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네가 나한테 와서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날이 있을 거다', 딱 이렇게 말하고 가더라고요."
-유현주 씨, 이하 2023년 12월 7일 인터뷰
이규태(74) 일광그룹 회장. 회장님이자 고모부인 그는, 자신의 밑에서 20여 년간 일한 직원이자 처조카인 유현주(46) 씨에게 독한 경고의 말을 남겼다.
유 씨는 23년 전을 떠올렸다. 스물세 살의 유 씨는 이 회장에게 일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모부인 이 회장과는 평소 왕래가 없었다. 당시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등학교를 인수했다. 그는 유 씨에게 학교 행정실에서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유 씨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고, 한 지점의 운영을 맡을 정도로 인정도 받았다. 몸은 힘들지만 만족스러운 일자리였다. 솔직히, 고모부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편찮으신 아버지는 유 씨가 집안어른 밑에서 안정적으로 지내길 원하셨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었다.
우촌초 행정실로 출근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이 회장의 부인(유 씨의 고모)은 유 씨의 친구 박선유 씨까지 불러서 학교에 취직시켰다. 둘은 함께 이 회장이 시키는 대로 밤낮 없이 일하면서도, 남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이 회장은 저를 처조카라고 인정을 안 하고, 그냥 '야', '너'라고 불렸어요. 자기 비서나 측근들은 추켜세워 주면서 저는 아예 바닥 취급 했어요."
-유현주 씨
이 회장이 이사했을 때는 이삿짐을 정리했다. 회장이 정원에서 파티를 하면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했다. 이 회장의 부인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요리도 했다. 식모가 따로 없었다.
이 회장은 종종 유 씨를 '거지 취급' 했다. 이 회장이 불러서, 잘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운 유 씨였다. 그런데 이 회장은 자기가 유 씨를 먹고살게 해줬다며 생색을 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참았다. 그렇게 20년을 일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건 경우가 아니지. 뭐하고 사는 사람인진 몰라도."
지난 7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이규태 회장을 만났다. 그는 출고가 3억 원대의 최고급 세단인 벤츠-마이바흐에서 내렸다. 약 200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는 기자와 카메라를 밀쳐낸 뒤, 뒷일은 주차관리인들에게 맡기고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셜록>은 이 회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고 사무실도 찾을 수 없어서 교회로 그를 찾아간 길이었다. 첫 만남에서 기자에게 "경우"를 강조한 그는, 2015년 배우 클라라에게 "목 따서 보내버릴 수 있다"며 협박하고 성희롱 한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으로, 일광그룹 산하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사회복지재단, 사립학교 재단 등을 뒀다.
이 회장은 2009년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는, 이른바 '불곰사업'과 관련된 횡령·배임 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다. 2015년에는 방위사업청의 사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군무원 2명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또 한 번 구속됐다.
그는 구속 수감된 상태로 유 씨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그의 옥중 지시는 앞으로 펼쳐질 '결정적 사건'의 뿌리가 된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결과 보고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공소장과 불기소결정서, 서울북부지방법원 판결문 등을 종합해 당시 상황을 확인했다.
"읽은 후 바로 파기하라."
이규태 회장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항상 이 문장으로 끝났다. 구속 수감 중인 이 회장은 자신의 '집사 변호사'를 통해 처음에는 손편지, 그 다음에는 음성 녹음이나 영상 파일을 유현주 씨에게 보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이규태 회장이 보낸 손편지는 약 200건에 달한다.
"학교 돌아가는 상황을 (감옥에 있는 이 회장에게) 보고하고, 이 회장 지시 아니면 학교 돈을 10원도 못 쓰는 시스템이었어요."
-유현주 씨
엄밀히 말해 당시 이 회장에게 학교에 관한 지시를 내릴 권한은 없었다. 이 회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이사장을 지냈지만, 당시엔 그의 임기가 이미 끝난 때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자신의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겼다. 이사회도 측근으로 구성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10개월과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했다. 범죄수익은닉, 조세포탈,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가 인정됐다. 이 회장은 집사 변호사를 통해 유 씨에게 음성 녹음을 보냈다. '가석방을 위해 벌금을 내야 하니 돈을 만들어내라'는 취지의 지시였다.
