많았지만, 교무실에 자리가 없으니 가 있을 곳이 없었다.
"교무실에 책상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죠. (…) (과학실에서) 나오면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거나, 운동장을 배회하는 시간이 좀 많았죠. 2022년은 그렇게 보냈어요."
-이양기 씨
이 교사는 우촌초 학교 업무 시스템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서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성자는 전 이사장을 지낸 이 회장의 측근이었다.
불이익은 이 교사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으로도 번져갔다. 교원평가 결과가 나온 날, 공익제보로 미운털이 박힌 이 교사는 자연스럽게 최하위 등급인 B등급을 받았다. 교원평가는 S-A-B로 나뉘고,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달라진다. 문제는 그와 친분이 있는 동료 교사들 역시 이 교사와 마찬가지로 전부 B등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저야 당연히 학교 법인과 사이가 안 좋으니까 (B등급일 거라)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저와 조금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도 다 B등급이었어요. 근무 실적이 B등급을 받을 정도는 전혀 아니거든요. 저도 관리자(교감)를 해봤으니까 (평가 기준을) 알죠."
-이양기 씨
5년째 지속되는 학교 법인의 괴롭힘. 이 교사는 복직 후 3개월쯤 지난 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가을에는 머리에 대상포진까지 발병하면서 결국 복직 1년 만에 2개월의 병가를 내고 말았다. 교직생활 30년 중 처음이었다. (☞ 관련기사 : '회장' 비리 고발 교사, 복직한 학교에 책상이 없어졌다)
"사회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공익제보자를 보호하자는 결단을 했고, 그에 따라서 공익신고자보호법과 부패방지권익위법을 제정했습니다. 법이 시행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공익제보자들이 이런 제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상희 소장, 2024. 1. 17. 일광학원 고발 기자회견
학교 측이 제기한 무더기 고소·고발 역시 공익제보자들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의 처조카이자 약 20년간 행정실에서 일해온 교직원 유현주 씨는 무려 10건의 고소·고발을 당해야 했다. 학교 측은 심지어 교육청 감사관마저 위증을 했다고 고발했다.
유 씨는 학교에 출근하는 대신, 경찰서, 검찰청, 법원에 출석 도장을 찍어야 했다. 학교 법인이 유 씨에게 제기한 10건의 고소·고발 중, 혐의없음 또는 종결 처분된 사건은 5건이다. 나머지 건들은 현재 사법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21년 12월 검찰은 이규태 회장과 스마트스쿨 사업 추진에 가담한 관계자 12명을 기소했다. 업무상 횡령, 강요, 입찰 방해 등의 혐의다. 기소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들은 현재까지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직장을 잃지도 않았다. 반면 정의를 선택한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셜록>과 참여연대가 학교 법인을 고발하고 나선 것은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공익제보자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 이러한 불이익에 대해서 법이 강력하게 조치를 취해서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재발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희 소장, 2024. 1. 17. 일광학원 고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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