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지나간 기사를 보다가 2022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게 되었다.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바와 같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경향성이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건강-가정-경제적 풍요' 순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에 눈에 띈 것은 '생계/복지책임주체' 에 있어서 '정부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줄어들고, '당사자 책임'이라는 응답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2013년, 2016년, 2019년, 2022년이라는 네 시점에 생계/복지책임주체로써 '정부'라는 응답은 35.5%, 46.2%, 26.0%, 27.0%으로 나타나 감소하는 양상이다. '당사자 책임'이라는 응답은 27.7%, 28.3%, 38.5%, 40.1%로 나타나 최근 10년간 꾸준하게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19년부터 2~3년간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문제는 개개인이 알아서 대응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팬데믹이었다. 마스크 대란과 같은 상황 속에서 제어되지 않는 시장원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시간이었다. 또한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복지의 주체로써 '당사자'에 그 무게중심이 더 실리는 상황이다. 이는 지난 시간동안 복지국가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2010년 6.2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생겨난 복지 논쟁, 즉 무상급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은 복지를 일상의 언어로 다루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고 여러 영역에 걸쳐 다루어지면서 국민들은 복지라는 용어를 이전보다 더 자주 듣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지에 대한 이해와 정의는 제각각이었지만, 복지가 더 폭넓고 깊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지금까지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라는 이분법의 잘못된 잣대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고는 있지만, 복지의 영역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 이후로 14년이 흘렀고, 그간 많은 복지제도들이 나타나고 정착되었다. 보육의 영역이나 장기요양의 영역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한국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GDP 대 12.3%로 OECD 국가들이 평균인 20.1%에 한참 못 미치며,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코스타리카, 칠레를 들 수 있다. 무상급식 논쟁이 나타났던 2010년에는 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지출이 8.1% 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많이 높아진 수준이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세계적으로도 빠른 양적 성장이라고 평가되기는 하지만, 2015년에 10% 대를 넘어선 이후로는 답보 수준이다.
이상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해보면, '복지라는 용어는 일상에 가까워졌으나, 실질적인 체감의 수준에서는 아직 더디다' 정도가 아닐까. 이러한 더딘 발걸음을 더욱 느리게 하는 것은 현 정부의 복지에 대한 몰이해이다. 특히 복지정책과 관련된 정책 슬로건과 실제 정책의 내용을 보고 있으면, 그 괴리가 너무나 쉽게 눈에 확 띄어서 오히려 나의 인식수준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출산을 걱정한다지만, 청년들이 먹고사는 기본적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들의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치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제공한다. 사회서비스는 드러내놓고 산업화, 민영화의 길을 걷고 있다. 복지의 중요한 한 영역을 아예 경제적 셈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사회서비스에서 부각되고 있는 성인 돌봄 노동과 관련해서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자리를 외국인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사회서비스 공급을 민간에 맡겨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외국인을 위한 일자리로 변질시키고, 서비스 수급자의 권리를 챙기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돌봄 노동의 환경을 개선하여 잠자고 있는 인력을 깨울 구조적 노력 대신 값싼 외국 노동력을 수입하여 서비스의 빈 공간을 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인구감소라는 현재의 상황을 방패삼았을 뿐 결국 서비스의 질은 담보하지 못할 것이고, 내국 인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나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조차 스스로 깎아내는 결과일 것이다.
복지라고 쓰고 읽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퇴보한 정책이 더 많아 보인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더 어렵게 꼬고 있는 것이 지금의 복지 정책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다. 최저수준의 삶을 보장하고 그 최저수준을 높여가는 노력, 자아실현을 위해 모종의 선택이 가능한 사회의 조성, 어쩔 수 없이 주어져 버린 환경이지만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의 마련을 기대하건만, 가뜩이나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기득권층에 유리한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는 복지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사회에 대한 '각자도생', '헬조선', '전쟁 시국보다도 낮은 출생율'의 진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의 2021년도에 조사에는 한국을 포함한 17개 국가의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있다. 한국은 유일하게 '물질적 안녕(Material Well-Being)'을 1순위로 꼽은 국가이다.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가족'을 선택하였고, 가족이 1순위가 아닌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하면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를 선택하였다. 가족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답변에는 가족 간의 관계,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만족감,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하는 열망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서 가족은 3순위였는데, 물질적 웰빙과 건강의 뒤를 이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란 개인의 삶을 지지하는 절대적인 필요조건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2022년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 중 거의 대부분이 '가족'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건강문제, 가사 및 돌봄문제, 긴급 또는 재해 상황에서 가족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응답이 2019년에 비해 2022년에 다소 높아졌고, 굳건한 1순위였다. 금전적 문제에서도 여전히 가족이 1순위였지만 다소 낮아지기는 했다. 그에 비해 전문가나 기관, 친구 등의 사회적 영역은 그 비율이 압도적으로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가치라는 추상적인 영역에서 측정된 것이지만, 복지정책이 심어야 할 상호호혜나 사회적 연대의 가치가 한국사회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씨 뿌려지고 자라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복지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 안에서 전 영역에 걸쳐 자리를 잡았지만, 서서히 그 기능을 상실해가는 가족의 중요성을 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거대한 문제들이 이전과 다르게 바이러스나, 기후/환경, 재해/재난 등의 영역에서 더 자주 다가오고 있는데 여전히 당사자 책임으로, 개별적 대응으로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시민들이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게 될 동안 우리 삶을 공기처럼 규정하고 만들어나가는 사회복지 제도나 정책은 어떠한 일을 해왔는가? 새해를 시작하며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의 복지국가이며 그 어떤 복지의 영역에서도 만족할 만한, 아니 체감할만한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없다.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토대 위에서 물질적 안녕과 번영이 무슨 소용인가. 복지정책은 진보적인 방향으로 더욱 강력하게 추동되어야 한다. 2024년이 그러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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