2015년부터 수사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한 변호사 수임료만 약 23억 6500만 원. 게다가 가석방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벌금 14억 원을 완납해야 했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은행 대출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바로 '교비 횡령'이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2019년 당시 우촌초의 이월금은 약 50억 원.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관내 다른 사립초의 이월금 평균이 약 2억 1000만 원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액수다.
회장님은 이월금을 노렸다. 그리고 '한탕'을 준비했다.
이 회장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바로 '스마트스쿨' 사업이었다.
태블릿PC, 학습용 로봇 등을 도입하는 스마트스쿨 사업의 통상적인 비용은 3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그 비용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범행을 모의한 A 업체가 입찰에 선정될 수 있도록 입찰을 방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A 업체에게 용역대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리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이 저한테 음성 녹음 파일을 보내서 '야 이 새끼야, 나 보고 여기(교도소) 얼마나 있으라는 얘기야'라고 했어요. 돈 안 만들어준다고 욕을 듣고 말았어요. 그래도 처음엔 학부모 핑계, 교장선생님 핑계를 대고 거절할 수 있었죠."
-유현주 씨
하지만 유 씨가 모른 척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2018년 11월 이 회장이 가석방되자 스마트스쿨 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자신의 측근으로 구성된 기획홍보실을 학교에 설치하고, 유 씨와 최은석 교장을 독촉했다.
"나중에 감사받으면 분명히 문제가 될 거 아니까 저랑 교장선생님이 책임지게 하려고 한 거예요."
-유현주 씨
20년 동안 '회장님'으로 모셔온 사람. 게다가 고모부와 처조카로 얽혀 있는 관계. 이 회장의 검은 지시를 따르는 건 어찌 보면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유 씨는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공익제보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2019년 5월 교직원 유현주 씨와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박선유 씨, 그리고 최은석 교장과 이양기 교감 등 6명은 서울시교육청에 이규태 회장의 전횡을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의 강압에 의한 추진'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별감사 결과에 따라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전원에 대해 '승인 취소'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학교 법인은 이를 거부했다. 교직원 수십 명, 학부모 수백 명은 학교 정상화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2021년 12월 검찰은 이 회장과 스마트스쿨 사업 추진에 가담한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업무상횡령, 강요, 입찰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유현주 씨 등 6명의 공익제보자들은 2022년 참여연대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받았다.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유현주 씨
이 회장이 유 씨를 해고하는 과정은 집요할 정도였다. 직위해제와 부당 인사발령, 해고와 재해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2019년 6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무려 2년 4개월간 진행됐다. 사이사이 서울시교육청과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중앙노동위원회 등의 구제 조치가 있었지만, 학교 법인은 끝내 유 씨를 해고하고야 만다. 다른 공익제보자들에게도 해임 등 중징계가 내려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학교 법인과 이 회장은 무더기 고소·고발을 쏟아냈다. 유 씨는 총 10건의 고소·고발을 당했다. 횡령, 위증, 입찰방해, 사문서위조, 손해배상청구 등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학교 법인은 공익제보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학교 인터넷 공지시스템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거짓 소문을 알렸다. 공익제보자들은 당시 학교 법인 이종명 이사장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 전 이사장 등이 정식재판을 청구해 1심이 진행 중이다.
학교 법인은 3년째 유 씨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유 씨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무도 벌 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벌 받고 있는 거예요. 창살 없는 감옥에 나 혼자 갇혀서 벌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유현주 씨
최근 유 씨는 침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하루는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시작되고,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다가 끝난다. 빈 집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는 자신을 "은둔형 인간"이라고 설명했다. 칩거 생활 2년째, 잠에 들지 못한 지도 그쯤 됐을 것이다. 의사가 더 이상 처방을 늘릴 수 없을 정도로 약을 많이 먹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의사가, 제 정신이 약을 이긴 거라고, 그래서 약이 안 듣는 거래요. 약 먹고 자려고 서너 시간 누워서 노력해도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드니까…. 동트고 7~8시 정도 되면 몸이 힘들어서 한두 시간 졸고, 또 일어나서 하루 종일 깨어 있어야 해요."
