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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열차 사고 후 도발 거세졌다는 언론 보도,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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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열차 사고 후 도발 거세졌다는 언론 보도, 사실일까?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4) : 남북, 상대에 대한 철부지스러운 비방 멈춰야

""수백 명 사망" 北 열차전복 참사 그 뒤, 김정은 도발 거세졌다"

1월 18일 오전 <중앙일보> 인터넷판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을 비롯한 상당수 언론은 전날에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6일자 보도를 인용해, '북한 전력난에 열차 전복사고로 400명 이상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말연시에 도발적인 대남 언행을 쏟아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취지의 보도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앙일보>는 "대남정책의 공세적 전환 이면에는 결국 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외부 위협을 부각해 민심 이반을 막고 내부를 결속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며, "김정은의 연이은 공격적 발언은 내부 민심이 심상치 않은 가운데 나온 것인데, 수백명 사망이 사실이라면 민심 이반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남한을 겨냥하는 건 외부로부터의 위험 요소를 앞세워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이며, 대규모 인명 사고가 이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열차 사고로 북한 주민 400명 이상, 혹은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RFA>의 보도는 사실 관계조차 확인이 안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으로부터 "열차 사고가 난 것은 맞지만, 피해 규모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역시 추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북한의 열차 사고의 원인과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RFA>의 보도를 맹신하는 데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북한의 최근 공세적 대남 언행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열차 사고에서 찾고 있다. 시간적인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는 구분해서 봐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빗나간 보도가 상당한 소구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일부 언론의 확증편향이 '화학작용'을 일으킨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왜 저러지?'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리고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 원인이 가중되는 식량난 및 경제난과 이에 따른 주민 불만을 김정은 정권이 외부로 돌리려는 데에 있다고 단정한다.

이러던 와중에 전력난으로 열차 사고가 발생했고, "간부들이 타고 있던 상급열차는 탈선하지 않았고, 나머지 7개의 열차에 탔던 주민은 대부분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는 이러한 확증편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소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의 배경과 의도는 이런 곳에 있지 않다. 앞선 글들에서 다룬 것처럼, 북한의 식량과 경제 사정에 어려움이 가중되기는커녕 오히려 개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및 올해 초 최고인민회의에서의 김정은의 연설에서도 70% 가량은 인민생활과 경제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주된 내용은 2023년에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거뒀고 이에 안일해질 것이 아니라 올해에도 큰 성취를 이뤄내자는 것이다.

체제 결속이나 내부 결속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이중 정체성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즉, 김정은의 언행은 조바심이나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 1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시정연설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또 있다. 북한의 대남 노선의 적대적인 전환은 '거울 영상 효과'를 연상시킨다. 한미가 2019년부터 연합 군사훈련을 재개하자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를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2019년 4월부터 한국의 F-35 등 첨단무기 도입이 가시화되자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응수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자, 북한도 남한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면서 주적으로 규정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가 본격화되자 북한도 각종 전략무기 시험발사에 나섰다. 윤 정부가 북한의 9·19 군사합의 일부 위반과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이유로 이 합의의 일부 조항을 효력정지하자 북한은 아예 합의를 백지화해버렸다.

한미가 북한의 핵 사용시 북한 정권을 종말시키겠다고 하자 북한은 전쟁 발발시 남한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윤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을 추구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아예 평화통일 노선을 폐기해버렸다. 한미가 전쟁 발발 시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하자 북한도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들고 나왔다.

이러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설전과 무력시위의 선후 관계, 그리고 이에 따른 정치군사적 긴장 고조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남북한이, 혹은 한미동맹 대 북한이 다투면서 닮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남북한 정부 양측에서 나오는 발언을 주어와 목적어를 바꿔서 보면 누가 말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을 두둔하고자 함이 아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까지 외면하면서 북한 내부, 특히 가중되는 경제난과 민심 이반에서 김정은의 도발적인 언행의 원인을 찾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보는 데에도,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소원은 평화'라고 말한다. 통일은 멀어지거나 불가능해지고 전쟁위기감이 우리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북한 지도자의 평화관은 '전쟁불사론'에 기초하고 있다.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피하지도 않겠다'는 식의 화법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예방할 궁리부터 하라'는 것이다. 체제의 차이를 넘어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책무인 남북한의 지도자들이 명심해야할 대목이다. 그 출발점은 철부지식 치킨 게임을 중단하고 자제의 미덕부터 보여주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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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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