-유현주 씨
우울, 불안, 강박, 공황, 대인기피…. 가끔 동생들이 찾아오거나, 친구이자 동료로서 공익제보에 함께했던 박선유 씨가 '생존 확인'을 하러 오는 게 대인관계의 전부다. 사람을 만나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외로움과 친하지도 않다.
"의사가 잠깐이라도 햇볕을 보라고 하는데, 사람 마주치는 것도 싫고 스치는 것도 싫어서 쓰레기 분리수거 할 때도 밤 12시 넘어서 아무도 안 다닐 때 나가요.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하고…. 이젠 그마저도 외롭죠."
-유현주 씨
유 씨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멀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잠에 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이다.
"문제가 해결돼야 약을 줄이거나 잠을 자겠죠."
유 씨에게도 의지가 활활 타올랐던 때가 있었다. 학교 대신 경찰서, 검찰청, 법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형 로펌 소속 변호인단을 고용해 대응했고, 홀로 싸워야 하는 유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졌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 ‘어떻게 고모부한테 이럴 수 있지?’라고 저를 이상하게 보는 거예요. 그때마다 저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가족 같지 않은 가족인데 왜 자꾸 그걸 강조하냐고. 이 회장 측에서는 처조카가 뒤통수 쳤다고 주장하고, 저는 또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어요."
-유현주 씨
소름끼쳤던 순간은 이 회장과 함께 검찰에서 대질신문을 받을 때였다. 평생 "현주야"라고 다정하게 부른 적도 없는 고모부 이 회장은 신문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 새끼야…."
그러면서 이 회장은 유 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 씨는 손이 벌벌 떨리고,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심장이 튀어나가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 앉은 이 회장은 '가엾다', '불쌍하다', '어이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는 너무도 당당했고, 벌벌 떨고 있는 건 오히려 유 씨였다.
"제 40대 인생은 이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유현주
학교 법인이 유 씨를 상대로 제기한 10건의 고소·고발 건 중 5건은 이미 유 씨가 승소하거나 혐의 없음으로 끝났다. 나머지 건들은 아직도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공익제보에 함께한 최은석 교장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등도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있다.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날이 있을 거다."
이 회장이 처조카이자 20년간 자신을 모신 직원인 유 씨에게 했던 그 말. 유 씨는 가끔 그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눈 감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됐을 텐데, 제가 안 그랬기 때문에 이 사달이 생긴 거죠. 주변에 계신 분들도 증언을 해주다가 이렇게 (불이익을 받게) 된 거잖아요. 그분들께 미안하지만, 어저께 변론기일에도 (법정에서) 말했어요. 제가 이렇게 (공익제보) 한 거 후회 안 한다고."
-유현주 씨
<셜록>은 이 회장, 학교법인 일광학원, 우촌초의 반론을 듣고자 여러 차례 입장을 요구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4일과 5일 이 회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통화할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문자메시지로 재차 반론을 요청했으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난 5일에는 이 회장에 대한 질의서를 가지고 일광그룹 사옥을 방문했다. 대표번호로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건물 관리인은 “지금 공사를 하고 있다”며 일광그룹 관계자에게 질문지를 전달하겠다고만 했다.
일광그룹과 계열사 사무실이 임시 이전했다는 건물도 찾아갔다. 우촌초 바로 옆 상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 '사단법인 포사람', '사회복지법인 일광복지재단' 간판이 걸려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일광그룹 사무실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나가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7일에는 이 회장이 다니는 교회 주차장에서 그를 만났다. 질의서와 명함을 건넸지만, 기자의 팔과 카메라를 밀치고 교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학교법인 일광학원과 우촌초에도 반론 취재를 시도했다. 지난 2일부터 3일간 매일 우촌초 행정실 직원과 통화했지만 행정실에선 "일광학원의 사무실 위치나 전화번호를 모르고 교장, 교감도 연수 중이라 3월에 출근한다"고만 답했다.
지난 4일에는 일광학원과 우촌초등학교에 대한 질의서를 각각 우촌초 행정실 측에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다음 날 우편물 수령 사실이 확인됐지만, <셜록>은 아직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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